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때부터 눈길 끈 지역 기반 프로공연단
60여년 세월 안고 시민들에게 한 발 다가서

◇ 틀려도 웃을 수 있어

“자, 다시 한 번, 처음 인사굿부터 다시 갑니다.”

“덩덩~ 덩덩~ 더더덩 덩덩~ 딱!”

지난 18일 저녁에 찾은 이리농악 전수교육관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무형문화재 무료강습이 한창이었다.

지하 연습실에서 주차장까지 흘러나오는 구성진 장구소리와 환한 웃음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연습실에 들어서자 시민 수강생들을 혼자서 이끌고 있는 이리농악보존회 차승진 사무국장이 “하필이면 오늘따라 결석생이 많네요”하며 반갑게 맞았다.

이날은 20여명의 수강생 중 절반 정도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강사의 목소리와 이에 따르는 장구소리는 전혀 힘이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 오고가는 눈빛과 호흡이 힘차게 느껴졌다.

한 마디 한 마디 강사의 지도에 따라 손놀림이 바빠진다.

궁편 한 번, 채편 한 번 칠 때마다 강사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호흡을 맞추는 그들은 나이는 물론 실력도 천차만별이다. 전수자로 이름을 올려 강사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는 나이 지긋한 실력파가 있는 반면, 나이는 어리지만 한 번 가르쳐주면 둘 셋까지 알아들으며 제법 모양새를 갖춘 중학생, 어제 오늘 처음 장구채를 잡아 따라가기에 급급한 초심자도 눈에 띈다.

어떤 수강생은 막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강사가 치는 장단을 일일이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집에가 혼자 복습할 때 보고 한다는 것. 그 노력과 열정이 가상하다.

이처럼 천차만별 수준의 강습생들을 한꺼번에 이끌고 있는 이리농악보존회 차승진 사무국장은 이리농악의 흥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본래 장구를 치는 농악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며 같이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인지라, 실력은 천차만별이어도 함께 즐기며 웃는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때로는 강사의 불호령 아닌 불호령이 떨어진다.

“지난주에 다 외워 오라는 숙제 있었죠?”

숙제를 열심히 했는지는 장구 앞에 앉으면 금세 티가 난다. 그러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더 열심히 따라가면 될 일. 장구교실은 그래서 즐겁다.

◇ 다채로운 기교의 매력

호남우도농악의 대표인 이리농악은 현 예능보유자인 김형순 선생이 지난 1953년 풍물계를 조직해 활동하다 정식으로 ‘이리농악단’을 설립해 활동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시 지역 곳곳에서 마을 단위로 이뤄지는 농악에 비해, 프로공연단의 성격을 띤 이리농악단은 창단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후 김제, 정읍, 부안 등의 전문적 우도 굿잽이들을 받아들이면서 높은 수준의 농악단을 양성해왔다.

이리농악이 다른 지역의 농악과 다른 점은 상쇠의 부포놀이와 소고춤의 기법, 진풀이가 매우 다양하고 장구의 가락과 춤이 발달돼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느린 가락을 많이 쓰며 가락 하나하나가 매우 치밀하게 변주돼 다채롭다. 또한 풍류굿, 삼채굿에서는 악벌마다 맺고 푸는 리듬기법을 쓰는 등 가락의 기교가 뛰어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초창기부터 마을굿의 특성을 살린 것이 아니라, 전라북도 전체의 우도농악 전문인들이 합세했기 때문에 전문 농악적인 성격이 강해 1985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11-다호로 지정되면서 그 예술적 면모를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농악으로서 전국의 젊은 농악꾼들이 이리농악의 기예를 익히기 위해 이리농악을 찾아와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이리농악의 판제는 첫째마당, 둘째마당, 셋째마당과 뒷굿으로 구분되며, 특히 뒷굿으로는 도둑잽이굿, 상쇠놀이, 설장구놀이, 상모놀이, 열두발놀이, 기놀이 등이 펼쳐진다.

중요 무형문화재인 이리농악은 마을의 역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하는 민속예술로 일상생활의 고달픔을 잊고 서로간의 화합과 마을의 단합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는 예능보유자 김형순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이리농악보존회에서 그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 자연스레 시민과 함께

현재 이리농악보존회는 김형순 선생을 예능보유자로 해서 전수조교 3명, 이수자 50여명, 전수자 130여명으로 총 190여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으며, 매년 5월에 열리는 농악축제와 8월 정기공연에는 이들 중 50여명의 공연단이 꾸려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는 그동안 해오던 정기공연의 형식을 새롭게 바꿔 ‘판열GO 두드리鼓’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주민들의 삶과 함께하는 농악 본래의 생활밀착형 특성을 살려, 주로 논밭과 마을에서 행해지던 농악을 도시에서 판굿으로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유료강습은 주간에 진행되고 있으며, 야간에 진행되는 이번 무료강습을 통해 시민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차승진 사무국장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것이 농악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현동으로 이전하기 전인 1990년대에는 대학생 합숙 전수 때마다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쳐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소음과 관련된 민원은 거의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에는 민간시설이나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농악 강습을 많이 해 이리농악전수교육관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졌는데,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이리농악을 정확하게 배우기 위해서는 정통성 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강사에게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할 것”이라며 “전수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4일부터 시작해 오는 10월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주 2회씩 진행되는 이번 무료강습은 2014년도 중요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용강습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돼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