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긴장 속, 빈틈을 노려 날리는 통쾌한 한 방
모든것 들어있는 종합스포츠, 부활 위해 관심 절실

◇ 헝그리 정신 부활을 꿈꾸며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1970년대 세계 복싱계를 호령했던 홍수환 선수의 유명한 한 마디다.
이후 박종팔이나, 장정구, 유명우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을 그리워하는 복싱 팬들이 그 때의 감동과 환희를 다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요즈음에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 복싱계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70~1980년대 이후, 챔피언 배출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어느새 비인기 종목이 돼버린 복싱. 그 어떤 스포츠보다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고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스포츠였던 복싱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졌던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점점 자취를 감춘 탓일까.

지난 6일, 익산복싱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이리체육관에서는 이색적인 복싱경기가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익산시복싱협회에서 주최한 러시아 극동 팀 초청 친선 복싱대회가 열린 것.

이번에 열린 러시아 극동 팀 초청 친선 복싱대회의 역사는 무려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이리체육관을 이끌어가고 있는 조석인 익산시복싱협회 명예회장은 당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극동선수권대회에 한국 팀 단장으로 참여했고,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 자매결연이 맺어졌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전북·전남지역 복싱협회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하바롭스크지역 복싱협회는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매년 친선경기를 개최하며 상호 간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북과 경기도 그리고 인천지역 복싱협회가 참여하고 있다.

◇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쉭! 쉭!”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매섭게 뜬 눈과 상대의 빈틈을 찾아 순간을 포착해 날리는 펀치와 함께 자연스럽게 뱉어지는, 그냥 주먹의 한 부분이랄까.

“앞에 내리고! 앞에 내리고!”
“툭툭 뻗어! 바디! 바디!”
링 밖의 코치도 선수와 함께 경기에 임한다.
실제 자기 주먹만 뻗지 않을 뿐, 온 신경이 링 안에 집중돼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링 안의 선수와 혼연일체다.
상대를 마주하고 있는 선수는 어련할까.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 속에 격한 숨소리들과 글러브들만이 오고 간다.
연이은 펀치에 이어지는 위빙, 그리고 발놀림, 그로기 상태에 이은 클린치가 연거푸 되풀이된다.
화끈한 녹다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두 세 번의 스탠딩다운에 경기 열기가 순간순간 뜨거워졌으며, 경기 내내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한 채 한 수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친선경기에서는 우리나라와 러시아에서 각각 5명씩 선수가 출전해 기량을 펼쳤다.
첫 경기에 나선 성동현 선수는 러시아의 코즈레프 선수를, 이어 임우택 선수는 오제프코프 선수를 상대로 연거푸 펀치를 쏟아 부으며 승리를 거뒀다. 이어 벌어진 세 번째 경기에서는 우리나라의 김영현 선수가 러시아의 미르고르드 선수에게 아깝게 판정패했다. 연이어 벌어진 네 번째, 다섯 번째 경기에서는 강경돈, 신의재 선수가 니키타, 구자트니코프 선수를 상대로 각각 경기를 펼쳐 힘겨운 승리를 따냈다.
이로써 이날 종합우승은 한국 팀에게 돌아갔다.

서로 펀치를 뻗으며 치열하게 사투를 펼쳤던 경기이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 서로를 인정하며 악수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복싱의 경우에는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착용하기는 하지만 결국 아무런 도구 없이 순수하게 맨주먹 하나만을 가지고 치고받고 싸우는 극한의 격투 스포츠이기에, 각자 링 위에 서기 위해 흘려왔던 땀방울의 대가를 인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이리라.
결국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결려하는 모습으로, 이날의 경기는 마무리됐다.

◇ 우리나라 복싱의 요람, 이리체육관

익산시청 제2청사 뒤 골목에 자그마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리체육관.
익산은 물론 우리나라 복싱 역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체육관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 역시 우리나라 복싱계의 거장 조석인 회장. 올해 78세인 조 회장은 복싱으로 다져진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7년간의 전라북도체육회 사무처장과 10년간의 전라북도체육회 부회장, 14년간의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복싱협회 부회장, 각종 대회 국가대표 코치, 국제 심판 등 실로 우리나라 복싱계의 산 증인이라 할 만하다. 현재는 이리체육관에서 단원들을 이끌며 전라북도복싱협회 명예회장과 익산시복싱협회 명예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의 보금자리인 이리체육관 역시 무려 5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간. 1960년 설립 이후 그간 무수히 많은 복싱선수를 만들어 낸 복싱의 요람이다. 이곳에서 조 회장이 배출해 낸 국가대표만 무려 30여명.

지금까지도 직접 체육관에 나와 단원들을 지도하고 함께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는 조 회장은 복싱의 매력에 대해 ‘종합예술’이라 말한다. 일단 온몸의 근육을 다 이용하며 근력은 기본이고 지구력, 순발력, 민첩성 그리고 정신력까지 운동의 모든 분야가 들어있는 종합스포츠라는 것. 그러면서도 그는 “다만 많이 안 맞는 것이 좋다”면서 웃었다.

이번 친선 경기대회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그는 “현재 전북과 경기도, 인천이 3년에 한 번씩 돌아가며 러시아 선수들을 초청해 친선 복싱대회를 개최하고 러시아의 초청을 받아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국가 간 교류는 물론 선수들 경기력 향상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평생을 복싱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 온 그는 이제 고향 땅에서 다시 한 번 복싱 붐을 일으켜 그날의 영광을 재현해 보는 것이 꿈이다.
그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이유야 어찌됐든 복싱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 그는 “전체적인 수준이 전과 비교해 볼 때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도 과거 못지않게 많다”면서 “물론 생활체육이나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복싱에 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또한 복싱이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받고 있다는 것”이라며 복싱의 화려한 부활에 대한 바람을 나타냈다.

실제 이리체육관에는 현재 40~50명의 단원이 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 중 여성단원도 6~7명에 이르고 있다. 선수로서의 복싱뿐만 아니라 생활체육이나 호신용, 다이어트, 건강관리 등 다양한 이유로 복싱을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내년부터는 지역의 6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체육관을 개방할 예정”이라는 그는 “평생 운동밖에 해 온 것이 없어 이제는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고, 체육관 무료 개방이 그 첫 발걸음”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각종 대회에서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흥미진진한 복싱을 여기 이리체육관이 꿋꿋이 지켜오고 있다”면서 “많은 시민 여러분들이 복싱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