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 창건시기 및 동기.. 서동설화와의 비교 포인트
무왕의 전략적 요충지.. 7세기 고도익산의 위상 드러나

◇ 주목할 만한 역사의 기록

지난 2009년 1월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주목할 만한 부분들이 많다.
발견된 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 양면을 이용해 글자를 음각하고 주칠했다. 앞면에는 1행 9글자씩 모두 11행에 걸쳐 99자를 새겼으며, 뒷면에도 11행에 걸쳐 모두 94글자가 적혀 있다.

우선 미륵사의 완공시기를 확실히 알려주는 639년이라는 연대가 나와 있다. 정확한 창건시기와 함께 창건 동기도 알려주고 있다. 미륵사의 창건 동기에 대해서는 왕과 왕비의 장수를 빌고, 왕이 위로는 정법을 널리 펴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무왕을 ‘대왕 폐하’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는 당시 백제가 대내적으로 왕권이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군주와 버금가는 위치에 있었음을 미뤄 짐작케 한다. 이전 발견된 자료 중에서 무왕을 대왕으로 표기한 사료는 관세음응험기가 있다.

◇ 사비재천도와 천도포기설 일축

“봄 2월, 사비의 궁궐을 수리하고 임금이 웅진성으로 갔다. 여름에 가뭄이 들어 사비의 궁전을 수리하는 일을 중지했다. 가을 7월, 임금이 웅진에서 돌아왔다.”

삼국사기27 무왕 31년(서기 630)에 기록된 내용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 기록을 왕실에서 익산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게 돼 사비로 재천도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들기도 했으며, 천도포기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 기록을 근거로 익산으로의 천도를 초기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발견된 사리봉안기에 미륵사를 639년에 창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639년 이훼도 여전히 왕실에서는 익산지역을 중요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고, 사비재천도와 천도포기설은 그 근거를 잃게 됐다.

◇ 차이를 드러낸 영웅설화

삼국유사 무왕조에 실린 서동설화에 따르면, 왕후는 선화공주이다. 하지만 발견된 사리봉안기는 이러한 설화와 전면적으로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왕의 왕후에 대해 대성팔족 중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사씨로 기록하고 있는 것.
서동설화에서는 과부와 지룡 사이에서 태어난 서동이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 기지를 발휘해, 신라의 절세미인이었던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해 백제의 왕으로 등극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어 왕으로 등극한 무왕과 왕비가 연못에서 솟아나온 미륵삼존불을 기념하기 위해 미륵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미천한 신분이었던 서동이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는 영웅설화와 미륵사창건 연기설화라는 두 개의 설화가 하나로 합쳐진 셈이다.
사리봉안기에서도 설화와 마찬가지로 왕후가 미륵사를 건립하기 위해 발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나타난 모습에서도 습지를 메꿔 미륵사를 건립하고 3탑 3금당의 가람배치를 한 것으로 밝혀져 설화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미륵사 건립의 목적과 관련해서도 사리봉안기에서는 무왕과 왕후의 장수를 빌고,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무왕의 치세가 오래도록 이뤄져 정법 통치와 창생을 교화하는 것을 바랐음을 알 수 있다.

서동설화에서는 연못 속에서 솟아나온 미륵삼존불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전해지고 있다. 미륵불이 도솔천에서 깨달음을 얻어 지상에 내려올 때 지상을 통치하고 있는 왕을 전륜성왕이라고 하는데, 이 왕은 정법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법륜을 굴려 이 세상을 통일하는 왕을 의미한다. 연못에서 솟아나온 미륵삼존불을 기리는 것이 미륵의 정토가 이 세상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면 정법을 넓히고 창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사리봉안기가 서동설화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무엇보다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편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점이다.
결국 서동설화와 사리봉안기, 그리고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비교해 보면 일치하는 부분은 미륵사창건 연기설화의 부분이고, 서동과 선화공주 사이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영웅설화 부분은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륵사창건 연기설화의 경우에는 사실을 반영하는 측면에서 일치를 하고 있고, 영웅설화는 그 성격상 과장과 왜곡이 심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 무왕에게 익산은 왜 중요한가

사비로 천도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사씨 세력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될 정도로 사씨는 사비시기에 큰 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당시 무왕의 익산경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열려 있다.

우선 익산지역에서 과부의 아들로 태어난 무왕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사씨의 도움으로 왕위에 즉위해 자신의 출생지이자 성장지인 익산을 중시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법왕의 아들이었던 무왕이 익산을 세력 근거지로 하고 있었던 사씨의 도움을 받아 익산을 중시하게 됐을 수도 있다. 혹은 사비에서 익산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려 했던 사씨 세력이 익산에서 태어난 무왕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를 왕위에 즉위시켜 익산을 중시하게 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와는 별도로 지리적인 요충지로서 익산이 중요시됐을 가능성이 있다.
법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무왕에게 남겨진 정치적 숙제는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의 오랜 분열시기인 남북조를 통일한 수·당제국의 등장으로 비롯된 한반도 내에서의 통일전쟁에서 주도권을 쥐는 일이었다.

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왕은 신라의 정벌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무왕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접근하기 위해 중간거점인 합천으로 갈 수 있는 최단거리 코스가 필요했다. 운봉고원을 넘어 함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염두에 둔 무왕이 남원으로 빠질 수 있는 교통상 요충지인 익산을 중시했던 것이 아닐까.

함양으로의 진출을 시도한 무왕은 신라의 서변을 지속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새로운 군사 거점이 필요했다. 또한 수나라의 고구려 정벌을 눈치 챈 무왕은 수나라를 이용한 고구려정벌을 꾀하면서 동시에 고구려의 침공을 받기도 했기에 고구려 침공을 대지하기 위한 새로운 군사거점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들로 미뤄볼 때 무왕에게 익산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