미움 받던 석탑.. 미륵사지 지킴이 자리매김
천 년 전 백제의 향기.. 현대 기술로 이어져

◇ 또 다시 천 년 후

“어둠에 푹 파묻힌 동탑의 모습 또한 한낮의 모습과 달리 의젓해 보인다. 달빛 하나, 탑 하나, 돌 하나에 몸과 마음을 기대어 눈을 감고 앉아 천 년 전으로 돌아간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받지 못하던 이 탑에 수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진다면, 또 다시 천년 후에 가장 사랑받는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배우 배용준 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09년 4월 9일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사리장엄이 발견된 미륵사지를 방문해 천 년 전 백제의 역사와 향기를 마음에 품었다.

국보로 지정된 미륵사지 서탑과는 달리, 동탑은 1993년 복원돼 미륵사 터 동쪽에 홀로 서 있다. 복원 당시 ‘졸속 복원’ 논란에 시달리며 사랑을 받지 못했던 동탑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의연한 모습으로 미륵사지를 지키고 있다.

전문가들의 평가야 어찌 됐든, 미륵사 터에서 외로이 서 있는 동탑은 서탑의 복원과 함께 또 다시 천 년 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리며 세월을 쌓아가고 있다.

◇ 동탑은 성형미인?

동탑은 1975년부터 1976년까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조사에 의해 목탑지가 아니라 석탑이 있던 곳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980년대부터 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계속해 노반 덮개석, 노반석 등 각층 부재의 출토로 탑의 높이가 9층으로 확인됐다.

이후 1993년 높이 9층으로 복원된 동탑은 발굴된 잔재를 섞어 새로운 화강암을 기계를 이용해서 깎았기 때문에 예스러움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복원 당시 동탑은 ‘졸속 복원’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됐고, 지난 2004년에는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겁니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요”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동탑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한 눈에 보기에는 언뜻 일본식의 석탑 느낌이 나지만, 반듯하고 정갈하게 복원된 모습이 부족한 옛 맛을 채워주고 있다. 천 년 전 백제의 석탑이 현재의 기술을 만나 오롯이 전해지고 있는 것.

하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동탑은 너무 희고 맑아서 그런지 예스러운 풍미는 덜한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탑을 구성하고 있는 돌 중에 색이 다른 돌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장에서 발굴됐던 동탑의 실제 돌이다. 동탑은 발굴 당시 남아있는 돌들을 복원시 그대로 사용하고 없는 것을 현대 기술로 다시 제작해 끼워 쌓은 탑으로, 가히 당시 백제인과 오늘날 현대인의 합작품인 것.

성형미인 같은 동탑 안에서 복원시 사용된 35개 정도의  천 년 전 옥개석과 몸돌 등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고, 백제인들의 석탑 축조기술과 우수한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 서탑이 복원되기 전인 지금 미륵사지를 찾을 때, 지킴이로서의 당당한 모습과 바람에 실려 오는 풍탁 소리로 방문객을 맞는 모습은 서탑이 가지고 있지 목한 동탑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 난 서탑과는 달라

미륵사지 동탑과 서탑은 전체적인 조형은 유사하지만, 구조적 조성기법이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탑신석의 짜임에 있어서 동·서의 양 탑이 1층에서는 초석과 기둥석, 그리고 면석 등이 별개의 석재로 꾸며지나, 동탑에서는 2층 이상의 탑신석에서 기둥과 면석을 같은 부재로 해 탑신에 기둥의 모양을 모각해 나타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서탑에서는 6층까지 기둥석과 면석을 별개의 석재로 조립했다.

이에 따르면 서탑과 동탑은 같은 시기에 동시에 조성됐다고 보기에 어려움이 있다. 오늘날의 축조 기술과는 달리,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동시에 이와 같은 거대한 탑 축조를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터. 또한 같은 시기에 축조했다면 그 방법에 있어서 기초에서부터 다른 방법으로 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탑의 경우와 같이 면석과 기둥석을 한 돌로 모각하는 방법은 보통 통일신라 이후의 석탑에서 많이 사용된 방법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석탑의 시원이 목가구식이나 전축탑에 기초를 두고 이를 본 뜬 방식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가구식을 충실하게 따른 서탑이 동탑에 선행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탑의 축조 시기는 서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사리장엄과 명문이 적힌 금제사리봉영기의 출토로 백제 말기 무왕대인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동탑의 축조 시기는 기단 하층부에서 출토된 기와편의 두께가 2m 이내로 얇고 고운 태토로 된 회색의 백제계 와편만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백제 말기나 통일신라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1993년 복원되고 있는 미륵사지 동탑의 모습 (사진제공 :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이와 같은 견해가 사실이라면, 먼저 탄생한 서탑과 비교해 볼 때 동탑은 태어날 때부터 서탑의 그늘 아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후대에 발견됐을 당시에도 비록 온전한 형상은 아니지만 6층 형태의 모습이 남아 있던 서탑에 비해, 그 원형을 갖추지 못해 전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던 동탑은 조명을 받지 못할 운명이었던 것일까.

1993년 복원되고 있는 미륵사지 동탑의 모습 (사진제공 : 미륵사지유물전시관)

먼저 만들어진 형 서탑의 그늘 아래, 진정 형 만한 아우가 되지 못한 동탑이었을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탑이 서탑보다 더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다면, 보다 나은 기술력으로 형에게 못지않은 모습의 석탑이지 않았을까.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