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가슴으로 앞장섰던 청춘.. 모교에 추모비로 남아
숭고한 희생 기리는 아름다운 뜻.. 매년 장학금으로 전해져

노동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가정의 달 5월에는 주위의 동료들과 가족들, 스승 이외에도 꼭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있다.

바로 민주화의 열망을 담아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던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잊혀 가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현재에 맞게 재정립해 이어나가기 위해서 그 숭고한 희생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때다.

익산지역에도 당시 광주에서 총탄에 맞아 쓰러져 산화한 희생자가 있다. 당시 원광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임균수 열사.

원광대학교 학생회관 옆 잔디밭에는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비록 처음 세워졌던 임균수 광장은 없어졌지만, 그 추모비는 자리를 옮겨 임 열사의 넋을 기리고 있다.

◇ 꼭 기억해야 할 역사의 조각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린 후,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에 반발해 1980년 5월 15일 전국의 학생 연대가 서울역에 모여 대규모 민주항쟁 시위를 벌이자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시켰고, 광주에서도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철폐를 외치는 시위가 진행됐다.

1980년 5월 17일 전남대에 진주한 비상계엄군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구타하고 불법 구금했으며 다음날인 18일 전남대 학생 200여명은 휴교령이 내려진 전남대 교문 앞에 모여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남대학교 학생들과 7공수부대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졌다.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한 학생이 속출하자 학생들은 ‘계엄철폐’, ‘휴교령철폐’를 외치며 중심 대로인 금남로로 진출했고, 이후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내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워 시민들을 진압하기에 이르렀고, 시민들도 군경 저지선을 뚫고 시청건물을 장악하며 대항했다. 이로 인해 광주시의 모든 통신이 끊기면서 광주는 고립됐고 21일 밤 11시경 계엄군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발포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계엄군의 무차별 집단발포와 수위 높은 진압은 계속됐다. 집단발포 이후 시위대는 이에 맞서기 위해 무기를 탈취해 계엄군과 맞섰다.

23일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종교인, 교수 등이 주축이 돼 5·18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수습에 나섰지만 계엄군은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수습위원회는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온건파는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무기를 회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강경파는 ‘김대중 석방’, ‘계엄령 해제’, ‘정치일정 단축’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시민들과 계엄군의 대립은 계속됐고, 결국 1980년 5월 27일 새벽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의 대대적인 무력진압으로 5·18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리게 됐다.

민주화운동 내내 광주의 상황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로 소문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한 폐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북한 무장 간첩의 만행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지만,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언론보도 초기에는 계엄사가 이 사태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그대로 알려졌지만,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됐고,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1980년 5월 17일 전남대 학생들과 계엄군 사이의 충돌로 시작된 5·18민주화운동은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항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광주의 5월에 있었던 10일간의 항쟁, 5·18민주화운동은 유신체제를 계승한 제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문민정부가 탄생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5·18민주화운동, 지금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의 한 조각이다.

◇ 자유를 목 놓아 외치던 음성

열렬히 민주화를 외치던 1980년 5월 광주의 한가운데, 바로 임균수 열사가 있었다.
당시 원광대학교 한의대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그는 평소 주말이면 원불교 교당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통해 동기들에게 의료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던 학우였다고 전해진다. 한의학을 통해 바른 의료인이 되기를 꿈꾸며 열심히 삶을 살았던 임 열사.

광주에서 울려 퍼진 민주화를 열망하는 외침은 피 끓는 그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금남로 시위대열에 함께 하게 했다.

휴교령이 내려져 예정된 봉사활동을 취소하고 광주로 내려간 그는 초파일이라 부모님이 고향인 순창으로 부처님 오신 날 관등행사에 간 사이,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나서 맨 앞에 섰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사라진 지 이틀 만인 21일, 애타게 찾고 있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싸늘하게 식어 있는 시신의 모습이었다.

도청 앞 시위 도중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진 꽃다운 청춘은 현재 광주 망월동 국립 5·18묘지 제1묘역 47번에 안장돼 있으며, 모교인 원광대 교정에 추모비로 남아 매년 5월 광주의 뜨거웠던 민주화의 열망을 전하고 있다.

◇ 죽은 아들을 대신하는 마음의 아들

꽃다운 나이의 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임 열사의 아버지는 분노와 슬픔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몇 달 동안이나 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렇게 마냥 있는 것이 죽은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아들의 몫으로 나온 보상금과 사재를 털어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숭고한 희생에 못지않게 이어진 나눔, 죽은 아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아버지의 뜻은 매년 임 열사의 모교인 순창북중고와 광주인성고에 50만원, 원광대학교에 100만원씩 임 열사를 대신하는 마음의 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