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은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민족문화의 정수이자 인류의 자산임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국민들의 삶의 질의 높아짐에 따라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은 자연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아울러 문화산업의 측면에서도 문화유산의 가치는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부면에서의 관심과 접근에 힘입어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석사지 목탑지 심초석과 폐기장 조사 모습

익산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미륵사지는 백제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유적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래가 드물게 1980년부터 1994년까지 약 15년간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장기간 종합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해 백제 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실마리를 풀어줬으며, 이 과정에서 2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9년에는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수리과정에서 국보급의 명문자료와 사리 관련 유물이 발견돼 다시 한 번 학계와 국민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10년에는 미륵사지 유적을 포함한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의 잠정목록에 등재된 바 있으며, 2012년부터는 부여, 공주 등 다른 백제유적지구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지역주민들을 포함한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본지는 백제 역사와 문화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륵사지 유적에서 출토된 소중한 문화재에 대한 보존 관리 문제를 점검하고, 최적의 관리 및 보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지면을 마련했다.
이번 주 문헌 및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보는 익산지역의 위상을 시작으로, 이후 익산지역과 미륵사지 유적의 역사적 배경과 현황, 미륵사지 출토유물의 현황 분석, 미륵사지 출토유물의 관리 활용 방안,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국립박물관 전환 배경 및 필요성에 대해 연재될 예정이다.<편집자 주>

◇ 문헌을 통해 보는 익산의 위상

고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익산의 모습에 대한 견해는 크게 익산을 고조선 준왕(準王)의 남천지(南遷地)로 보는 견해와 백제 무왕(武王)의 천도지(遷都地)로 보는 견해, 쌍릉(雙陵)을 무왕 부부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 왕궁(王宮) 관련 지명의 존재에 주목하는 견해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
익산을 고조선 준왕의 남천지로 보는 견해는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토대로 하고 있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 금마군(金馬郡) 조의 기록(1451년)은 ‘본래 마한국이다(후조선왕 기준이 위만의 난리를 피하여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이를 병합하니 그 뒤로부터 금마저라 불렸다’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익산군 조의 기록(1530년)에는 ‘본래 마한국이다(후조선왕 기준은 기자의 41대 손인데, 위만의 난리를 피하여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하였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이를 병합하니 그 뒤로부터 금마저라 불렸다’고 나와 있다.
이 두 기록을 통해 동국여지승람 금마군 조의 ‘준왕 남천’ 기록은 고려사 익산군 조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전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준왕의 남천지를 금마저(익산)으로 보는 전승은 고려사 이후의 고문헌에서도 종종 확인되고 있다.
현재까지 이에 선행하는 기록은 확인되고 있지 않으며, 삼국지(三國志) 등 중국 사서나 고고학 발굴 자료에서도 검증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조선시대에 익산지역을 고도로 보는 전승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익산을 백제 무왕의 천도지로 보는 견해는 중국 육조시대의 기록을 후대에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와 대동지지(大東地志)를 근거로 하고 있다.
관세음응험기는 ‘백제 무광왕은 지모밀지로 도읍을 옮기고 새로이 정사를 지었는데, 정관 13년에 해당하는 기해년 겨울 11월에 하늘에서 뇌우가 크게 일어나 제석정사가 화재를 입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또한 대동지지(大東地志) 익산조(1864년경)에서는 ‘본래 백제 금마지이다. 무광왕대에 성을 쌓고 별도를 두어 금마저라 칭하였다. 당이 백제를 멸망시키고 마한도독부(5도독부 가운데 하나)를 두어 군현을 속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관세음응험기의 기록에 보이는 제석정사가 익산의 제석정사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학계에서는 지모밀지가 곧 익산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대동지지는 보다 후대의 기록이지만, 익산을 별도(別都)라 표현했다. 특히 이 기록은 왕궁리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와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익산쌍릉을 무왕 부부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익산군 고적조를 근거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는 ‘쌍릉은 오금산 봉우리의 서쪽 수백 보되는 곳에 있다. 고려사에는 후조선 무강왕과 비의 능이라 하였다. 속칭 말통대왕릉이라 한다. 백제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이 서동이며 말통은 서동이란 말의 방언이라고 보기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 기록에는 후조선의 무강왕과 백제의 무왕의 이름이 혼재돼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학계의 견해가 나누어져 있다. 발굴조사의 결과로 보면 쌍릉을 후조선 왕릉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7세기경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왕궁 관련 지명의 존재에 주목하는 견해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익산군 조에 주목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의 문헌에 왕궁정(王宮井), 궁기궁원계체유지(宮基宮垣階?遺址), 마한궁실(馬韓宮室)이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토대로 조선시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왕릉, 천도설과 함께 익산이 백제의 고도였다는 전승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전승은 발굴조사의 결과와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익산지역이 백제의 고도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셈이다.

◇ 유적과 유물에 보이는 익산의 위상

대규모의 궁성유적인 왕궁리 유적은 남북 492m, 동서 234m의 대규모 석축 성벽을 갖춘 궁성 및 사찰 관련 시설이다. 정전(正殿) 성격의 대형 건물지를 비롯해 백제시기 건물지 14기,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1기, 성벽과 관련한 문지, 수구, 암거, 포석시설, 귀금속공방, 대형 화장실 등이 확인됐다.
주요 출토유물로는 부여 등 도읍지에서 주로 확인되던 상부을와(上部乙瓦), 하부을와(下部乙瓦), 수부(首府) 등 명문기와가 있으며, 이외에도 중국 자기편과 연화문와당 등 3,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왕궁리 유적에서는 왕도에 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건물지와 유물이 확인됐는데, 이는 고문헌에 보이는 천도·별도의 기록과 부합하고 있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데 있어 소중한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왕궁리유적 대형 건물지와 수부(首府)명 기와

약 200m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2기의 횡혈식 석실분인 익산쌍릉은 조선시대에도 쌍릉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큰 것이 대왕릉, 작은 것이 소왕릉이며, 대왕릉의 경우 봉토 지름이 30m이고 높이는 5m, 소왕릉의 경우 봉토 지름이 24m, 높이 3.5m의 규모이다.
지난 1916년 야츠이 세이치(谷井濟一)가 내부조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2기 모두 판석(板石)을 조립해 만든 횡혈식 석실분이고 무덤의 단면은 6각형이며 바닥에 판석 1매로 만든 관대(棺臺)가 마련돼 있다.
조사 이전에 이미 도굴돼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대왕릉 안에서 수습한 목관에는 관못과 관고리가 남아 있었으며, 목관재(木棺材)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 무령왕릉 목관과 마찬가지로 일본산 금송(金松)임이 밝혀졌다.
무덤의 규모, 석실의 구조와 기술력, 고급 목재로 만든 목관 등 발굴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토대로 종합해 보면, 이 무덤은 부여 능산리고분군(陵山里古墳群)에 포함돼 있는 백제의 왕릉급 무덤에 필적하는 격(格)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익산을 대표하는 미륵사지는 발굴조사 결과 1탑(塔)1금당식(金堂式) 가람배치가 병렬된 3원식(院式)의 구조임이 밝혀졌고, 규모나 출토유물의 수준으로 보면 백제 최고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9년에 발굴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에는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발원해 지은 국가적 사찰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같은 백제 최대의 가람을 완성하기 위해 무왕 대 백제의 국가재정이 집중적으로 투입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후 가람의 유지와 운영에도 백제 왕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미륵사가 위치한 익산은 백제사의 전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닌 지역 가운데 하나로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백제시대의 대규모 사찰 터인 것으로 밝혀진 제석사지는 발굴조사 전 목탑이 심초석이 훼손돼 있었으며, 지근거리에 인접해 있는 폐기장 유구에서는 화재로 훼손된 사찰의 각종 물품이 폐기된 채 발굴됐다.
특히 목탑의 훼손과 폐기장의 발굴양상은 관세음응험기의 제석정사(帝釋精舍) 화재 상황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측면이 있어 중요시되고 있는 부분이다.
만약 관세음응험기 기록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면 이 기록에서 전하는 지모밀지(枳慕蜜地)로의 천도설 역시 설득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무왕 대 백제가 익산으로 천도했거나 혹은 동국지지의 기록처럼 별도(別都)로서의 위상을 지녔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