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힐링 선사하는 자비의 도량
살아있는 전통 사찰문화 체험학습의 장

가만히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무더위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더위를 잊고 휴가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찾아오는 시기다.

하지만 일상에 치여, 시간이 없어, 할 일이 많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
익산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담 없이 찾아가 볼 만한 휴식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함라산 숭림사.

웅포면 송천리에 위치한 숭림사는 시내권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힐링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장소다. 더욱이 푸르른 산사의 녹음이 무더위를 잊게 하는 데 그만이다.
지금이라도 거창한 휴가계획이 아니라, 잠시 시간을 내 일상탈출에 도전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그늘 드리워진 시원한 오솔길, 기분 좋은 산바람

724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숭림사를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안내에 따라 약 800m 정도를 들어가면 멀찌감치 방문객을 반기는 일주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굳이 산사에 도달하지 않아도 고즈넉한 기운이 벌써 느껴진다.
해는 뜨겁지만 오솔길에 드리워진 시원한 그늘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산사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닦아내 준다.
일주문을 지나 숭림사 안쪽으로 들어가면 먼저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한창인 매미소리가 거슬리지 않고 기분 좋게 들려온다.
평일 한낮임에도 불구, 일상탈출을 시도한 삼삼오오의 방문객들이 오가는 모습에서 힐링에 안성맞춤인 숭림사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되새김하게 된다.

사찰 안에서는 17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찾는 이를 맞아주는데, 특히 범종각과 우화루를 지나 보물 제825호로 지정돼 있는 보광전과 그 안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좌상 그리고 보광전에 진채로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가 눈길을 끈다. 포벽에 그려진 비천도, 백묘화인 나한도, 묵화인 산수인물도와 대나무·매화그림 등 그 소재도 다양하다.
보광전 오른쪽에 자리한 영원전에는 지장보살좌상과 시왕 및 그 권속들로 이뤄진 25구의 불상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원전 위쪽으로 나한전과 좁은 오솔길을 지나 산신각, 보광전 앞 오층석탑, 보광전 왼쪽으로 정혜원, 안심당, 적묵당, 향적당 등이 자리해 함라산 자락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채 찾아오는 이들에게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비단 불교인만의 사찰이 아니라 익산시민은 물론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곳곳에 배어있는 아늑하고 상쾌한 기운을 전해주는 곳, 그 곳이 바로 숭림사다.

◇ 간절한 바람과 영험한 기운

‘숭림사’라는 이름은 달마대사가 9년간 수도했던 중국의 ‘숭산 소림사’에서 각각 ‘숭’자와 ‘림’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법을 전한 것과 같이 선풍을 드높이고자 했던 옛 스님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름에 담겨 있는 것.

이 숭림사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때는 1345년 고려 충목왕 때.
왕궁에서는 충목왕의 왕비 몸에 난 등창으로 근심이 가득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여러 의원들이 병을 고치려 했으나, 등창은 갈수록 심해지고 왕비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지난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됐다. 꿈속에서 어느 사찰에 자신이 머무는 동안 병이 씻은 듯이 낫게 됐고, 꿈에서 깨어난 왕비는 그 사찰의 모습과 산세를 일러주며 절을 찾게 하였다.
마침내 찾게 된 절이 바로 지금의 숭림사였으며, 왕비는 숭림사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관음보살에게 일주일간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기도를 드리던 날, 기도 중 향긋한 향기에 취해 잠시 잠에 빠져든 왕비는 꿈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자신의 몸에 난 등창을 핥아주는 꿈을 꿨다. 이후 잠에서 깬 왕비는 몸이 날듯이 가벼워졌음을 느끼고 등창을 살펴보니 깨끗이 나은 채 미묘한 향내음이 풍기는 것이었다. 이에 왕비는 관음보살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으며, 병이 완치돼 궁궐로 돌아간 왕비는 그 이후 숭림사에 전답을 하사하고 왕실의 원찰로 삼아 관음기도의 도량으로 삼게 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익산구지에서는 숭림사의 보광전을 고려 충목왕 원년(1345)에 행여선사가 선종사찰로 창건했으며 기와를 조성했다는 명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숭림사는 조선 명종 9년(1554) 보광전이 불에 탔으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도 전각들이 소실됐으나 보광전만은 화를 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숭림사 앞의 금강은 왜구들이 식량을 노략질하는 창구가 돼 당시 처영 스님이 이끄는 승병들이 숭림사를 근거지로 그들을 위협하며 곡창을 지켰다. 이러한 이유로 숭림사는 왜적의 표적이 돼 임진왜란 때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 후 숭림사는 10년 만인 광해군 5년(1613)에 겨우 우화루를 중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란으로 소실된 사찰은 한동안 폐허처럼 있다가 민심이 수습되는 광해군조에 이르러 비로소 중창불사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숭림사는 이후 다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 제12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한 지광 스님이 주석하며 20년간에 걸쳐 중창불사를 완공해 여법한 대가람으로 만들어 2010년 4월 10일 회향했다. 현재 숭림사는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 말사이다.

◇ 나를 위한 여행, 템플스테이

사찰에 머물며 절에서 행해지는 전통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문화유산과 더불어 산사를 감싸고 있는 함라산의 탁월한 경관으로 인해 매년 숭림사를 찾는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산중에 위치한 사찰이기 때문에 자연친화적이며 교통편이나 지리적 주변여건이 템플스테이를 하기에 적합한 것이 그 이유다.

또한 호수를 끼고 있는 웅포문화센터와 인근 입점리고분군, 미륵사지 석탑, 곰개나루터, 웅포골프장, 삼부자 고택지, 황토방 등 주변문화와 연계해 살아있는 문화체험장으로 여건이 좋다는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숭림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참선과 명상, 예불, 발우공양, 운력, 선요가, 사경·탱화·탁본 등의 문화체험까지 사찰에서 전해 내려오는 각종 수행 생활방식과 사원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이 있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에서의 생활을 체험하는 여행이므로, 먹고 마시는 ‘소모성’ 여행과는 달리 심신의 ‘휴식’과 ‘안정’을 중요시한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사찰에서 지켜야 할 법당예절은 물론 기초예절을 반드시 숙지해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숭림사 주지인 지광 스님은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자칫 먹고 마시는 것이 주가 되면 중구난방이 되기 십상”이라며 “관광의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찰의 프로그램에 따라 등 수련을 위한 마음가짐이 우선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여름에는 고즈넉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를 벗 삼아, 마음의 여유를 찾는 단기 출가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