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이고 애틋한 로맨스의 주인공.. 아직까지 마음 속
사택왕후 명문 드러나 존재 위기.. 이전의 왕후일지도

‘서동요’를 통해 백제 무왕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선화공주에 대해,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간 삼국유사 무왕조의 기록을 근거로 해 서동설화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왔던 선화공주의 존재는, 지난 2009년 미륵사지석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영기에서 무왕의 왕비가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기록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돼 왔다.
지난달 22일 충북대학교 인문대학 합동강의실에서 백제학회(회장 김주성)의 주최로 ‘백제사연구 쟁점 대해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 학술회의에서 백제사 연구 권위자인 계명대학교 노중국 교수는 2009년 미륵사지석탑에서 나온 사리봉영기의 기록과 관련해 선화공주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 위기의 선화공주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백제시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인 서동설화.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오는 극적이고 애틋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백제의 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노래를 퍼트려,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 사랑이야기는 지난 2009년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이 때 출토된 금제 사리봉영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희사해 가람을 세우시고’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기록을 근거로 미륵사를 창건한 사람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간 서동요를 비롯해 세기의 사랑이라고 불려왔던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위험에 빠지게 셈이다.

백제시대에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으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뤄졌던 사랑이 오늘에 와서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게 된 것.
그간 학계에서는 사리봉영기의 기록에 비춰 이전부터 전해졌던 선화공주의 존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미륵사 창건과 선화공주에 관한 갖가지 설이 제기됐다. 수많은 학술회의와 논문 등에서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라는 측면에서 선화공주보다는, 금석문에 기록된 사택적덕의 딸이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0여년간 이어져 내려온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땅 속 깊숙이 뿌리내리는 서동마처럼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듯 보인다. 시시각각 급속도로 변해가는 유행가 가사 같은 사랑보다는, 국경과 신분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애틋하게 나눴던 그들의 사랑이 아직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 선화공주가 선비, 사택씨 왕후가 후비일지도

지난달 22일 백제학회 발표회 자리에서 노 교수는 “미륵사지 전체를 발굴한 결과 가람배치와 축조 모습은 삼국유사 무왕조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륵사 창건을 발원한 무왕과 선화공주가 결혼한 사실만을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 간의 결혼은 정략결혼이므로 여기에는 정치적 판단이 우선하며, 도리어 전쟁 중에도 결혼이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에 무왕이 신라와 전쟁을 빈번히 벌였다고 해서 신라 왕녀와의 결혼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왕비 문제는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 어느 가문의 여성을 왕비로 맞이하느냐는 당시 정치 세력들 사이의 역학 관계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왕의 왕비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고,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의 결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를 토대로 이전까지는 백제 무왕의 왕비가 당연히 선화공주일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고, 국경을 뛰어넘은 무왕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로맨스는 ‘서동요’를 통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륵사지석탑에서 사리봉영기가 출토되면서 그간 전해졌던 이야기에 반론이 제기됐다. 출토된 사리봉영기에는 무왕의 왕비가 사택적덕의 딸로 나온다. 이는 왕실에서 만든 금석문에 기록된 것이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를 근거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결혼은 허구이며 선화공주는 가짜 존재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선화공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고 익산 출신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결혼이 설화적으로 표현돼 있어 믿기 어렵다는 것과  무왕 대에 신라와의 전투가 너무 빈번했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 결혼이 맺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 교수는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무왕의 나이에 비춰볼 때 사택씨 왕후만이 처음부터 왕후였다고 볼 수는 없다. 사택씨 왕후는 무왕의 첫 왕비가 아니라 먼저 맞은 왕비가 죽은 후 새로 맞아들여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선화공주가 선비이고 사택씨 왕후는 후비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택씨 왕후의 존재만으로 선화공주를 가공의 인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의자왕의 어머니는?

노 교수의 견해에 따라 선화공주와 사택씨 왕후 모두를 인정할 경우, 정리해야 할 문제는 무왕의 원자로서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된 의자왕을 낳은 모후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의자왕의 모후에 대해서는 선화공주나 사택씨 왕후 또는 또 다른 제3의 왕비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의자왕의 모후를 추정하는데 단서가 되는 것이 의자왕의 출생 시기이다. 의자왕의 출생 시기에 대해서는 아들 부여 융의 출생 연도를 근거로 개략적인 시기를 추론해 볼 수 있다.

부여 융 묘지명에 의하면, 융은 682년에 6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그는 615년(무왕16)에 출생했고, 644년(의자왕4)에 30세의 나이로 태자로 책봉됐다. 부여 융이 태어난 615년에 의자왕의 나이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20대 초반으로 추정되고, 그렇다면 의자왕의 출생 연도는 595년이나 그 이전이 된다. 595년은 아버지 무왕이 왕위에 오르기 5년 전이다. 따라서 무왕은 왕이 되기 전에 결혼해 의자왕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무왕은 왕이 되기 전에 몰락왕족으로서 익산에서 서동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했다. 이러한 사실과 연관시켜 볼 때 무왕의 첫 부인은 익산 출신 가문의 여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첫 부인이 595년 이전에 서동과 결혼해 의자왕을 낳고, 600년에 서동이 무왕으로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됐을 가능성이 크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