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관리 위해 지어진 건물.. 아픔 그대로 남아 있어
쌀 수탈과 노동력 착취.. 근대역사의 한 대목으로 남아

열흘 전, 2월 14일 초콜릿을 주고받는 발렌타인 데이가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라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며 큰 호응을 얻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추모행사 등이 이어지면서 눈길을 끌었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과 오는 3월 1일, 역사적인 날을 되돌아보며 익산 지역에서 당시 수탈의 현장이 남아 있는 주현동의 구 일본인(대교)농장 사무실과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농장 가옥, 평화동의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실 및 창고를 찾았다.

◇ 최대 쌀 창고 관리 위한 사무실

일제는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아 간 을사늑약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농장을 세워 농토약탈을 자행했다.
대표적인 평야지대인 호남평야, 이 지역을 일찍부터 눈독을 들인 일제는 1907년에는 대교(오오하시)농장을 세웠다. 대교농장은 1914년 남부시장에 사무실을 열고 당시 1,300여 정보의 논을 소유했다. 익산시의 전신인 이리시의 구도심 대부분을 대교 농장이 소유하다시피 한 것.

‘전북농조70년사’에 따르면, 1913년에는 조합원 233명 가운데 일본인은 40명으로 전체의 17.1%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는 전체의 56.5%인 11.545두락을 소유했다.
일제강점기에 대교농장은 호남지역 최대 쌀 창고였다. 이러한 농장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군산항을 열고, 전주와 연결하는 도로를 개설하게 된다. 이 도로가 총 연장 46.7km의 전주-군산간 도로인데, 1907년 공사를 시작해 1년 6개월 만에 완공해 개통했다. 또한 1912년에는 호남선 철도를 개통하고, 1913년에는 바로 군산선 철도를 완공했다. 당시의 인력과 기술력을 감안했을 때, 쌀 수탈과 더불어 무자비한 노동력 수탈이 함께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현동에 있는 옛 일본인의 농장 사무실이 바로 대교농장의 사무실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2층으로 일본식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시 농장의 모습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수탈 지역이었던 이곳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역사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재료는 목재를 사용하였으며, 벽체의 1층 부분은 나무판자를 덧대어 비늘벽으로 처리한 것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2층에 해당하는 부분의 외벽은 골진 함석으로 덧대었는데 나중에 관리 목적상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8·15광복 이후부터는 이리화교소학교 교사로 사용됐으며, 지난 2005년 11월 11일에 등록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돼 현재는 익산시화교협회 창고로 쓰이고 있다.
이 농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초를 당해서였는지, 익산지역의 3·1운동은 당시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남부시장 내 대교농장의 사무실 바로 앞에서 시작됐다. 현재 구 일본인(대교)농장 사무실과 울타리 하나를 사이애 두고 ‘순국열사비가 세워져 있다.

◇ 당시 모습 그대로 간직한 가옥

구 일본인(세천)농장 가옥은 춘포면 춘포리에 있는 일본인의 옛 농장 가옥이다. 지난 2005년 11월 11일에 등록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민간 소유로 돼 있어 실제 거주하고 있다.

이 가옥은 1940년대에 당시 세천(호소가와)농장 안에 지은 2층 건물로, 건축면적 106.78㎡에 연면적 139.83㎡로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익산 지역의 대규모 농장 중에서도 대표적인 호소가와 농장 안에 지어진 건물은 전 일본 총리 호소가와 모리히로의 아버지 소유였으며, 일본인 마름이 살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 일본인(대교)농장 사무실과 더불어 대표적인 농업수탈 지역이었던 춘포의 당시 상황과 근대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현재는 일부 수리 및 변형됐으나, 전체적으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지역사적·주거사적·건축적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

◇ 문화재단으로 거듭난 아픈 기억

현재 (재)익산문화재단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실 및 창고는 1930년에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건물로 지어져 1996년까지 전북농지개량조합의 청사로 사용됐다.

전북농지개량조합의 역사는 1908년 2월 옥구서부수리조합의 창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에는 임익수리조합과 임익남부수리조합이, 1910년에는 전익수리조합이, 1911년에는 임옥수리조합이 창설됐으며, 1920년 2월 5일 통·폐합으로 익옥수리조합이 탄생됐다.

익옥수리조합은 전익수리조합과 임익수리조합, 임익남부수리조합과 임옥수리조합을 통합한 것으로, 당시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수탈의 대상이 됐던 농지와 이를 위한 물 관리를 통해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것이다.

토지 개량과 수리 사업을 명분으로 설립돼, 과다한 공사비와 수세를 부담시켜 지역 농민을 몰락시키는 등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근대 농업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농업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 건물은 외벽이 붉은 벽돌로 돼 있다. 창문과 창문 사이에 벽돌로 치장 쌓기를 한 것이라든지, 테두리보의 벽면도 붉은 벽돌로 쌓은 것 등은 현재 건축기법과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지붕에는 환기통이 있고,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나무로 경사진 그레이팅을 만들어 놓았다. 테두리보를 장식한 원형의 꽃받침 무늬는 정교하면서도 일정하게 돼 있다.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실 및 창고는 지난 2005년에 등록문화재 제181호로 지정됐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