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간을 지탱하던 지지대.. 미륵사지 지키고 서 있어
통일신라의 차별화로 세워져.. 지금은 복원이 절실

◇ 당간지주.. 그 우직한 모습 뿐

고도익산의 유물과 백제의 흔적들을 찾아보면서 그간 수없이 미륵사지를 방문했다.

지금은 복원에 들어간 서탑과 이를 기다리고 있는 동탑, 넓게 펼쳐진 금당지과 강당지, 승방지, 회랑지 등은 그 흔적만을 가지고도 천년의 세월을 짐작하게 하는 유적들이다. 남문지 동서로 자리잡은 연못이나 왕버들마저도 백제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데도, 그 앞에는 유독 정체를 알 수 없는 돌기둥이 항상 버티고 서 있다.

각각 서탑·동탑과 줄을 맞춰 자리하고 있는 한 쌍의 돌기둥은 당간지주라는 표기 말고는 자세한 설명이 없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36호로 지정된 당간지주는 4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균형이 잡혀 있고, 가운데 홈에서부터 지주 꼭대기 선의 흐름까지 나름의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천년을 넘게 우직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본래의 목적인 당간뿐만 아니라 미륵사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 사찰의 당간지주는 1개만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미륵사지의 경우에는 1쌍이 서 있는 점으로 볼 때 미륵사가 거대한 규모의 대형 사찰이었다는 사실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 통일신라의 차별화 전략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이후 등장하고 있는 유물로, 사찰의 불문과 종파를 나타낸 깃발을 세워놓기 위해 만든 지지대다. 이 깃발을 ‘당’이라고 칭했으며 당을 높이 내걸었던 장대가 ‘간’이다. 당간이 사찰을 상징하는 깃발이었고 그 깃발을 양쪽에서 지탱하는 버팀기둥이 바로 당간지주인 것.

이에 대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전창기 박사는 그 기원을 인도·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전해들어온 불교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전통 솟대가 불교문화에 녹아들어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당’과 동일한 ‘번’은 불교 이전에 사용됐던 ‘일반번’과 불교 전해 이후 유행한 ‘불교번’으로 나눠지는데, 인도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 오랜 세월동안 여러 형태의 변화를 거친 불교번은 중국에서 ‘당’이라는 이름으로 혼용되다가 우리나라에 불교와 함께 들어오게 되는데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토착신앙과 잘 어우러졌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불교를 통한 유화정책 및 민중화합의 일환으로 전국 사찰에 당간과 당간지주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전 박사는 당시 당간과 당간지주를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통일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이전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무엇인가를 표시해 통일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 내지 건축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건축물을 만들어 세움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하고, 멀리서부터 알 수 있게 해 미륵사와 같은 사찰은 신성한 지역이며 다른 세계임을 알리는 표식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전 박사의 설명은 미륵사 창건의 시기와 맞물려 볼 때 의문점을 낳게 한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에 창건된 반면, 미륵사를 알리는 당간과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에 와서야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당시 당간과 당간지주를 세운 것은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가 백제의 발자취를 지우기 위해 선택한 차별화 전략이었던 것일까.

◇ 복원이 필요한 법당

미륵사지의 당간은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당간지주만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
전 박사는 지금 남아 있는 당간지주에 당간 함께 완전한 모습을 이룬 것의 정확한 명칭은 ‘법당’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모두 당간지주가 전부인 줄 알지만, 사실은 당간지주는 본래의 목적인 당간과 깃발을 세우는 보조 역할을 하는 부속품인 셈이다. 여기서 당간지주를 포함한 완전한 형태의 법당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산재돼 있는 법당은 모두가 독특한 양식으로 저마다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국 각지의 사찰에 고루 분포돼 있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있고, 불교와 민속신앙이 결합돼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보니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법당이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연구나 실측기록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법당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로서 건축, 조각, 공예, 미술 등을 겸비한 종합예술품이라 할 수 있기에, 세밀한 분석과 연구가 진행돼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

전 박사는 “미륵사지발굴조사단에서 근무할 당시, 당간지주 앞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숨은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법당이 본래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이유로 세웠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해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을 위한 기초작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책도 펴냈고, 지금은 복원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고 있는 당간지주를 제외하고 당간을 복원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현대의 기술로도 천년 이상을 버틸 수 있는 당간을 석재로 조립해 만들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복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면 모형을 만드는 방법도 좋다.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 있는 서탑 모형처럼 당간과 당간지주도 전시관 내에 모형을 만들어 전시한다면, 미륵사지를 방문할 때마다 느껴지는 당간지주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람들이 보다 알기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과 사진 등을 덧붙인다면, 막연하고 생소했던 당간과 당간지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