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상대로만 전쟁 13차례.. 첨예한 대립관계
치열했던 관계 속, 애틋했던 선화공주와의 사랑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사귀어 두고(池密只嫁良置古) 서동 방을(署童房乙) 밤에 뭘 안고 가다(夜矣卯乙抱遺去如)”

백제 무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퍼뜨렸다는 서동요의 내용이다.

무왕은 어린 시절 마를 캐서 생계를 꾸려 이름이 서동(署童)으로 불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주가 서동과 사랑에 빠졌다는 노래를 들은 진평왕은 크게 화가 나 공주를 귀양 보내게 되고, 외롭게 귀양길을 떠나는 선화공주를 서동은 기꺼이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백제 역사상 신라와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무왕. 당시 계속되는 전쟁 중에서 신라 공주와의 혼인과 미륵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의 건축이 가능했을까.

백제 무왕과 신라와의 적대적 관계를 감안하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서동과 아름다운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사람들은 믿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치열했던 적대적 관계

당시 백제 무왕과 신라가 적대적 관계였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백제본기] 무왕 3년(602) 가을 8월, 왕이 군사를 내어 신라의 아막산성을 포위하니 신라왕이 정병 수천 명을 보내어 항전해..신라는..네 성을 쌓고 우리지역을 침범하므로 왕은 노해 좌평 해수로 하여금 보기병 4만을 거느리고 나아가 그 네 성을 공격하니..우리 군사가 패했다. 해수는 겨우 몸을 벗어나 홀로 말을 타고 돌아왔다.
[신라본기] 진평왕 24년(602) 가을 8월, 백제가 와서 아막성을 치니 왕은 장병을 시켜 마주쳐 싸워 크게 무너뜨렸으나 귀산과 추항은 전사했다.
[백제본기] 무왕 6년(605) 가을 8월, 신라가 동쪽 변읍을 침범했다.
[신라본기] 진평왕 27년(605) 가을 8월, 군사를 보내어 백제를 침범했다.
[백제본기] 무왕 12년(611) 겨울 10월, 신라의 가잠성을 포위해 성주찬덕을 죽이고 그 성을 없앴다.
[신라본기] 진평왕 33년(611) 겨울 10월, 백제의 군사가 들어와 가잠성을 포위해 백일을 나니 현령 찬덕이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해 죽고 성도 함락됐다.
[백제본기] 무왕 17년(616) 겨울 10월, 달솔 백기를 시켜 군사8,000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모산성을 공격했다.

[신라본기] 진평왕 38년(616)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들어와 모산성을 공격했다.
[백제본기] 무왕 19년(618) 신라장군 변품 등이 와 가잠성을 공격해 도로 찾아갔다.
[신라본기] 진평왕 40년(618) 북한산주 군주 변품이 가잠성을 회복할 계획으로 군사를 일으켜 백제와 싸우는데 해론이 종군해 적의 진영에 달려가 힘껏 싸우다 죽었다.
[백제본기] 무왕 24년(623) 가을, 군사를 보내어 신라 늑로현을 침범했다.
[신라본기] 진평왕 45년(623) 백제가 늑로현을 습격했다.
[백제본기] 무왕 25년(624) 겨울 10월, 신라의 속함·앵잠·기잠·봉잠·기현·용책(冗柵) 등 6개성을 빼앗았다.
[신라본기] 진평왕 46년(624) 겨울 10월, 백제병이 들어와 우리의 속함·앵잠·기잠·봉잠·기현·혈책(穴柵) 등 6성을 포위해 3성은 항복하거나 함락되고 급찬 눌최는 봉잠·앵잠·기현 3성의 군사를 합쳐 굳게 지키다가 감당 못하고 전사했다.
[백제본기] 무왕 27년(626) 가을 8월, 군사를 보내어 신라 왕재성(王在城)을 공격해 성주 동소를 잡아 죽였다.
[신라본기] 진평왕 48년(626) 가을 8월, 백제가 주재성(主在城)을 공격하니 성주 동소가 항거해 싸우다 죽었다.
[백제본기] 무왕 28년(627) 가을 7월, 왕은 장군 사걸을 시켜 신라 서변의 두 성을 빼앗고 남녀 3백명을 사로잡았다. 왕이 신라가 빼앗아간 지역을 회복코자 크게 군사를 일으켜 웅진에 나와 주둔하니 신라왕이 듣고 사신을 보내어 급박한 사정을 당에 알렸다.
[신라본기] 진평왕 49년(627) 가을 7월, 백제의 장군 사걸이 서변의 두 성을 빼앗고 남녀 3백명을 사로잡아갔다.

[백제본기] 무왕 29년(628) 봄 2월, 군사를 보내어 신라의 가잠성을 쳐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신라본기] 진평왕 50년(628) 봄 2월, 백제가 가잠성을 포위하니 왕은 군사를 내어 쳐부쉈다.
[백제본기] 무왕 33년(632) 가을 7월,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쳤으나 이롭지 못했다.
[신라본기] 해당기록 없음.
[백제본기] 무왕 34년(633) 가을 8월, 장병을 보내어 신라 서곡성을 공격해 13일 만에 빼앗았다.
[신라본기] 선덕왕 2년(633) 8월, 백제가 서변을 침범했다.
[백제본기] 무왕 37년(636) 여름 5월, 왕은 장군 우소를 시켜 무장병 5백명을 거느리고 가서 신라 독산성을 습격케 했다. 우소가 옥문곡에 당도해 날이 저물기로 말안장을 풀고 군사를 휴식시키던 바 신라 장군 알천이 군사를 거느리고 뜻밖에 들이치니 우소가 큰 바위 위에 올라 활을 당겨 항전하다가 화살이 다 돼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신라본기] 선덕왕 5년(636) 여름 5월, 백제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군사 5백명을 거느리고 와 그 곳에 잠복했으므로 알천이 들이쳐 다잡아 베었다.

당시 백제와 신라의 첨예한 대립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기록이다.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전하고 있는 양국 간에 발생했던 빈번한 전쟁 내용이 모두 일치하며, 당시 백제 무왕과 신라와의 적대적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삼국유사 무왕조에서는 무왕이 백제의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신라 진평왕의 사위가 됐고 무왕의 신비로운 역량으로 인해 진평왕의 존경을 많이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왕은 즉위한지 3년째(602)에 벌써 백제는 신라를 침공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신라와 전쟁을 벌여왔던 셈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하면, 무왕이 진평왕의 사위가 된 시점을 전후해 일시적으로 양국 간의 관계가 우호적이었다가 그 후에 다시 반전됐다고 볼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백제 무왕과 신라가 첨예한 대립관계였다는 사실은 백제의 다른 왕들이 재위하고 있는 동안에 치러졌던 전쟁들과 비교했을 대 더욱 두드러진다. 동성왕(479~501)이나 무령왕(501~523)은 신라와의 전쟁을 벌인 기록이 없으며, 성왕(523~554)과 위덕왕(554~598)은 2번의 전쟁을 벌였던 것에 그쳤다.
즉 무왕이 재위하고 있는 동안 백제는 그 어느 왕 때보다 신라와 많은 전쟁을 치렀다. 무왕은 재위하고 있는 40년 동안에 전쟁을 13번 벌였는데, 그 상대가 모두 신라였다.
영토 확장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백제의 부흥과 삼국일통을 염두에 뒀던 백제 무왕이 신라에 탈취당한 한강 유역의 수복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 기록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이와 별도로 당시 백제와 신라가 불편한 관계였다는 사실은 당태종이 백제에 내린 조서의 내용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실려 있는 내용에 따르면, “무왕 28년(627) 가을 8월, 왕의 조카 복신을 당에 보내어 조공하니 당태종은 우리가 신라와 더불어 세수(世?)가 돼 자주 서로 치고 싸우고 한다면서 왕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신라왕 김진평(金眞平)은 나의 번신이요, 왕의 이웃 나라인데 매양 듣건대 군사를 보내어 쉬지 않고 싸운다니 병역만 믿고 잔인성을 자행하는 것이라 자못 나의 소망에 어그러진다..중략..왕은 아무쪼록 전일의 원혐을 잊고 나의 본뜻을 인식해 함께 이웃 정의에 독실하고 곧 싸움을 정지토록 할지어다”라고 전하고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