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드리는 미사와 함께.. 민주화 뜻 이어가는 것이 내 일
노동자·농민 잘 사는 참 경제민주화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

말끔한 개량한복 차림에 몸에 배어있는 온화한 기운, 지그시 미소를 머금은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 소박함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5월 18일 본지의 창간기념일에 맞춰 익산지역은 물론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앞장서 온 5·18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산 증인인 박창신 신부를 만났다.
1942년 용안면에서 200년 넘게 천주교를 믿어 온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자연스레 천주교 교리의 품속에서 성장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73년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 그는 부임 초기부터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도 신부로 활동하며 노동자·농민과 함께 하는 삶을 강조했던 그는 신부로서 은퇴를 한 지금까지도 같이 사람답게 사는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 지금도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데,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박= 5·18을 이야기하자면 먼저 박정희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7월 4일 남북은 자주통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을 원칙으로 하는 7·4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시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통일대박을 믿었던 많은 국민들이 환영하고 좋아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유신헌법을 공포해 대통령 선거 직선제를 폐지했다.

개정 당시 유신헌법의 기본적 성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 지향, 민주주의 토착화, 실질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자유경제질서 확립, 자유와 평화수호의 재확인’이라 했지만, 사실상 유신헌법은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헌이었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권력구조상에 있어 대통령 권한의 비대로 독재를 가능하게 한 헌법이었다.

이와 같이 통일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실제로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고 국민을 탄압하는 것이 이른바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었다.
이에 당시 생각 있는 사람들은 비판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럴수록 정권은 긴급조치라는 이유를 들어 잡아가곤 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시대였다. 심지어는 술 먹다가도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 잡아가는 시대였다.

이후 울릉도 간첩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부마민주항쟁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했고 10·26사건으로 박정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12·12사건을 계기로 무력으로 순식간에 군부와 정치권을 장악한 신군부세력은 비상계엄령을 다시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군사통치 시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유신체제에 이어 민주헌정이 정지되고 민주정치 지도자들이 투옥되는 등 군사독재가 재발하자 국민들의 불만이 극도에 달해 저항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는데, 광주지역에서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며 일어난 것이 5·18민주화운동이다.

당시 여산성당 주임 신부였던 나는 광부 북동성당에서 있었던 전국 모임에 다녀온 사람을 통해 당시 광주의 상황을 알게 됐다. 이후 완전히 폐쇄돼 오도가도 못하고 언론도 통제돼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었다.

여산 성당에서 ‘전두환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인물을 배포하고 당시 광주의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차에 1980년 6월 25일 사제관에서 괴한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지금까지도 다리가 불편한 상태다.

◇ 현 시국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박= 그동안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희생과 열망으로 이뤄온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다시 퇴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이 박정희 대통령 당시의 통일대박론을 떠오르게 한다. 허울 좋은 말들로 국민들에게 제안하고 있지만, 국정원이 개입한 대선에서부터 지금의 세월호 사고까지 일련의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돈을 위해서라면 인권도, 정의도, 도덕성도 중요치 않게 되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구조가 여실히 드러난 하나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해 시국미사에 이어 최근 박근혜 대통령 관련 발언으로 또 다시 이슈가 돼가고 있는데, 부담은 없는지

박= 별다른 부담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격려와 동시에 많은 질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말도 못하는 욕지거리도 수도 없이 들었다. 한동안은 어디를 가도 항상 누군가가 뒤따라 다니는 낌새가 있어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했다. 한 사람이라도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연예인도 아니고 특별한 이슈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일 뿐인데도, 본의 아니게 이름이 알려진 터라 인터넷 댓글뿐만 아니라 편지도 종종 오곤 한다. 정중한 제목을 붙여 보낸 편지에 말로 할 수 없을 만한 내용이 담긴 것도 있지만, 안부를 묻고 격려하며 힘을 내 달라는 당부의 편지가 많이 온다.

◇ 신부님께 민주화운동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박= 굳이 민주화운동이라 칭하지 않아도 그간 노동자·농민과 함께 살아온 삶 자체가 민주화운동의 과정이었다. 도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도 당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의 뜻을 이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참뜻을 알리고 의식화하는 것이 내 일이다.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집회를 열고 투쟁의 현장에서 몸 부닥치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예전에는 그런 모습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절이 있기도 했지만, 민주화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할 것 없이 대통령과 정치인들, 국민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이 바로 민주화다. 특히 현재는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다.

정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특정 계층을 위한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노동자·농민·도시 서민들을 위해 이뤄지는 진짜 경제민주화를 바라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박= 신부로서 정식 은퇴를 하고 난 이후에도 매일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은퇴는 했지만,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는 지역발전을 위한 일을 하려 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익산지역의 발전을 위해 로컬푸드 활성화와 협동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익산지역은 대표적인 도농복합지역이며, 한편으로 백제고도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문화도시이다. 지역 농민들과 소시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로컬푸드 육성과 시민이 주가 되는 협동운동으로 그간 해왔던 민주화운동의 맥을 이어나가려 한다. 아직 머릿속 생각일 뿐 구체적으로 계획된 바는 없지만, 주위에 뜻을 같이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효과적인 방안을 찾고 있는 단계다.

국민이 주인이 되고 같이 인간답게 사는 삶을 위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독재와 독점에 맞서 노동자·농민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도록 하겠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