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박물관 , 왜 필요한가

익산시와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는 지난 수년간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국립박물관 건립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그간 지역에서 중앙정부에 제출한 건의 자료를 살펴보면, 우선 현재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 소장돼 있는 약 2만여점의 유물에 대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보존·전시가 가장 커다란 이유로 꼽히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1월 14일 미륵사지석탑 해체과정에서 국보급 사리장엄 9,700여점이 출토됨에 따라, 그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4개 고도 중 익산만이 유일하게 국립박물관이 없다는 사실도 국립박물관 건립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익산지역의 우수한 문화자원 및 출토유물의 국가적 관심과 지역균형발전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건축연면적은 2,356㎡로, 국립공주박물관 1만2,102㎡, 국립부여박물관 9,735㎡, 국립김해박물관 1만6,607㎡에 비해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미륵사지를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국립박물관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 고도 익산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

익산시민들과 학계 및 관련 연구소 등은 익산을 백제 후기 수도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으며, 백제 수도에 합당한 역사·문화적 대우의 일환으로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백제 수도 익산의 역사적 위상을 제고하고, 백제사의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함이다.
현행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서는 과거 우리 민족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주·부여·공주·익산,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을 ‘고도’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익산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고도로 지정된 경주·부여·공주·익산 4개 도시 중 익산만 국립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외감이 지역사회 내에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며,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국립지방박물관 부재로 인해 중요한 출토유물을 해당 지역에서 관리·보존·전시하지 못하고 외지에서 분산 관리함에 따라 문화재의 진정성 확보 및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익산시와 전라북도를 비롯한 지역 정치권과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은 지속적으로 국립박물관 건립을 강력하게 건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익산지역 백제역사와 문화를 선양하고 고도로서의 익산에 대한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기여

1970년대부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등의 조사를 통해 익산지역 백제문화의 정체성이 밝혀짐에 따라, 지역 문화유산을 통해 지역민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자부심의 고양을 위해 200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됐다.
이후 2010년 1월 익산역사문화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2년 6월부터는 공주·부여·익산 등 백제역사문화지구의 등재를 위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가 재단법인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을 공동구성해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등재 신청서작성을 위한 종합 세부계획과 분과위원회 구성, 뛰어난 보편적 가치 연구용역 등을 추진하고 있는 바,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그때 모습 그대로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서 고도로 지정한 경주·부여·공주·익산 중 다른 3개의 도시는 근대 이후 도시의 개발 과정에서 도심 중심부와 유적이 혼재하고 있어, 이로 인해 전근대의 역사 문화 경관이 상당부분 훼손된 상태이다.
하지만 익산지역에 산재한 유적들은 대부분 익산시의 도심부로부터 어느 정도 떨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현대사회의 개발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문화적 환경이 그대로 보존돼 경관적 가치를 지니며 유적 주변에 미륵산과 용화산, 금마산, 오금산 등으로 인해 문화재보호법 이외에 자연보호법이나 산림법 등 기타 법규로도 개발이 제한돼 있어 유적 및 주변 환경의 보호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같이 익산지역은 역사·문화적 경관이 살아있는 역사도시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으며, 지역 역사·문화의 선양을 위해 박물관 건립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 역사·문화의 살아있는 체험

미륵사지는 미륵신앙의 미륵불국토 실현 염원에 따라 3탑 3금당의 독특한 건축적 구조로 창건된 백제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또한 목조탑의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석탑의 시원으로 일컬어지는 미륵사지 석탑은 동양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아울러 미륵사지유적전시관은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존하고 있는 유적 및 유물이 공존해 있고, 전시실과 유적이 일원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살아있는 문화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백제시대 당시의 역사 경관을 그대로 보존·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인위적인 공간을 조성할 필요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야외 박물관이자 역사교육의 체험장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념의 박물관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 해결해야 할 과제는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에 있어 몇 가지 문제시되는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익산의 백제시대 고도 인정여부이다. 익산의 역사·문화적 중요성은 널리 인정받고 있지만, 사비시기 백제의 수도였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
실제 천도를 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견해, 단지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했다는 견해, 수도로서의 기능을 담당했지만 실제 수도는 아니었다는 견해 등 다양한 학설이 제기된 상태이다.
하지만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도가 고대 수도가 아니라 오래된 역사 도시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다수의 국립지방박물관이 고대 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요 도시에 건립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륵사지유적을 포함한 익산 문화권은 사비시대 부여문화권의 개념 속에 논의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학계의 지적도 있다. 즉 익산지역의 백제문화가 사비지역의 백제문화와 현격하게 차별되는 지역적 특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므로, 국립익산박물관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문화적 정체성의 내용을 갖추기 위해서는 향후 익산지역 백제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 및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백제권에 국립박물관이 과다하게 밀집돼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역사상 백제권으로 묶을 수 있는 충청도·전라도 지역은 국립전주박물관·국립공주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국립나주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등 5개의 국립지방박물관이 있어 상주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국립지방박물관이 이미 건립돼 있으며, 국립익산박물관이 건립될 경우 6개로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백제문화 내지 지역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유사한 성격을 이유로 특성화가 부진한 측면이 있으며, 문화관광자원으로서도 유인효과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익산지역의 백제문화를 특색 있게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사비시대 부여지역과 구분되는 익산지역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학술 조사와 연구가 지속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립익산박물관이 국립전주박물관의 인근에 건립될 경우 상호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반면, 역효과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립익산박물관의 상설전시를 위해 국립전주박물관의 전시유물이 상대적으로 빈약해질 우려가 있다. 또한 대도시 상주인구가 많아 지역사회와 밀착된 전시 및 교육 사업을 운용할 수 있는 국립전주박물관과 달리, 국립익산박물관의 경우 상주인구보다는 외래 관광객의 의존도가 높은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도 있는 연구 검토와 신중한 접근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