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찾은 보물들은 고도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왕궁리·제석사지·미륵사지·입점리·쌍릉이 전부 한눈에

수부명 인장와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익산지역에서 출토됐던 국보급 유물들이 귀향했다.

그간 국립박물관이 없는 익산을 떠나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등에서 전시·관리돼왔던 익산의 대표적인 유물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금강경판함(내함) / 국립전주박물관

사리병·사리함(내함) / 국립전주박물관

지난 19일 찾은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실물 그대로의 진귀한 유물들을 한눈에 살피며 고도 익산의 과거를 통해 다가올 새로운 익산을 가늠하는 계기가 됐다.

연동리석불좌상 광배 탁본 / 원광대학교 박물관

◇ 고대 왕궁 모습 그대로

언제나 왕궁터를 우직하게 지키고 있는 5층석탑을 뒤로 하고 전시관에 들어갔다. 먼저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사리병과 사리함이 눈에 띈다.

지난 1965년 12월 왕궁리5층석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발견된 지 16일 만에 국보 제123호로 지정됐다. 이 사리장엄은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1층 탑신부와 기단부 두 곳에서 발견됐다. 1층 탑신부에 동서로 뚫린 2개의 사리공 중 동쪽에서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마개가 덮여 있는 녹색의 유리사리병과 금제사리함이, 서쪽에서는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판에 새긴 금은제금강경판과 금동함이 발견됐다.

왕궁리5층석탑 

1층 탑신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외관상 우리나라 석탑 사리장엄의 내용상 큰 변화를 볼 수 있다. 유리사리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관련돼 있고, 금은제금강경판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불경으로 법신사리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국내에서는 왕궁리5층석탑에서 처음으로 진신사리에서 법신사리로 변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유물은 수부명 인장와.

목관(재현품) / 국립전주박물관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백제 암키와에는 ‘수부(首府)’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수부는 수도라는 의미로서, 당시 최고 통치자인 왕이 거주하는 곳에 사용됐던 것이다. 전시된 수부명 인장와는 부여의 추정 왕궁터인 관북리유적과 익산의 왕궁리유적에서만 출토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관세음응험기

7세기 전반에 사용됐던 유리구슬과 금제품 등의 장신구, 왕궁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토기류·도가니·항아리 전시와 대형 화장실 모형을 지나면 한 쪽 벽면에 걸린 거대한 탁본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동리석불좌상 광배 탁본이다.

왕궁사명 기와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마치 신성한 법당이나 교당, 혹은 예배당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전시돼 있는 광배 탁본은 그 크기만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연동리 석불사에서 마주친 석불좌상의 모습이 떠오르며, 한편으로는 세밀하게 본떠진 탁본에서 백제 장인들의 세심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이어지는 전시는 왕궁리유적의 정원 모형이다. 당시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모형과 함께 정원석과 왕궁사명 기와가 전시돼 있다.

천부얼굴 / 국립전주박물관

◇ 인기 최고, 악귀상과 천부상

제석사지 폐기장에서 발견된 악귀얼굴과 천부얼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앞에 설 만큼 눈길을 끈다. 이목구비의 형태가 명확하게 남아 있어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악귀얼굴은 그 이름만큼이나 괴팍한 표정을 짓고 있다. 놀라 동그랗게 뜬 눈, 큼지막한 콧망울과 콧수멍, 털 사이로 살펴지는 볼 살 등의 표현이 입체적이며 머리와 뺨, 턱까지 온통 털로 덮여 있는 모습이 원숭이 같은 느낌을 준다.

악귀얼굴 / 국립전주박물관

이에 반해 천부얼굴은 머리카락은 위로 모아 정수리에서 단순한 띠로 묶어 놓았으며 머릿결을 음양각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아 있는 목 부분이나 안쪽의 골조방향 등으로 보아 고개를 약간 치켜든 모습인데 반듯한 코와 인중, 양끝이 살짝 올라간 살포시 다문 입술의 표현이 단아하다. 눈 부분은 균열이 갔지만 지그시 뜬 눈매와 살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도톰한 볼 부분이 어우러져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인상이다.

소조상(손) / 원광대학교 박물관

◇ 역시 왕실의 수준

익산지역에 대한 백제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진 4세기 이후 이 지역에는 마한 전통을 유지하려는 집단이 있었는가 하면, 백제의 귀족으로 편입된 집단도 있었다. 웅포리 고분과 입점리 고분의 굴식돌방무덤에 묻힌 주인공들은 후자에 속한 집단으로 여겨진다. 특히 금동관, 금동신발, 귀걸이, 중국제 청자 등이 출토된 입점리 고분 1호분의 주인공은 껴묻거리의 위용으로 보아 백제의 22담로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풍탁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연구소

입점리 고분에서 출토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시된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은 정교하면서 부드러운 이음새와 금동 위에 새겨 넣은 무늬들이 백제의 수준 높은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금동관모는 반원형 금동판을 좌우에서 붙이고 맞붙인 부분에는 복륜을 돌려 머리에 쓴 고깔모양인데 측판의 일부는 부식돼 있다. 금동신발은 2장의 금동측판을 잔못으로 앞뒤부분을 고정시키고 밑창판을 대어 만들었는데 밑창에는 9개의 징이 박혀있다.

금동관모 / 국립전주박물관

이외에도 무왕과 무왕비의 능으로 알려진 쌍릉은 발견 당시 이미 도굴된 상태여서 부장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대왕릉에서 목관과 옥제장신구, 그리고 치아 3점이 발견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관재현품과 치아, 옥제장신구가 전시되고 있다.

금동신발 / 국립전주박물관

◇ 희소가치 만점, 금동풍탁

미륵사지 금동풍탁은 백제시대 풍탁으로는 유일하게 원형대로 보전돼 조형적으로 매우 우수하면서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앞뒤로 새겨진 연꽃무늬와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양각무늬는 백제공예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에밀레종과 닮아있는 이 풍탁은 우리나라 범종의 시원양식으로 볼 수 있다. 백제나 신라 석탑의 옥개 모서리에는 흔히 풍탁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나 풍탁의 출토 예는 그리 많지 않다. 백제 지역에서는 부여 능산리에서 풍탁이 출토됐고 경주의 감은사지에서도 석탑에 달려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풍탁이 출토된 바 있다.

옥장신구·치아 / 국립전주박물관

◇ 익산국립박물관 건립 전 마지막 기회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지난 18일부터 시작해 다음달 11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기획 전시는 마한과 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고도 익산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시민들에게 익산의 역사문화적인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고도 익산의 모습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인 셈.

연화문수막새·인동당초문암막새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더불어 이번 기획 전시가 끝나면 전시 유물들은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원광대학교 박물관, 미륵사지유물전시관 등으로 다시 분산돼 보관되기 때문에 이후 익산에 국립박물관이 건립되기 전의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크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