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신분 초월한 사랑이야기.. 일본 오이타현에도
출생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 맥 같이하고 있어

◇ 백제판 로미오와 줄리엣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인 서동설화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오는 극적이고 애틋한 사랑이야기다.

백제의 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노래를 퍼트려,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 사랑이야기는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이 때 출토된 금제 사리봉영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로써 미륵사를 창건한 사람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간 서동요를 비롯해 세기의 사랑이라고 불려왔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위험에 빠지게 된 것.

백제시대에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으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뤄졌던 사랑이 오늘에 와서도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게 된 셈이다. 말 그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0여년간 이어져 내려온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땅 속 깊숙이 뿌리내리는 마처럼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 탄생부터 결혼, 사찰 건립까지

전해지는 서동설화에 따르면, 백제의 제30대 임금은 무왕이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도성의 남쪽 연못 부근에 집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연못의 용과 연을 맺어 아이가 태어났고, 그 아이는 마를 캐서 팔아 생활을 유지해 서동(마동)으로 불리게 됐다.

그 무렵 신라의 수도에는 진평왕의 셋째 딸로 매우 아름다운 선화공주가 살고 있었다. 서동은 그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고 스님의 모습으로 찾아가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밤에 서동을 안고 사라진다”라는 동요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이러한 내용의 동요가 진평왕의 귀에 들어가 선화공주는 멀리 쫓겨나게 되고, 그 와중에 서동을 만나 백제로 넘어가 살게 됐다. 거기서 선화공주가 지참한 황금을 꺼내 서동에게 주었는데, 서동은 황금의 가치를 알지 못해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선화공주는 “이것은 황금입니다. 이만큼만 있으면 백년의 부도 누릴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서동이 웃으면서 “이런 것이라면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얼마든지 있다”며 자랑했다. 이후 둘은 황금을 산과 같이 쌓아 선화공주의 아버지인 신라 진평왕에게 보내기로 하고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운반을 부탁했다. 그러자 지명법사는 신통한 능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황금을 신라로 보냈다.

이를 계기로 서동은 덕망을 얻어 백제의 왕위에 오르게 된다. 임금이 된 서동은 선화공주를 데리고 사자사에 가던 도중 용화산 아래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난 것을 계기로 절을 세웠는데, 지명법사가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연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고 세운 절이 미륵사다.

마나노장자전설에서는 분고국(미에마치)의 다마다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 어릴 때 이름을 도지라고 했는데, 세 살과 일곱 살에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가 된다. 이후 스미야키타고로라는 사람이 길러 이름을 스미야키코고라라고 불리게 됐다.

당시 나라의 수도에 대신의 딸인 다마스라는 매우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다. 얼굴에 검은 반점이 생겨 결혼할 상대가 없다며 한탄하고 슬퍼했던 공주는 미와명신에게 빌었는데, “너의 남편은 오이타현 미에마치에 사는 스미야키코고로라는 사람이다”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이에 다마스 공주는 스미야키코고로를 찾아 분고국으로 떠나는데, 신의 인도에 의해 오이타현 미에마치에 도착하게 된다.

다마스 공주가 스미야키코고로를 만나 신의 신탁으로 멀리 내려온 이야기를 하자, 스미야키코고로는 당혹스러워한다. 다마스 공주가 지참한 황금을 꺼내 스미야키코고로에게 주며 물건을 사러 보내자, 그는 황금의 가치를 알지 못해 연못에서 놀고 있는 원앙에게 내던지고 맨손으로 돌아온다.

다마스 공주가 “그것은 황금이라고 하는 소중한 보물입니다”라고 하자 스미야키코고로는 웃으며 “이런 것이라면 연못의 주위나 숯가마에 얼마든지 있다”며 연못에 가 많은 황금을 보여줬다.
그 때 물밑에서 금빛의 거북이가 나타났다. 공주가 신의 신탁대로 그 연못에서 얼굴을 씻자 얼굴의 검은 반점이 사라지고 미인이 됐으며, 코고로는 미남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코고로와 다마스 공주는 황금을 모아 눈 깜짝할 사이에 장자가 된다.코고로는 더욱 믿음이 깊어져 당의 천대산에 황금 삼백냥을 보냈고, 천례산에서는 답례로 백제의 승려인 연성법사에서 약사관음의 상을 일본에 보냈다. 장자는 연성법사를 맞이해 연성사를 건립하게 된다.

◇ 두 이야기, 뭐가 다를까

출생과 관련해 서동은 과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코고로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여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전설에서는 코고로를 과자(寡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과부의 아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또한 서동의 어머니는 연못의 용과 연을 맺었지만, 코고로의 경우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다마스 공주에게 신탁을 내린 미와명신의 정체가 수신인 뱀신(용신)이므로, 이 점이 서동설화에 등장하는 용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외에도 선화공주가 동요에 의해 쫓겨나 서동을 만났다는 것에 비해 다마스 공주는 신탁에 의해 코고로를 찾아갔다는 점, 연못 속에서 나타난 것이 한 쪽은 미륵삼존이고 다른 한 쪽은 거북이라는 점 등의 차이가 보인다.

이에 대해서도 당시의 동요는 후에 일어날 일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신의 신탁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있고, 마나노장자가 불교 반대세력으로부터 불상을 지키기 위해 연못 속에 불상을 숨기는데 그 불상이 빛을 발하면서 연못 속에서 나타나 절을 세운다는 내용이 마나노장자전설 별본에 나와 있다.

결정적으로 두 이야기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서동설화가 왕권 신화를 지향해 주인공인 서동의 신비한 출생과 비범함이 강조되고 있는데 반해 마나노장자전설을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설화 속에서 무왕과 선화공주가 건립한 미륵사라고 하는 절은 국가 수호 사찰로서, 무왕이 미륵신앙을 이용해 나라를 통치하고 당시 쇠퇴했던 왕권 회복을 꾀했다는 점이 마나노장자전설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동설화와 마나노장자전설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