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됨을 달래기 위한 노래.. 익산에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
식지 않는 애정과 열정.. 보다 많은 관심으로 함께 지켜 나가야

◇ 전통을 이어나가는 열혈청춘

지게의 두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
일꾼들이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풀고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점 그 가치와 존재가 잊혀져가는 익산목발노래를 보존하고 지켜 나가고 있는 익산목발노래보존회(회장 조현숙)를 찾았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이나 사더란 말이냐~”
“얼씨구나 여보소, 농부들 말 듣소, 아나 초동아 말 들어~”

함열 농협 옆에 위치한 익산목발노래보존회 안에서는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 눈빛들만으로도 넘치는 기운을 쉬이 알 수 있다.
비록 40~50대가 주축이 된 그들이지만, 열정만큼은 열혈청춘 20대 못지않다.

다가오는 서동축제의 공연 연습이 한창인 그들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연신 닦아내면서도 서로 호흡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퍼지는 노랫소리에 맞춰 어깨를 들썩들썩, 눈빛과 호흡을 맞춰가며 원을 그리며 지게목발을 두드리고, 지게를 풀었다 멨다 반복하기를 수차례 하고 나서야 비로소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 지게와 농요의 조화.. 익산에서만 볼 수 있어

익산지역은 오래 전부터 호남평야의 중심에 자리 잡아 모내기, 김매기, 벼 베기 등의 다수의 일손이 필요했고, 목발노래는 이러한 여건 속에서 생겨난 익산지역 고유의 문화이다.

특히 지게를 지고 율동을 하거나 지게와 관련된 농요를 부르는 것과 달리, 지게를 통한 율동과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은 익산목발노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점이다.

목발노래는 산타령, 등짐노래, 지게목발노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 상사소리 등 여러 가지 노래로 구성돼 있으며,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곡조의 장단으로 달리 부른다.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벨 때 부르는 산타령은 인생사의 회포를 느린 육자배기로 부른다. 느린 진양조장단에 맞춰 한 사람이 독창으로 길게 메기고 여러 사람이 합창으로 짧게 “구나헤~”하며 여섯 박 한 장단으로 받는다. 산타령이 끝나면 농악을 쳐 다음 곡인 등짐노래로 넘어간다. 지게 위에 나무를 잔뜩 해 짊어지고 내려오면서 부르는 노래로 느린 중모리장단이다.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나 나뭇짐을 지고 신바람을 만들어 낼 때 부르는 지게목발노래는 지게목발을 작대기로 두드리며 부른다.

전체적으로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작대기타령은 창자가 독창을 1절만 부르며 둥당기타령은 작대기타령과 마찬가지로 굿거리장단으로 시나위조로 메기고 받으면서 흥겹게, 상사소리는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른다.

이와 같은 익산목발노래는 놀이와 함께 행해졌는데, 각 노래의 사이사이에는 ‘지게풍장(농악)’이 이어진다. 꽹과리와 함께 앞소리를 메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게를 지고 작대기 두 개로 받는 소리나 추임새로 응하면서 즐겁게 춤추고 노는 집단가무로 이뤄진다.

지게풍장의 가락은 삼채장단이며 대열이 원을 만들어 안과 밖으로 행진하면서 작대기를 치며 노는데, 이것은 농악의 삼채가락을 작대기로 치면서 노래를 흥겹게 장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창한 악기가 없어도, 많은 수의 사람이 모이지 않아도 일을 하며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이 노래는 지극히 익산농경문화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 지켜나가기.. 관심 ‘절실’

익산목발노래의 시작은 지난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49세였던 박갑근 씨가 부친 박해명 씨의 서당에서 동문수학한 전 전북대 이강오 교수의 권유로 부친의 제지를 물리치고 본격적으로 농요 수집과 전수를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인 1971년 ‘익산민속예술농요회’를 조직하고, 그 다음해인 1972년에는 율계 ‘익산목발노래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율계는 삼기지역을 중심으로 전해오던 농요를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됐으며, 당시 삼기·금마·낭산·함열 등지에서 모인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익산목발노래는 1973년 6월 30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고 1984년 박갑근 씨가 익산목발노래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보존과 계승에 힘을 싣는 듯 했으나, 지난 2005년 보유자 박갑근 시가 사망하면서  무형문화재 지정이 해제되는 아픔을 겪게 됐다.

이후 자칫 맥이 끊겨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익산목발노래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데는, 현재 익산목발노래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조현숙 회장의 각고의 노력이 숨어 있다.

조현숙 회장은 고향인 함라에 내려오면서 지역사회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처음에는 고향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했으나, 지인들의 의견에 따라 익산지게목발노래 보존 등 농요를 지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사재를 털어 목발노래 보존과 계승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갈 줄 몰랐다. 시에서 지원도 해줄 것으로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살던 집도 팔아서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무엇보다 익산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유산인 목발노래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익산목발노래보존회는 행정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 2009년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을 위한 함라 문화예술 공동체를 결성해 2012년 4월 27일 재지정을 이끌어 냈다.

그간 정기공연과 각종 초청공연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익산목발노래를 보다 많이 알리고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으며, 지난 3월에는 보존회 사무실을 이전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보존회 관계자는 “행정의 관심과 지원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면서 “지역의 문화단체들이 대부분 힘든 여건 속에서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다툼과 텃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산목발노래에 아직까지도 식지 않는 열정을 쏟아 부으며 이를 지켜나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 고됨을 이기기 위한 흥겨운 노랫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