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역사문화의 대표주자 익산

경주·공주·부여와 함께 4대 고도로 지정된 익산지역은 정사의 기록은 없지만, 그간 발굴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백제시대의 고도였음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고대 도읍지의 조건으로 거론되는 궁성과 왕실사찰, 성곽과 왕릉까지 모든 유물들이 기록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유물로 발견돼 보존되고 있는 것.
정사의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문헌의 기록보다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백제시대의 문화유산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 특수성과 독창성이 오히려 세계유산등재에 걸맞은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익산 미륵사지 주변의 주요 유적 분포(미륵사지, 쌍릉,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등)

현재까지 익산지역에서 출토됐거나 익산지역에 위치한 주요 지정문화재는 국보 3건, 보물 6건, 사적 7건, 천연기념물 1건, 무형문화재 2건 등 국가지정문화재 19건과 유형문화재 16건, 무형문화재 2건, 기념물 15건, 민속자료 1건, 문화재자료 14건 등 지방지정문화재 48건으로 총 67건에 달한다. 또한 이외에도 기타 등록문화재 8건, 향토유적 13건이 분포해 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은 국보 11호 미륵사지석탑, 국보 123호 왕궁리오층석탑 내 유물, 국보 289호인 왕궁리오층석탑, 사적 150호인 미륵사지, 사적 405호인 제석사지, 사적 408호인 왕궁리유적 등이며, 향후 미륵사지석탑 출토품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국가지정문화재의 수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98년에 조사·보고된 문화유적 분포지도(익산시)에는 455건의 문화유적이 등재돼 있으며, 이후 2006년에 추가 조사된 154건을 합치면 현재 익산지역에는 총 609건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40건 이상의 유적이 분포한 지역을 열거해 보면 익산 시내에 114건, 왕궁면 75건, 금마면 60건, 낭산면 53건, 삼기면 47건, 웅포면 42건, 여산면 40건 등으로, 왕궁과 금마지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권역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이 익산지역에서 출토됐거나 익산지역에 위치한 유물들은 비단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재로서의 위상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륵사지(좌)와 제석사지(우) 가람배치

◇ 고도의 조건 - 궁성, 사찰, 능묘, 관방

익산지역에는 궁성유적과 사찰유적, 능묘유적, 관방유적 등 도성을 구성하는 주요 유적들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궁성유적인 왕궁리유적, 사찰유적인 미륵사지와 제석사지, 사자사지, 능묘유적인 쌍릉, 관방유적인 금마도토성과 익산토성, 미륵산성 등의 유적은 백제시대 도읍지의 위상을 당시 익산이 갖추고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궁성유적인 왕궁리유적에 대해서는 고조선 준왕(準王)의 남천설(南遷說), 백제 무왕 천도 혹은 별도설(別都說), 통일신라시대 안승(安勝)의 보덕국(報德國) 도읍설, 후백제 견훤(甄萱) 도읍설 등 다양한 견해가 주장되고 있으며, 왕궁리오층석탑을 발굴한 이후에는 궁 내에 사원이 존재한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리오층석탑을 중심으로 1탑 1금당 형식의 사원건축 유구가 확인됐으며, 석탑 하부에서 앞 시기의 건물지와 목탑지가 드러남에 따라 적어도 백제 말에서 통일신라 말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세 시기에 걸쳐 유적이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변 구릉지를 중심으로 너비 약 3m에 이르는 평지성곽이 확인됐고, 성벽은 치석된 방형의 석재를 이용했으며, 석축 성벽의 규모는 남북 495m, 동서 235m 등 총 연장 1.5km 정도에 달하는 장방형의 평지성으로 밝혀졌다. 유적 중심부에서는 정전 성격의 건물지가, 북쪽에서는 정원유구가 발굴됐고, 대형 화장실과 귀금속, 유리공방유구가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군사시설이라기보다는 이궁(離宮) 혹은 별궁과 같은 시설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며, 성벽은 궁장시설(宮牆施設)일 가능성이 있다.

미륵사지석탑(좌-일제 초기 모습)과 사리장엄구 출토 모습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유적인 미륵사지는 동시대의 가람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의 삼원식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미륵사지석탑은 백제의 석탑 가운데 기존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중 시원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해체 보수작업 과정에서 출토된 사리장엄은 당대 최고급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사리봉영기의 기록이 미륵사 창건과 관련해 사택적덕의 딸을 적시하고 있어, 미륵사지 창건설화에 나온 선화공주의 존재에 대한 신빙성 논란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명문으로 기록된 사리봉영기에는 미륵사의 창건 주체와 창건목적, 석탑의 건립연대 등 상세한 정보가 기록돼 있어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일급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왕궁리유적 유구와 유물(동석축, 사리기, 토기, 정원석, 금과 도가니)

왕궁리유적의 동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한 제석사지는 미륵사지 각 원의 가람배치나 부여 정림사지의 가람배치와 마찬가지로 1탑 1금당이 일렬로 배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석사지에서는 단엽단판(單葉單瓣) 연화문수막새, 귀면문이 가미된 인동당초문 암막새, 상부을와(上部乙瓦)와 제석사(帝釋寺) 명 기와편이 출토됐는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출토품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제석사지에서 북쪽으로 약 300m 가량 떨어진 곳에 제석사지 폐기유적이 위치해 있는데, 시굴조사 결과 제석사지 유물과 동일한 팔엽 연화문수막새, 암·수키와가 다량 출토됐고 소조천부상(塑造天部像) 두부편(頭部片), 소조악귀상(塑造惡鬼像) 두부편, 소조동물상 두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곳은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제석정사의 화재 때 발생한 잔해물을 폐기한 곳으로 지목되고 있다.

익산쌍릉은 왕궁리유적에서 서쪽으로 약 2km 가량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고분을 뜻한다. 각각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불리는 이 두 고분은 약 200m 정도 떨어져 위치해 있으며, 백제 무왕과 그 비의 무덤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다수이다.
발굴조사 결과 부여 능산리에 소재한 사비기 왕릉급 무덤에 필적하는 규모와 축조 수준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됐으며, 쌍릉 주변에는 익산토성을 비롯해 무왕과 관련된 마룡지와 용샘 등이 위치해 있다.
이외에도 웅포면 입점리에는 수혈식석곽묘(竪穴式石槨墓)와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 등 석축묘가 주종을 이루는 입점리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이중 대표라고 할 수 있는 86-1호분은 횡혈식석실분이며, 내부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귀걸이, 청자사이호(靑磁四耳壺), 장식마구 등 5세기 후반 백제사회에서 사용되던 최고급 물품이 출토됐다. 이는 한성시기 백제의 지방지배 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길목 가운데 하나인 금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는 요충지적 성격 때문에 백제 중앙의 관심이 집중됐고 그에 부수해 왕실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최고급 물품을 사여받아 무덤 속에 부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쌍릉(대왕릉, 발굴모습, 목관 부속구)

현재 익산지역에는 미륵산 중턱의 미륵산성을 비롯해 낭산산성, 금마도토성, 익산토성, 용화산성, 학현산성, 그리고 북쪽으로부터 금마저 지역으로 침입하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성 사이에 터진 곳을 막은 듯한 선인봉산성과 천호산성, 당치산성, 성태봉산성, 어래산성 등 10여개가 넘는 산성이 왕궁성을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다.
이들 관방유적들은 당시 익산지역이 그만큼 활발하게 전개된 역사의 현장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유적에서 주로 백제와 관련된 토기 혹은 기와 조각이 수습되고 있다는 점은 백제시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으며, 미륵산을 중심으로 익산의 동북쪽에 집중 분포돼 있는 것은 이 성곽들이 군사적 방어시설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미륵산성은 기준성으로 불리고 낭산산성은 마한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러를 토대로 백제 무왕 대에 정치적 중심지로 성장하기 이전부터 이미 익산지역이 군사적 방어의 관점에서 중요한 지점이었음을 전해주는 단서로 볼 수도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