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에 다녀온 그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눈앞에 연기가 가득 찼다.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던 토크콘서트는 한 고교생의 폭발성 물건 투척으로 인해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냄비는 굉음과 함께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의 연기를 내뿜어댔고, 고교생을 붙잡으려는 손길과 외침, 그리고 혼비백산으로 콘서트 장을 빠져 나가려는 인파들로 온통 엉망이 됐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신동 성당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한 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기획된 이 통일토크콘서트는 일부 종편과 보수언론 및 보수단체들이 주장하는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선 채 서울과 광주, 대구에 이어 네 번째로 마련됐다.

당초 원광대학교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이번 행사는, 학교 측으로부터 두 차례나 대관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전해 받고 행사 당일 긴급하게 신동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됐다.
이날 신은미 씨와 황선 씨는 그들이 북한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관객들과 진솔하게 나누며 콘서트를 이어나갔다. 특히 신은미 씨는 자신을 향한 마녀사냥과도 같은 비난에 대해 반박하며, 남과 북이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시대가 올 때까지 오작교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평양 김치가 맛있다. 개성 김치가 더 맛있다. 그래도 김치는 전라도가 최고죠.”
“북한 김치를 너무 맛있다고 하면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것이 될지도 몰라요.”
일부 언론들이 하고 있는 종북 논란과 관련 문제시되는 부분에 대해, 그들은 오히려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자아냈다.

세간의 종북 논란과는 달리, 이들의 이야기는 흡사 서울에 다녀온 지방 사람이 “서울에는 63빌딩도 있고 한강도 있고 사람들이 전부 연예인 같더라”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대로 전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들이었다.

◇ 이야기를 삼켜버린 연기

콘서트가 시작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인 오후 8시 30분께, 결국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하셨죠?”
“저는 지상낙원이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책을 한 번만 읽어봐 주시기를 바래요.”
사건이 터지기 직전, 익산 A고등학교 화공과 3학년 오 모 군과 신은미가 주고받은 대화다.
이후 오 군이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주변 사람들과 행사 스태프는 차후 따로 마련된 질문시간을 활용할 것을 당부하며 오 군을 제지했다.

이에 오 군은 미리 준비한 양은냄비에 질산칼륨·설탕 등으로 제조한 일명 ‘로켓캔디(고체 연료)’와 적린과 황을 섞은 점화제를 혼합한 후 불을 붙였다.
오 군이 신은미 씨와 황선 씨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 사람들이 이를 제지했고, 그 과정에서 냄비에 담긴 인화물질이 바닥에 떨어졌다.

곧바로 굉음과 함께 연기가 행사장에 가득차면서 오 군을 붙잡기 위한 혈투가 벌어졌다.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의 연기 속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관객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콘서트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원광대학교 이재봉 교수와 행사 스태프 1명이 화상을 입어 긴급 후송됐다.
경찰에 따르면 오 군은 약 5개월 전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불꽃놀이를 하기 위해 구입한 화학약품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평소 북한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있다가 이번에 익산에서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극보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오 군은 범행 전날인 9일 오후 애니메이션 관련 커뮤니티에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발견했다 - 집 근처에 신은미 종북콘서트 여는데 신은미 폭사당했다고 들리면 난 줄 알아라’라는 내용과 ‘봉길센세의 마음으로 - 찬합통에 폭약을 담았다. 내일이 기대된다’라는 내용의 글과 사진을 게시해 범행을 암시했고, 범행 당일 현장에서도 ‘빼갈 한 병 마시고 벼르고 있다’라는 내용의 글과 사진을 게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폭발성 물건을 투척해 위협을 가하고 행사를 방해한 행위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 내가 하면 우수, 남이 하면 종북?

일부 언론들에 의해 종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재미교포 신은미 씨의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은 2013년 상반기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이 책은 당시 우수문학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에 배포까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으로 문체부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책 읽는 사회문화재단’은 이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한 사유에 대해 “이 책이 전문적인 르포작가나 진보진영에 속한 분에 의해 쓰였다면 우리의 공감과 감동은 적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전문적으로 써보지 않은 사람이, 본업이 성악가인 사람이, 본인 스스로가 자신은 우리나라 보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대구출신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반공 이념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져 있던 사람이, 최근에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사람이 북한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이기에 설득력과 공감을 갖는다”고 밝혔다.

또한 “저자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다녀온 후 ‘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글을 썼다’(오마이뉴스 2012.10.23.)고 말한 바 있다. 즉 쥐어짜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 인생의 강한 경험에서 오는 충격과 감동과 반성을 풀어냈다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북한에 대해 비슷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도전과 감동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평도 내놓았다.

이밖에도 신은미 씨는 통일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홍보영상에도 출연한 바가 있다. 지난 2013년 9월 11일 신 씨는 통일부 UniTV가 기획·방영한 서울-평양 기획 시리즈 2편에 출연해 현재와 과거의 서울·평양의 모습과 주민생활을 소개했다. 당시 신 씨는 자신의 방북 경험담을 책으로 출간하고 공중파를 비롯한 각종 방송과 언론에 출연해 최근 평양의 모습을 소개해, 당시 UniTV가 기획한 프로그램 취지와 맞는다고 판단돼 현재의 평양 모습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정부는 최근 신 씨가 출연하는 토크콘서트 내용이 이념적 편향성 문제가 제기돼 해당 동영상을 UniTV에서 삭제한 상태다.

결국, 문체부와 통일부가 앞서서 신 씨의 북한 여행기를 우수사례로 선정하고 홍보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내용의 토크콘서트에 대해서는 종북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신 씨의 토크콘서트가 문제가 된다면, 그 이전에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술된 그의 저서 또한 문제시돼야 함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지난해 문체부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한 바 있는 바로 그 책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곧 정부의 판단이 같은 내용을 누구와 함께 나누는가에 따라 다른 판단으로 이어진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꼴이 된다.

결국, 이러한 종북 논란은 한 고교생을 폭탄 테러범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6·15 남측위 전북본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진보과장, 민주언론시민연합, 전북민원연대 등 20개 단체로 구성된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는 11일 신동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은 종편과 보수언론, 보수단체, 공안당국이고, 이들의 종북 소동은 19살 청소년을 폭탄테러범으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경찰은 이번 사건의 진상과 혹시 모를 배후까지 철저히 조사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민국구국채널, 나라사랑어머니연합,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 6개 보수단체 10여명의 회원은 지난 12일 익산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은미 씨 등 종북 세력에게 응징을 가한 오 모 군을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와 공권력이 손을 놓고 있어 분통과 불안에 휩싸이던 시기에, 익산에서 애국지사에 의한 의거가 일어났다”면서 “19세의 고교생이 종북 세력에 항거에 애국혼과 구국혼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