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6주기가 돌아온다. 시민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꿈꿨던 그다. 하지만 현실은 냉랭하다. 오히려 뒷걸음을 치고 있는 모양새다. 굳이 정치인들의 시답잖은 행태나 납득키 어려운 나라꼴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차벽으로 꽉 막힌 광화문사거리와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시민을 가리지 않고 쏘아대는 물대포가 단적으로 현실을 말해준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주권자, 선택하는 시민’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권위주의 시대를 향하면서 그만큼 민주주의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에, 노무현의 서거 6주기를 맞아 그의 말과 행적을 뒤돌아봄으로써 민주주의의 주인으로서의 시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희망찬 미래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사진출처(하단포함) - 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 ◇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 서릿발 같은 독재정권의 위력에 맞서 학생과 노동자를 변호했던 사람, 부패한 5공화국의 비리를 용감히 파헤친 청문회 스타, 3당 합당을 반대하고 지역주의와 싸우다 선거에서 4번을 지고 대통령이 된 인물. 노무현, 그가 평소 시민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너나없이 모두 사람이 되고, 멀리보고 행동하는 바보가 돼 새로운 민주주의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특히 시민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 한 특별강연에서 이를 강조한 연설로 그는 ‘바보 노무현’에 이어 ‘盧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주주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국민들은 점차 정치와 민주주의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이른바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중략- 사람들은 오로지 먹고사는 경제 문제에 매몰되고 개인의 취미생활이나 소시민의 행복에 매몰돼 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태평성대가 이루어졌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민주주의 위기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실제로 여론의 지배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여론은 언론이 지배하고, 언론은 시장을 지배하는 세력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주의는 가치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정치는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이지만 시장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시장이 우리 정치를 지배하게 됐을 때 가치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날 그는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이룰 만큼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고위험 저수익’ 직업이다. 천신만고 끝에 의원이나 단체장이 된다 할지라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처우는 대기업의 부장급 내지 이사급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학의 웬만한 전임교수보다 훨씬 못하다. 게다가 의원이나 단체장이 되지 못하면 집안의 천덕꾸러기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 -중략- 한국에는 낙선했거나 집권하지 못한 정당 주변의 고급 정치 엘리트들이 국가 경영 경륜을 발전시키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거의 없다. 결국 이런 구조에서는 상당한 특권과 특혜가 보장된 자격증(특히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든든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히 정치에 도전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이 건강한 청년이 정치를 할 이유는 정말 없다. 결국 권력욕과 명예욕이 이상 비대한 사람, 투기주의와 한탕주의를 체화한 건강하지 못한 청년, 부모나 배우자 잘 만난 사람, TV에 얼굴을 비칠 행운을 잡은 방송인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적 마인드가 강하고, 국제 감각이 있고, 가치생산 사슬 전반의 균형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기업 엘리트들에게는 너무나 진입 장벽이 높다.” -노무현 이후, 276~7쪽-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자신의 저서 ‘노무현 이후,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를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강력하고 유능한 정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되는 생산적인 선거제도, 정치 인재 영입, 교육, 훈련, 배치 시스템, 정치자금 공급 시스템 등 다양한 사회적 평가보상체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는 주장이다. 관건은 국가 경영 노하우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정치 엘리트를 훈련시키고, 순환시키는 정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노무현의 민주주의 위기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김 소장 주장의 밑거름은 바로 자신이 가진 주권을 소홀히 하지 않은 책임 있는 모습의 성숙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 그는 없지만, 그의 가치는 아직도 생생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되뇌어온 그의 말이다. 평소 깨어있는 시민, 참여하는 시민, 시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취지의 발언을 많이 남긴 바 있다. 퇴임을 6개월여를 앞둔 2007년 6월 16일 그는 노사모 총회에 축하 영상메시지를 전했다. 11분 남짓한 분량의 메시지를 통해 그는 당선과정과 참여정부 5년을 돌아보며, 노사모와 시민들의 지지와 참여로 탄생한 참여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역사에 새기듯 하나하나 힘줘 이야기한다. “아직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치, 언론, 그리고 복지투자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진보하는 역사 앞에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함을 강조한 그의 말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당부이자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담은 선물이다.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지속돼야 할 소중한 가치다. “사람이 돼야 됩니다. 따듯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나하고 가까운 우리에게만 따듯한 사람이 아니라 넓은 우리에게 따듯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략-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데 그런 노력을 하는 자세라도, 때때로 되돌아보는 자세라도 우리가 가지고 자신을 다듬어 나가면 그래도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따듯한 사람은 분노가 있는 사람이지요. 사람이 되기에 앞서서 바보가 됩시다. 누가 바보냐? 이해관계를 셈할 줄 모르는 사람을 우리가 보통 바보라고 하거든요. 말귀는 잘 알아듣는데 손해나는 일을 부득부득 하는 사람, 이게 바보지요. 당장 가까이 눈앞을 보면 이익이 따로 있고 대의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입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을 볼 줄 모르는 바보가 되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손해나는 일만 계속합시다. 그렇게 사람을 모아 봅시다. 함께 토론도 하고 공부도 합시다. 그리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합시다.” 
◇ 시민의 의미.. 잠시나마 되새기려 “폭군이 죽으면 그의 통치는 끝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의 통치는 시작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이해 익산지역에서 시민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익산노랑개비위원회가 모시는 글의 서두에 인용한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명언이다. 해를 거듭하며, 지역에서 그의 체취가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 다시 희망을 노래하자는 취지로 모인 순수 아마추어 시민들이 서거 6주기를 기념하려 나섰다. 익산 노랑개비 위원회라 이름을 붙인 그들은 오는 23일 영등동 롯데마트 엽 농협 주차장에서 ‘노무현 시민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없는 대한민국의 6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시간들을 생각하면, 누군가는 나서서 기억하는 것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한 발 더 나가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이 나선 이유다. 정치색을 배제하고 노무현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을 담아 추모하고, 잠시나마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것이 이들이 자리를 마련하는 취지다. 지자체나 시민단체의 도움 없이 순수 지인들의 도움으로만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노랑개비 위원회의 시민 김지수 씨는 ‘시민 문화제’의 ‘시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일반적인 의미인 ‘시(市)에 사는 사람’을 뜻한다기보다는, ‘국가의 정책이나 정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국민’이라는 뜻에 의미를 부여해 고심 끝에 이번 문화제의 이름을 ‘노무현 시민 문화제’로 삼았다. 이번 행사에 참여해 잠시나마 익산시에 살고 있는 ‘시민’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시민’임을 되새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김지수 씨는 “정치는 참 멀어 보이고 우리에게 별 도움도 되지 않아 보이지만, 정치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고난의 가시밭길로 가게 될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주인은 분명히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무관심한 국민들에게 거짓과 오만으로 피해를 주고 있기에, 시민들이 일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승욱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