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환승센터가 유일한 희망이라오”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편집자주>

◇ 죽어버린 도로.. 기대도 안한다

여름이 금새 코 앞으로 다가온 듯 무더운 날씨 탓에 이번 일정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시간대로 골라 도로 위로 나섰다.

지난 여정의 종착지였던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제181호 익산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및 창고’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익산문화재단을 기점으로 익산역 방향으로 차곡차곡 발걸음을 쌓아갔다.

오후 6시 30분, 평화동 일대의 풍경은 전북제일고등학교 학생들의 하교시간과 겹쳐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삼삼오오 절친한 친구들과 짝을 이뤄 수다를 떠는 여고생들 모습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그 모습에서 옛 학창시절의 향수에 젖기도 했다.

건강하고 씩씩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뒤로한 채 평화동 버스정류장을 얼마쯤 지났을까, 예스럽고 아주 오래된 듯한 철물점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철물점 주인은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으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황급히 철물점으로 달려가 주인을 붙잡고 과거 익산대로 일대의 풍경과 가게를 일찍 정리하는 이유를 묻자, 철물점 주인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지금 앞에 보이는 익산대로는 죽은 도로야. 옛날에 이 일대는 엄청 활성화돼 사람도 많이 다니고 정신없었지. 근데 지금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람이 안다녀. 사람이 있어야 물건을 팔 것 아니겠어? 사람이 안다니니 이 주변 일대 가게들은 다 이 시간대에 문을 닫곤 해.”

“익산시는 익산대로가 익산의 관문이라고 하지만, 주변을 둘러 봐봐. 건물들이 30년, 40년 이상 지나서 다 낙후되고 노후화된 거 보이지? 나도 이 자리에서 철물점을 23년째 하고 있는데, 우리 철물점도 지붕이 맨 처음엔 기와였다가 너무 오래되니까 슬레이트를 쳐서 덧칠하고, 그 위에 또 슬레이트를 쳐서 덧칠해 지금은 지붕이 3겹이나 된다니까. 그래도 옛날 모내기 철에는 사람들 왕래가 많아 농사 짓다 뺀찌라도 하나 사러왔지. 지금은 요 앞 제일고 하교시간에만 애들이 돌아다니지 그 외엔 아무도 없어.”

이야기를 듣고보니 철물점 주인이 처음 말을 꺼내기 전 한숨을 쉬었던 이유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고, 철물점 주인은 깊게 숨을 들여 마신 뒤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익산역에 KTX가 개통한다고 새로 만들어 졌는데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은 관심이 없어.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데 상인들과 주민들이 무슨 생각이 있겠어. 기자양반이라면 저렇게 노후화된 집에서 살고 싶겠어? 선거 철만 되면 개발한다고 공약만 걸고 지키는게 없으니 주민들이 믿지도 않고 우린 희망도 잃고 살고 있어.”

“더군다나 평화동이 익산의 관문이라고만 하고 익산을 위한게 하나도 없어. 8월에 주민 보상을 한다는데 이 근방 사는 주민들은 기대도 안해. 저기 봐봐. 인도 안에 나무들 심어져 있는거 보이지? 시가 녹색지대를 만든다고 해서 나무를 심은 건 참 좋은 일인데 이 나무가 3~4년 후 다 자라면 위에 보이는 전신주를 타고 올라간다고 그러면 시는 나뭇가지 친다고 돈 들일거고 나뭇가지 치면 나무가 뭐 볼게 있겠냐고! 그 돈을 차라리 주민들을 위해 써야지!”

철물점 주인의 이야기는 안타까웠지만 익산시의 현실이었다. 오후 7시가 채 되기도 전 해가 아직 서방 하늘에 떠 있던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이 하교하고 떠난 자리에는 적막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주변에 보이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노후화돼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만들어 냈으며, 동네 주민들이 조그마한 구멍가게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것

 이외에는 사람의 발걸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 발전이 없어.. 희망마저 잃었다

철물점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금 익산역 방향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서너걸음 걷다보니 철물점 주인과 대화를 할 때부터 관심을 갖고 쳐다보던 평화동 주민이 대화를 요청했다.

평화동에 거주 중인 주민은 기자와 철물점 주인과의 대화를 자세하게 들은 듯 연관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익산역에 KTX가 개통돼 서울까지 빨리 갈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러면 뭐하겠어. 역사를 잘못 지었는데 말이야. 역 주변으로 복합환승센터를 만들겠다고 해놓고 지금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 복합환승센터가 만들어지고 백화점이 들어서야 김제, 군산, 정읍 사람들이 익산에 올게 아니겠어? 뭐든 사람이 있어야 상권도 활성화 되는 것이지. 이 평화동 일대에 사람이 없어서 발전이 안 되고 발전이 안 되니까 지역 주민들이 떠나고 있어. 평화동 주민들은 지금 희망이 없어.”

“거기다 시가 문화의 거리라고 저쪽 중앙동 근방에 만든 길도 말이야 도시가스 등 기반시설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서 나중에 도시가스라도 설비하려면 만들어 놓은 거리를 다시 다 뜯어야 된다니까. 일 처리를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어 도통. 도시가스가 없으니까 그 근방 주민들은 아직도 가스회사에 LPG가스통을 주문해서 사용하고 있어. 거리만 큰 돈 들여 만들어 놓고 도시가스를 안 만들어 놓았으니, 사람들이 와서 건물이라도 짓고 해야는데 누가 그러겠냔 말이지”

평화동 주민은 열변을 토하듯 이야기를 뱉어냈고, 현재 평화동이 처한 위기의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게다가 다른 도시들의 역을 가보면 근처에 코레일 승무원들 숙소가 마련돼 있는데, 익산은 직원들이 숙식을 해야 될 숙소 허가를 내주지 않아 승무원들이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어. 그 여관만 매년 1~2천만원씩 장사되는 거야. 익산역사가 새로 지어지고 역사 앞 중앙동 길거리 노른자 땅들이 평당 200~300만원씩 밖에 안했는데, 외부 사람들이 땅을 사서 건물을 지으려고 해도 주민들이 평당 1,000~1,500만원을 부르니까 땅을 사질 못해 건물을 못 지었다니깐. 지금에 와서는 땅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아”

“차라리 역 앞에 백화점이 못 들어선다면 주얼리 판매센터든지, 익산이 주얼리 도시인데 판매센터가 역 근처에 있어야 관광객들이 들렀다가 그거라도 보고가지 않겠어? 익산역을 번지르르하게 지어놨는데 막상 역 앞에 가보면 익산을 알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무 것도 없어. 그게 가장 중요한 건데 말이야. 우리 익산을 알릴 수 있는 홍보물 같은 것들 말이지.”

평화동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낙후된 동네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주민들의 애환이 생각나 마음이 쓰렸다.

이야기를 마친 주민은 기자의 손을 꼭 잡더니 “잘 좀 부탁해! 우리 동네 살아날 수 있게 잘 좀 부탁해!” 라는 말만 거듭 반복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미래 익산시의 희망을 찾기 위해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 미래의 관문이 될, 익산역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제일건설 건물을 지나치다 보니 머리 위로 낡고 오래된 옛날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판에는 좌측 익산역, 우측 하노버 호텔이라고 쓰여 있었고, 아주 어린 시절 길을 지나가다 본 듯한 기억이 파편처럼 뇌리에 스쳤다.

긴 거리를 걸어 온 것은 아니지만 해가 점점 서쪽하늘로 지더니 까만 밤하늘이 하늘을 덮기 시작했고, 금세 어두워져 밤이 찾아왔다.

해가 지니 평화동 주변 사람들의 왕래는 더더욱 없었고, 스산한 분위기 탓인지 누군가에게 쫓기 듯 익산역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5분쯤 걸었을까 익산역사의 모습이 차츰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첫 삽을 뜬 후 6여년 만에 완공된 익산역은 선상역사로서의 위용을 드러내듯 웅장한 모습으로 철도 이용객들을 맞이했다.

또한 역사 좌측 한편에는 택시승강장과 시외버스 환승장이 자리잡고 있어 시민과 철도 이용객은 물론 시외로 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한 광경이 연출됐다.

환승장을 보며 아쉬움이 많았다. 본래 지난 2010년 국토해양부가 추진한 복합환승센터 시범사업에 익산역이 응모해 선정됨에 따라 복합환승센터가 설립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지만, 현재 지지부진 하고 있기 때문.

환승센터 설립 계획은 당초 2011~2016년까지 계획됐으며, KTX호남·전라·장항·군산선의 철도 분기점 역할과 고속버스 12개, 시외버스 32개, 사업자 전면 시내버스 10개 이상의 노선이 운영돼 호남 최대의 교통허브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또한 복합환승센터가 단순히 교통을 환승하는 곳이 아닌 업무와 쇼핑과 생활을 하나로 집약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상권의 활성화를 토대로 지역경제 발전에 탄력을 줄 것이라고 기대가 모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는 환승센터 건립을 위한 민간투자자가 모집되지 않아 답보인 상태.

하지만 복합환승센터 건립이 현재 난항을 겪고 있음에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던 서부역사 진입로 공사가 진행 중에 있어 익산역 중앙지하차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지난 2013년 권익위의 조정으로 다시 출발하게 된 익산역 서부역사 진입로 공사가 완료되면 지난 6년간 폐쇄된 익산역 중앙지하차도와 시내 중심부의 병목구간인 송학 현대 사거리까지 500m 구간 전체가 4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돼 국도 23·27호선과 연결되게 된다.

게다가 공사가 완료되면 현재 왕궁에 건립중인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 군산까지 삼례를 통해 전주로 우회할 필요가 없으며, 익산역 중앙지하차도를 통과해 송학교차로를 지나 군익로(국도 23호선)를 이용해 직선으로 이동 하게 되면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 군산항까지 20분 이상의 시간 단축 효과를 볼 수 있고, 물류비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복합환승센터 건립과 서부역사 진입로 공사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익산시의 난제를 풀어 줄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익산역이 짊어지고 있는 과제들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 어린시절 추억의 방구오토바이

익산역을 살펴본 뒤 오늘 하루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주변을 밝히는 건물들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에 심취해 눈을 지그시 감고 밤공기를 즐기기로 했다.

그 순간 멀리서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눈을 떠 앞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시골마을에서 자주 봤던 소독 오토바이가 새하얀 소독가스와 특유의 소리를 뿜어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익산경찰서 중앙지구대 자율방범대에서 자체적으로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실시하고 있는 소독 작업이었다.

어린 시절 소독차나 소독 오토바이는 일명 ‘방구차, 방구 오토바이’로 불리며 아이들에게 재밌는 추억거리였다.

동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놀다 소독차 소리만 나면 다함께 뛰어나가 소독차 뒤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소독가스를 온 몸으로 맞으며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만큼 소독 오토바이는 어린 시절 추억을 끄집어 내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매주 월, 수,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소독을 실시하고 있어 가끔은 집에 차를 놓고 거리로 걸어 나와 어린 시절 추억에 잠시 빠져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처럼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나니, 그렇게 해는 저물고 어둠이 찾아왔다.

송승욱·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