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익산은 환경이 좋아서 그런 것을 했으면 진작에 성공했을 텐데.”
로컬푸드 이야기를 들으러 온 익산지역 기자에게 그가 한 첫 마디다. 남들이 다 뭐라 하는 로컬푸드를 뚝심 있게 밀어붙여 끝내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은 임정엽 전 완주군수는 자신이 택한 완주보다도 더 익산이 로컬푸드의 최적지라는 사실을 첫 마디에 뱉어냈다.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내보이며 초면인데다 인터뷰 도중임에도 불구, 바구니 속 귤을 손수 까서 건넬 정도로 스스럼이 없는 그는 준비해 간 질문을 꺼낼 겨를도 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론은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로컬푸드.
지난 2007년, 그가 준비를 해서 딱 시작을 하니까 정부가 말하기를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니까 하지 마라”고 했다. 자기들이 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것.
그는 그것을 “그분들의 이야기였다”고 회고한다. 그것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해 적극적인 추진에 나선 로컬푸드 사업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었다.
정부에서 로컬푸드를 시도해 보기는 했냐는 질문에 “정부에서 흉내는 냈죠”라고 웃으며 답한 그는, 서서히 그동안 해왔던 로컬푸드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시작은 그런 겁니다. 인류가 이대로 지속가능할까. 시골에서 군수하는 사람이 뭔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얘기하느냐 그럴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르면, 도시가 꽃이라면 농촌은 그 뿌리다. 하지만, 천박한 자본 때문에 천박한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왜 지역을 안보고 왜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안 보는지 그는 답답하다.
결론은 관심이 공천에 있기 때문. 이에 그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것, 우리사회가 흔들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기 공천을 주는 사람만 쫓아다니면, 자기 자리가 보전된다는 생각을 해요”라는 그의 말은 어찌 보면 지난 6·4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고배를 마신 자의 하소연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결국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해 성공의 결실을 거둔 그의 로컬푸드와 일맥상통한다.

◇ 임정엽은 출발점이 달라

로컬푸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싶더니, 문득 공자님 이야기가 나왔다.
“2,500년 전 공자님 말씀이 주유천하를 하고 돌아와서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위나라 영공한테 이르기를, 당신이 나를 기용하면 1년 내에 이 나라의 체계를 잡고 3년 내에 도의정치를 실현하겠다고 했다지요. 도의정치는 곧 성과를 내주겠다는 말입니다. 그 시절에도 과학문명도 없고 교통도 불편하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지금은 인류가 우주에 갔다 오고, 돈 한 푼 안들이고 여기서 미국까지 실시간 화상통화가 가능한 시대지요. 그런데 의식주 하나, 먹고 입고 자는 것 하나 해결 못하는 게 우리 사회입니다.”

그는 이를 “각 영역 리더들이 자기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가 가능할 것인가’이다. 그는 “농촌이 그 근간이고 뿌리여야 하는데, 이 뿌리가 흔들려 버리니까 우리 사회 전체가 흔들리고 먼저 망가지는 모습을 농촌에서 보게 된다. 하지만 도시까지 결국은 다 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은 ‘재촌탈농’이다. 농촌에 살되, 농업은 경쟁력이 없고 효율이 떨어지니까 손을 떼겠다는 것. 핸드폰이나 자동차, 선박, 반도체 등을 팔아서 싼 쌀을 사다가 먹거리로 하면 된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 기조다.

“이 기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 알아요. 아는데 어느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은 이유는 뭐냐. 내 임기 내에서는 멜로만 하고 싶고, 액션은 하기 싫은 것.”
힘든 것은 하기 싫기에, 적당히 포장하고 적당히 사진 찍어 놓고 임기만 잘 지나가면 된다는 고약한 심보 때문이다. 이는 또 좋은 자리와 승진이 보장되는 구조적 문제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주민들한테 정부의 이런 정책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농촌도 얼마나 경쟁력이 있고 지속가능한지를 보여주면서, 인근 지자체도 따라오게 만들고 그런 정책 결정자들과 정치인들, 지식인들이 부끄럽게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로컬푸드에 발을 내디뎠다.
“농업농촌의 수도를 여기에 한번 만들자. 모든 부분의 수도는 서울이지만”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렇다면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이지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는 “지역에 어디가 어떻게 고장이 났는지는 전문가와 배운 사람, 중앙보다 주민들이 가장 잘 안다”면서 “주민들이 고장 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보고, 주민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우리가 놓친 지역에 있는 자원과 자산들이 뭐가 있는지 한번 조사를 해보자”고 판단했다.
농촌이 못산다고 외부동력을 끌어다가 농촌을 살린다고 하면, 거기서 얻어지는 이윤이나 이익은 결국 외부의 동력들이 다시 가져가는 것이기에, 그 동력이 끊어지면 다시 또 시드는 것이기에 내발적 성장 동력을 찾았다.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고, 뭐가 잘못됐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우리가 놓친 가치는 무엇이고, 지역에 어떤 자원들이 있는지를 봐서 비즈니스 방식으로 이걸 한 번 풀어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봉사나 구호활동, 정부의 지원 같은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을 가지고 비즈니스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면, 또 지역에 있는 자원과 자산을 주민들이 활용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다면 여기에서 얻어지는 이익이 내부로 돌아와 순환경제 그리고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될 수 있지 않겠나”라는 그의 생각은 결국 그대로 적중했다.

◇ 생산만 하면, 책임지고 팔아줄게

“그렇다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첫 번째는 ‘먹거리’였다. 두 번째가 환경자원, 그리고 역사와 문화자원.

그는 “우선 먹거리를 가지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우리도 이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먼저 지역 자원자산 조사를 실시했다. 2007년 계획을 수립해 주민 교육을 실시하고, 이듬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이후 이를 토대로 ‘완주군표’ 파워빌리지 사업과 마을회사 사업을 펼쳐 나갔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먹거리를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다가왔다. 이미 먹거리 유통구조가 무너졌는데,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전에는 ‘농사’라고 불리던 것이 이제는 ‘농업’으로 바뀌었을 만큼, 생산하는 것보다 판매나 마케팅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유통구조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자본이 들어와, 서로에게 유익해야 할 먹거리가 돈을 쫓아가는 돈벌이 수단, 이른바 ‘로또농업’이 됐다. 그는 이러한 유통구조를 올바르게 돌려놔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다 아는데, 왜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그는 “단작 중심 돈 되는 농업만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정부에서 이를 가르치고, 언론에서 이를 부추긴다는 것. 그는 “결국 대다수의 농민들이 돈을 보고 쫓아 불나방이 된다”고 우려했다.

◇ 얼굴 있는 먹거리, 가장 신선해, 적정한 가격

그는 “처음부터 로컬푸드를 하자가 아니라, 농촌을 살려야 하는데 순환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시각에서의 접근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지역의 자원들을 가지고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을 만드는데 이것의 최종완결판이 바로 로컬푸드다.

다른 지자체는 왜 못하는지, 정부는 했는데 실패하고 나서 안 된다고 말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는 “직매장이라는 이론적 개념만 머리에 그리고 하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직매를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우리사회에 어떻게 서로 유익한지, 생산자와 소비자가 어떻게 서로 배려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그는 “직매를 하되, 돈을 많이 벌고 서로 속이고 때깔 좋은 걸 올려야 되고 안 좋은 건 숨겨야 되는 직매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농사짓는 방식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양을 많이 생산하는 방식이고, 농약을 내가 안 먹으니까 때깔만 좋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로컬푸드 직매장이 아니라 또 다른 점빵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정부는 직매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드웨어 중심으로 운영을 해서 실패를 하게 된 것이고, 임정엽의 완주군은 기초부터 접근을 달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셈이다.

다른 지자체가 겁내는 이유, 짝퉁 직매장이 생겼다가 이내 문을 닫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직매장이라는 것이 로컬푸드라는 이름을 내걸고 때깔 좋은 것을 가져다가 싸게 팔면 되는 줄 알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농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며, 거기에 첫 번째 원칙은 이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여기서 얻어지는 이익을 차지하는 주체가 반드시 주민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주가 있거나 돈을 댄 사람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상호 배려하는 마음 또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다.

완주군수 재임 당시 농촌에 좋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사기꾼으로 신고할 것을 주지시켰던 그는, 로컬푸드 초기 생산농가 확보에 나선 공무원들을 신고하는 해프닝을 수차례 겪었다. 농가 대상 교육만 600여회, 전진대회는 수도 없이 다녔다.

처음 용진농협 측과 사업추진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다. 수차례 교육과 설득의 과정, 셀 수 없는 전진기지 견학, 결국 2년 내 투자 100%를 보전하고 초기 시설비용 50% 이상을 지원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그 결과로 완주는 전국 최초의 성공적인 로컬푸드 직매장을 갖게 됐다.

이후 임정엽은 생산자가 직접 판단해 상품을 생산하고 운반하며 매장에 손수 진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모든 판단이 생산자의 몫이기에 수익의 많고 적음도 그들의 몫이다.
다품종 소량생산, 당일생산 당일판매가 원칙인 로컬푸드인지라, 연중 400~600여개에 달하는 출하는 기본이다.

로컬푸드를 준비하는 행정이 한 발 더 바삐 뛰어야 할 이유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