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의 일대기가 살아있는 문화유산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및 완전성 지니고 있어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과 국내·외 전문가 초청 예비실사가 이뤄졌으며, 이달 중 유네스코 해외전문가 초청 예비실사와 오는 9월 이코모스(유네스코 자문기구) 현지실사를 앞두고 있다. 이후 2016년 6월경 등재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에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백제문화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그리고 완전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익산지역의 문화유산들을 다시 한 번 되새김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마한에서 백제까지

익산지역은 예로부터 농경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곳으로 호남평야와 더불어 금강과 만경강이라는 수로교통의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이래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한 곳이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그 남쪽에는 만경강이 흐르고 있으며, ‘옥야’로 불릴 만큼 비옥하고 너른 들이 펼쳐져 한 국가를 세우고 남을 만큼 풍요로웠다. 금강과 만경강에서 뻗어나는 물줄기는 금마와 왕궁 일대까지 들어왔는데, 이 물줄기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곳으로 진출하기 위한 통로가 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익산은 본래 마한국이고, 후에 조선 왕 기준이 위만의 난을 피해 바다를 건너 남쪽 한의 땅에 다다라 개국해 거듭 마한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익산은 고조선 왕이 남천한 곳이자, 마한의 중심이었다.
또한 ‘후한서’ 한전에 따르면 ‘준왕 후손이 절멸하자, 마한인이 다시 자립했다’고 전한다. 이는 곧 외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조선 준왕의 후손을 대신해 토착 세력이었던 마한인들이 득세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익산지역에서 고조선 세력을 대체한 마한인이 세운 국가는 건마국으로 추정된다. 건마국은 처음에는 고조선 준왕의 세력을 대신해 마한연맹의 맹주를 자처했으나, 점차 그 지위를 목지국에 내줘야만 했다. 또한 백제가 성장함에 따라, 영산강 유역의 마한연맹체처럼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못하고 점차 백제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본래 마한의 도읍이었으며 금마저로 불렸던 백제 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중요한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익산은, 조선시대의 지리학자 김정호가 별도설을 주장한 이후 천도설, 별부설, 경영설 등 많은 이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주장이든 간에 궁성유적과 더불어 왕릉, 사찰, 성곽 등 도읍과 관련된 유적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 익산은 고대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 무왕의 일대기가 담긴 익산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서동의 신비한 탄생과 마를 캐어 팔아 홀어미를 모시는 극진한 효심, 평민의 몸으로 신라 공주 선화와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무왕으로의 등극, 미륵사의 창건, 진평왕의 조력 등이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 따르면, 익산은 무왕이 백제의 중흥과 삼국의 평화를 꿈꿨던 곳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들 또한 기록들을 방증하고 있다. 익산은 바로 서동의 출생부터 성장, 무왕으로 등극해 건립한 왕궁과 제석사나 미륵사 등 왕실사찰과 국가사찰, 많은 성곽의 축조, 그리고 무덤에 이르기까지 무왕의 일대기가 살아있는 유산인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관세음응험기, 미륵사지 석탑 출토 사리봉안기 등의 사료와 지난 30여년간의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유적들을 통해 백제 왕도로서의 진정성과 백제문화의 국제성, 당시 백제예술문화의 세련미와 독창성, 우수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 무왕조의 기록이나 미륵사지 건립 등의 사실에 비춰볼 때, 백제 무왕은 익산 금마저의 건설을 통해 원융과 통섭의 정신을 담아 평화와 번영의 영속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익산을 근거로 백제 부활과 삼국일통을 꿈꿨던 무왕을 통해 왕도로서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왕궁리유적의 궁장시설이나 미륵사지 등의 사찰유적은 7세기 전반 한·중·일 삼국의 문화교류 현황과 익산 백제문화의 국제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압도될만한 크기의 대형 석불과 광배의 조성이나 독특한 미륵사 삼원의 가람배치, 석탑과 석등의 조성, 불전 내부의 공간조 마련, 최초의 암막새 사용, 녹유연목와의 제작, 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을 통해서는 백제의 예술미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 마룡지에서 태어나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서동의 탄생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국도 남쪽 연못가에 한 과부가 살았는데, 못 속의 용과 정을 통해 낳은 것이 서동이다. 어린 서동은 마를 캐어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는데,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라로 가서 서동요를 불러 선화를 취해 온다. 그리고 인심을 얻어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곧 무왕이다.

이처럼 무왕의 어렸을 때 이름은 서동이었으며, 용의 아들로 표현해 한 나라의 창건설화에 버금가는 탄생의 신비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룡지 옆에 서동의 어머니가 집을 짓고 살았던 터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마룡지 동쪽에는 비교적 넓은 대지에서 백제시대 기와와 더불어 토기편들이 수습되고 있어 이곳을 무왕이 탄생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 왕도를 가리키는 유적들

왕궁리유적 발굴조사에서는 남북 492m, 동서 234m, 폭 3m 규모의 궁성이 확인됐다. 이 안에서는 대형 건물지와 정원시설, 후원시설, 공방시설, 환수구시설 등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토기와 기와, 유리, 금제품, 도가니 등 4,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특히 ‘수부’라고 인각된 명문와가 출토돼 익산이 고대 도성의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
수부는 수도라는 의미로서 당시 최고 통치자인 왕이 거주하는 곳에 사용됐으며, 수부명 인장와가 출토된 곳은 익산 왕궁리유적과 부여의 추정 왕궁터인 관북리유적이 유일하다.

왕궁리유적 내부의 왕궁리오층석탑 아래에서 확인된 목탑터와 더불어, 그 북쪽 불전의 판축층과 대규모의 강당터 등은 이곳이 백제시대 대관사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8년(661)조에 ‘대관사 우물이 핏빛으로 변해 금마군 땅에 5보나 넓게 흐르더니 왕이 돌아가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무열왕의 죽음을 예고하는 이변이 일어난 곳으로 기록될 만큼 대관사는 백제에서 상징적인 사찰이다. 대관은 왕을 의미하며 대관사는 왕의 사찰이기 때문이리라.

주변에서 출토된 명문기와에 ‘대관관사(大官官寺)’, ‘관궁사(官宮寺)’, ‘왕궁사(王宮寺)’ 등의 사찰명이 보이는 것 또한 왕궁리유적 내부에 건립된 사찰이 백제시대 대관사였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왕궁리오층석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발견된 지 16일 만에 국보 제123호로 지정됐다. 이 사리장엄은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1층 탑신부와 기단부 두 곳에서 발견됐다. 1층 탑신부에 동서로 뚫린 2개의 사리공 중 동쪽에서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마개가 덮여 있는 녹색의 유리사리병과 금제사리함이, 서쪽에서는 금강경의 내용을 19장의 판에 새긴 금은제금강경판과 금동함이 발견됐다.

1층 탑신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외관상 우리나라 석탑 사리장엄의 내용상 큰 변화를 볼 수 있다. 유리사리병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관련되고 금은제금강경판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불경으로 법신사리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국내에서는 왕궁리오층석탑에서 처음으로 진신사리에서 법신사리로 변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