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사리장엄·석등하대석·당간지주.. 고스란히 남아있는 미륵사지
무왕의 포근한 안식처 제석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기다려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과 국내·외 전문가 초청 예비실사가 이뤄졌으며, 이달 중 유네스코 해외전문가 초청 예비실사와 오는 9월 이코모스(유네스코 자문기구) 현지실사를 앞두고 있다. 이후 2016년 6월경 등재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에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백제문화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그리고 완전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익산지역의 문화유산들을 다시 한 번 되새김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눈으로 보고, 직접 느끼며

세계유산 등재는 무엇보다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인류 공영의 문화상이 담겨 있다는 국제적 인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영예롭다.

또한 등재된 유산을 활용해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누릴 수 있고, 체계적인 관리와 통제에 의한 문화유산 보존 효과를 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특히 익산은 특별하다. 그 이유는 흔히 백제의 고도로 일컬어지는 공주나 부여에 비해 월등한 양과 질의 문화유적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

왕도의 조건으로 거론되는 궁성과 왕실사찰, 성곽과 왕릉까지 모든 조건이 전해 내려오는 기록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유물로 발견돼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사의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문헌의 기록보다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백제시대의 문화유산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 특수성과 독창성이 오히려 세계유산 등재에 걸맞은 가치가 아닐까.

◇ 희대의 사찰, 미륵사

삼국시대 백제의 영역이었던 익산지역은 일찍부터 백제의 중요한 지방 거점 가운데 하나였지만, 명실상부하게 왕도로서 자리매김한 것은 무왕대였다. 왕궁리에 조성된 궁성과 궁성 주변의 산성, 왕실사찰인 제석사의 창건, 그리고 새로운 신앙이자 통치이념인 ‘미륵신앙하생’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창건한 미륵사를 보면, 무왕이 치밀한 계획 아래 익산을 백제의 또 하나의 왕도로 만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왕위에 오른 무왕과 선화공주는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수레에서 내려 경배했다. 이를 기화로 선화공주는 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지을 것을 소원했고 무왕은 이를 허락해 사찰을 조성했다. 커다란 못을 메울 방법이 없자 지명법사는 산을 허물어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웠고 신라의 진평왕도 백공을 보내어 도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건립된 국가사찰 미륵사, 그 터인 미륵사지에서는 그간의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유물을 포함 약 2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돼 삼국유사 창건기록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람 구조는 탑과 불전을 3곳에 배치하고 주변을 회랑으로 구획한 삼원병치 형식이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다. 이 삼원병치의 배치형식은 미륵삼존이 용화보리수 아래에 하생성불하는 모습을 가람으로 구상화했다고 하는 점에서 탁월한 백제문화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3개의 탑은 중앙 목탑과 동·서 석탑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동탑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돼 있으며, 서탑은 해체복원 작업 중이다.

서탑은 14m 높이로 6층까지만 남아있는 대규모의 석탑이다. 주초와 민흘림이 있는 기둥, 귀솟음의 기법, 기둥 위의 평방 설치, 1층 4곳에 출입시설을 해 내부공간을 갖춘 구조, 귀가 반전된 날렵한 옥개석 등 세부적인 기법까지 목탑의 모습을 돌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되는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백제인의 천재적인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체복원 작업을 하던 중 1층 심주석 상면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미륵사 창건사실의 진정성을 한층 더 높여줬다. 한 변 25cm, 깊이 27cm의 방형사리공에서 삼중으로 구성된 사리저장용기를 비롯해 금동제사리봉안기, 은제관식, 금제소형판, 청동합, 칼, 금괴, 금실, 판유리 등이 출토됐다.

사리저장용기는 금동제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 유리제사리병으로 구성돼 있으며, 15.3×10.3cm 크기의 사리봉안기에는 앞·뒷면에 193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안에 기록된 기해년의 간지는 639년에 사리봉안이 이뤄졌음을 밝혀주고 있어 사리장엄구의 가치를 더해준다. 또한 사리봉안기는 대왕의 수명과 왕비의 복리뿐만 아니라 창생교화와 중생성도의 염원을 담고 있으며, 백제의 왕후가 당시 좌평이었던 사택적덕의 딸로 기록돼 있어 삼국유사에 기록된 왕후 선화공주와 차이를 보여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인 미륵사지 불전은 초반석 위에 1m 가량의 장주형 초석을 놓아 기단 안에 공간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간구조는 이보다 늦게 만들어진 경주 감은사에서도 발견됐는데, 동해의 용이 된 태종무열왕이 불전 공간 속에 들어와 서리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미륵사지 불전의 공간구조 역시 삼국유사에 무왕의 탄생을 용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용 신앙과 관련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미륵사지 중원과 동원의 탑과 불전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하대석은 우리나라 석등의 시원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사찰의 행사나 의식 때 당을 걸어두는 간을 지탱하던 당간지주 2기가 미륵사지 경내에 90m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 무왕의 안식처, 제석사

왕실사찰인 제석사의 터는 왕궁리유적 동편 1.2km에 자리하고 있다.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제석사는 무왕이 천도해 지은 사찰로 639년에 뇌우로 법당과 7층 목탑, 회랑 등이 모두 불탔으나 심초석에 있던 사리병은 무사히 남아 다시 절을 짓고 사리를 모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제석을 환인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국조신앙의 의례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던 무왕대의 절터임을 알 수 있다.

왕궁의 북쪽 넓은 후원을 지나 무왕이 이따금씩 들러 마음의 안식을 얻었을 법한 왕실사찰 제석사, 그 터인 제석사지는 지금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종합정비사업 실시로 거적때기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 목탑지와 깔끔하게 정돈된 금당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강당지와 승방지, 회랑지 등의 모습에서 백제무왕의 안식처 제석사를 머릿속에 그려 본다.

이울러 제석사지 북동쪽 200m에 위치한 제석사지 폐기유적은 639년 제석사의 화재 잔재물을 폐기한 곳으로, 시굴조사에서 다량의 연화문 수막새 등 와편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뛰어난 소조상 파편 345점이 출토됐다. 천부상은 그 중 하나로, 머리카락은 위로 모아 정수리에서 단순한 띠로 묶어 놓았으며 머릿결을 음양각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아 있는 목 부분이나 안쪽의 골조방향 등으로 보아 고개를 약간 치켜든 모습인데 반듯한 코와 인중, 양끝이 살짝 올라간 살포시 다문 입술의 표현이 단아하다. 눈 부분은 균열이 갔지만 지그시 뜬 눈매와 살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도톰한 볼 부분이 어우러져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