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과학적인 설계.. 당시 생활상 엿볼 수 있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모습.. 뒤처리는 충격적

◇ 화장실 고고학

배설은 인간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렇기에 의식주 못지않게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화장실이다.
오늘날의 화장실은 과거에는 ‘뒷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말은 ‘뒤에 있는 방’을 의미하는데 뒤는 기본적으로 북쪽이나 어둠, 죽음 등을 뜻을 가지고 있어, 고대에 화장실은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화장실 유적은 사람들이 먹고 배설한 흔적을 통해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몸 상태나 식생활을 추정할 수 있고 감염된 기생충의 분석을 통해 집단생활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화장실의 크기를 통해 해당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지도 알 수 있는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이 화장실 유적을 통해 역사를 파헤치는 화장실 고고학은 1990년대 이후 고대 변소 유구의 퇴적물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정착된 생활고고학의 한 분야이다. 변소 유구의 퇴적물에서 기생충 알, 화분, 씨앗 등의 분석을 통해 고대인의 식생활과 식습관에서부터 정주환경에까지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왕궁리유적의 대형화장실은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과 함께 고도익산의 백제시대 생활상을 조금 더 분명히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 그 시절 생활상 그대로

백제 화장실의 모습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왕궁리유적의 대형화장실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견된 삼국시대 화장실이라는 점에서 자못 그 의미가 크고, 구조에 있어서 기존 중국이나 일본에서 발견됐던 화장실 유구들과 비교해 봤을 때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3년 유적지의 서북편 지역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3기가 나란히 발견된 대형화장실은 궁성 내부의 공간 활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서북편 지역은 화장실과 공방을 제외하고 궁성 관련 시설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지역이다. 오히려 궁성 내부의 물을 외부로 내보내기 위한 대규모의 석축배수로가 조성돼 궁성의 중심 공간과는 다른 공간, 화장실을 포함해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대형화장실에는 궁성 내 동서 방향으로 경사져 있는 지형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다양한 시설이 구축돼 있었으며, 화장실이 경사면에 위치하면서도 유수나 토사가 집중적으로 모이는 지점을 피해 자리 잡음으로써 경사면을 통한 원화한 배수처리, 완만한 경사를 통한 오수의 정화처리 능력을 향상시켰다. 특히 화장실의 중심 공간인 토광에서 동서 석축배수로로 연결된 수로는 오수가 빠져나가는 것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남동-북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있다.

또한 장방형 토광과 좁고 간 수로로 이뤄진 화장실이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석축배수로 남쪽으로 나란히 3기가 놓여 독특한 배치를 이루고 있는 이 대형화장실은 소위 일본의 저류식 화장실과 수세식 화장실의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화 기능을 중시하는 구조를 하고 있다. 길쭉한 모양의 웅덩이를 판 뒤, 나무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발판을 가로질러 사용한 전통 푸세식 방법을 토대로 만들어졌지만, 내부의 고형물은 일정한 높이로 차게 되면 바가지로 퍼내고 오수는 수로를 통과해 성벽 밖으로 빠져나가는 정화조 방식도 함께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분뇨 처리에서 저류식과 수세식의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 ‘왕궁리식 백제 화장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회충, 편충 등 기생충알과 뒤처리를 했던 막대기 등의 출토유물, 주변 유구와의 선후관계나 매몰양상에 대한 연구 결과 7세기 전반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사용되고 폐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동서 석축배수로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완전히 매립돼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난해한 뒤처리 방법

왕궁리유적전시관 안에는 정화시설을 갖춘 백제궁중화장실 축소모형이 설치돼 있어 눈ㄴ길을 끈다. 전시관을 찾은 방문객들, 특히 단체로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에게는 인기 만점이다.
지금과 다르지 않은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모형을 통해 지접 당시 생활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다.

모형 앞에 보이는 항아리 속에는 뒤처리용으로 쓰였던 막대기가 놓여져 있다. 익히 지푸라기나 나뭇잎, 새끼줄을 사용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으나, 나무 막대기의 경우 구체적 사용 방법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올록볼록 엠보싱 화장지 세대의 초등생들은 물론, 신문을 구겨 사용했던 세대들에게도 나무로 된 기다란 막대기는 난해하기가 마찬가지다.

◇ 백제에도 요강이

왕궁리유적의 대형화장실에서 출토되지는 않았지만, 화장실과 관련된 유물로 변기형 토기가 있다. 변기형 토기는 대형화장실의 북편에 위치한 동서 석축배수로에 대한 내부 조사과정에서 2개가 출토됐다.

이 변기형 토기는 화장실과 관련된 도구로 밭에 거름을 주기 위해 똥통의 똥과 오줌을 담아 사람이 들고 다니며 주는 귀때동이와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백제시대 사용됐던 손잡이가 달린 자배기를 약간 변형시킨 형태의 2개의 변기형 토기는 태토나 형태 측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점은 회청색 경질이고 자배기를 양쪽으로 오므려 평면상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구연의 한쪽 부분은 높은 반면에 다른 쪽은 낮은 상태에서 높은 부분의 위쪽이 부분적으로 덮여져 있다. 다른 한 점은 회색 연질이고 구연의 한쪽 부분이 8.4cm 너비의 띠로 덮여 있다.

이러한 변기형 토기는 귀때동이처럼 분뇨를 뿌리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조선시대 매화틀처럼 사람이 볼 일을 본 후 양쪽 손잡이를 잡고 분뇨를 화장실에 버리기 위해 사용한 도구로 볼 수 있다.
이런 유물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형화장실과 달리 왕과 같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위한 특별 도구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고대 왕도로서의 왕궁리유적의 위상을 가늠하게 해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