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압박에 공동대응, 정치적·외교적 필요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 전쟁 무려 13차례, 치열하고 첨예한 관계

백제와 신라의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 아막산성(현 남원시 보절면)

◇ 백제의 대신라 정책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은 신라를 상대로만 무려 전쟁을 13차례나 치르며 첨예한 대립관계 속에서 대신라 정책을 전개했던 왕이었다. 즉위 직후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백제가 벌인 신라와의 전쟁이 그것을 말해준다.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한 이후, 사비시대 백제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앞으로 신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었다.
이에 성왕의 뒤를 이은 위덕왕대에 백제의 지배세력은 신라에 대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심각한 갈등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와의 전쟁이냐, 공존이냐의 문제를 두고 내부적인 대립이 있었던 것.

하지만 대체적으로 신라와 전쟁을 벌여서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확보하고자 하는 세력이 당시의 정국을 주도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백제는 신라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서 우선 대내적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했다. 이는 신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백제의 왕권이 새롭게 확립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 역시 앞으로 치를 신라와의 전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뒀다. 중국의 남북조나 통일왕조인 수나라, 그리고 왜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외교정책이 이를 뒷받침한다.

바로 이러한 대내·외적 정책이 위덕왕대 백제의 일관된 목표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위덕왕대 후반기에 들어서며 백제는 대신라전을 다시 전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신라의 저항으로 백제는 의도했던 것만큼 순조롭게 대신라전을 치러낼 수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치열했던 장인과 사위

무왕대의 대신라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전쟁’이다.

위덕왕대 후반기에 전개됐던 대신라전의 성공적인 수행이라는 과제는,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대로 넘어왔다. 백제 역사상 신라와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벌여왔던 무왕은, 즉위한 이부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신라와의 전쟁을 치렀다.
이전에 두 차례에 그쳤던 위덕왕대와 달리 무왕대에 들어오면서 백제는 신라와의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 따르면, 무왕은 재위 42년 동안에 모두 13차례에 걸쳐 대신라전을 벌였음이 확인된다. 무왕 3년(602) 이후 무왕 37년(636)까지의 재위 전 기간에 걸쳐서 대신라전을 치렀던 것이다.
실제 무왕 3년(602)의 아막산성 싸움을 필두로, 6년(605) 동쪽 변경, 12년(611) 가잠성, 17년(616) 모산성, 19년(618) 가잠성, 24년(623) 늑노현, 25년(624) 신라의 6성 차지, 27년(626) 왕재성 전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무왕 28년(627)에는 신라가 침탈해 간 땅을 회복하고자 크게 군사를 일으켜 웅진으로 나가 주둔했다. 진평왕은 이를 듣고 급히 당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안 무왕은 군사를 거뒀지만, 전쟁은 29년(628) 가잠성, 34년(633) 서곡성, 37년(636) 독산성으로 이어졌다.
장인과 사위의 나라 사이가 이렇듯 나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때 신라와의 전쟁은 거의 대부분 백제의 선제공격으로 이뤄졌다. 신라의 선제공격은 무왕 6년(605)과 무왕 17년(618)의 두 차례가 있었을 뿐. 이는 백제의 영토확장 내지 진출의도에 대해 신라가 방어적 성격을 띤 전쟁들이 벌어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과연 공존은 가능했나

첨예한 관계 속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벌여온 무왕대에  마찬가지로 당시 무왕대에 들어와서도 신라와의 관계에 있어서 전쟁보다는 공존을 추구한 정치세력이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선화공주 설화는 그러한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최근에 발견된 미륵사지석탑에서 나온 사리봉안기 명문을 통해 백제 무왕대의 대신라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간 믿어왔던 미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인물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기록이 발견된 것.

이에 선화공주 설화의 신빙성 문제가 제기됐다.
만약 선화공주 설화가 부정된다면, 당시 무왕대 백제와 신라와의 전쟁이 아닌 공존을 추구했던 세력에 대한 뒷받침도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

현재까지도 삼국유사 무왕조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정반대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삼국유사 무왕조의 내용을 가능하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에서는, 이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서 충분히 긍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무왕과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의 혼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시기는 무왕의 즉위 이후로 624년 이전 백제와 신라의 관계가 대체로 소강상태 혹은 현상유지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때로 파악하고 있다.
이 견해는 이때 백제와 신라의 왕실 혼인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당시의 국제정세에 주목했다. 무왕 8년(607)을 전후해서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에 대해 강한 압력을 가해오자, 양국은 무왕 초에 야기된 갈등을 종식시키고 고구려의 압력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혼인이 이뤄졌고, 백제는 신라 선화공주와의 결혼을 통해서 내적으로는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외적으로는 신라와의 긴장관계를 해소하려는 복합적인 목적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라 역시 일부 지배층의 반대가 있었지만 고구려의 압력을 물리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으며, 한편으로 백제의 압력도 완화시켜야 했기에 무왕의 청혼을 승낙했다고 설명한다.
이때 그 결혼을 주선한 사람으로 지명법사를 상정한다. 그가 양국 간의 결혼을 성사시킨 결혼사절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결혼을 통해 백제와 신라가 서로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즉 양국은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더 나아가 미륵사에 대한 고고학의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신라의 황룡사와 백제의 미륵사를 비교·검토하면서 7세기 백제와 신라의 교류를 상정하고 있다.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할 때 신라 진평왕은 여러 기술자를 보내어 미륵사 건립을 돕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특히 미륵사 3금당 가람배치는 신라의 영향에 의해 성립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점은 의자왕대 백제 기술자인 아비지가 황룡사 9층탑의 제작에 관여한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백제의 군사적 압력을 완화시키려는 신라의 외교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백제와 신라가 군사적으로 충돌하고 있더라도 그러한 교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견해는 미륵사의 3원체계를 새롭게 이해했다.
중원은 백제이고, 동원과 서원은 각각 고구려와 신라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때 중원의 규모가 크고, 하나의 회랑 안에 배치돼 있는 것은 백제를 중심으로 한 삼국의 공존과 세력균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봤다. 다시 말해 미륵사의 창건이 당시 백제와 신라의 우호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