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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 #5.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익산대로

점포 두 개 얻으면 다 얻은 것 같았던 시절 뒤안길에서,

대형마트에 밀렸지만 사람냄새로 가득한 전통재래시장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편집자주>

◇ 인심과 정으로 가득 찬.. 중앙·매일·서동시장 거리

걷는다는 건 행복일 것이다. 숨가쁘게 뛰어가는 시간에 발맞추지 않고 일탈하는 것 만으로도,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니까.

일탈은 하나의 사치일 수도 있으니 굳이 길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천천히 걷는 것에 값을 매길 수는 없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것인데.

다섯 번째 도로에 나서면서, 길은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들을 유혹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결했다가 이내 뿔뿔히 흩어지는 역 광장을 바라보면서.

그 네트워크의 기묘한 흡인력을 마주하면서, 사람들은 늘 쫓기면서도 다른 삶의 이야기에 갈증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행복해진다는.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의 가벼움이 네트워크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역 광장에 서서 그런 네트워크, 좀 더 여유로운 네트워크를 찾았다. 타인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부대끼는 곳.

처음엔 생존이 이유였지만 끈끈하게 엮이는 곳,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가 조금 더 가볍게 오가는 곳을 떠올렸다. 역 광장의 맞은 편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걸음을 옮긴 이유였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엿들을 수 있을까. 익산대로가 품고있는 서동시장은 아직도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을까. 평소에는 없었던 질문이 샘솟자 얼굴이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아치형의 큰 입구에 서동시장(구 창인시장)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시장은 초입부터 사람들의 분주한 왕래로 북적북적했다.

시장은 이른바 현대화 되면서 비가림 아케이드 속에 펼쳐져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입구 한 편에는 마트에서나 볼 법한 카트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장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준비돼 있던 것.

시장 입구에 마련된 '메르스 예방을 위한 손소독제'를 지나쳐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 했다. 사람 사는 것 같았다. 활기차고 활력이 넘쳐흘렀다.

"고기 좀 보고가세요", "야채 오늘 들어왔어~", "안사도 돼! 구경만하고 가~"

사람들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해 여울처럼 빛나며 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손님들은 또 그걸 무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틀어 진열된 상품들을 들여다 본다.

서동시장에는 정육점, 채소·과일가게, 떡집, 반찬가게, 치킨가게 등 넘치는 먹거리들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특히나 신기했던 모습은 아케이드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마다 시장과 시장 주변의 옛 모습이 사진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

기둥에 걸려있는 옛 모습의 사진을 보니 궁금증이 일었다. 시장의 옛 모습과 그 시절 그 속에서 사람들과 소통했던 모습은 어땠을까.

추억을 들려줄 사람을 상인들에게 수소문했더니, 중앙시장에서만 40여년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현재 익산매일시장 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소점호 회장의 가게를 귀띔해 준다.

서동시장을 빠져나오니 곧바로 중앙·매일시장이 이어졌다. 서동시장과 마찬가지로 중앙·매일시장의 아치형 입구에는 ‘의류패션 특화시장’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이곳은 먹거리가 아닌 의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시장 끝자락에 다다를 때 쯤 ‘이리땅콩’이라는 간판이 보였고, 가게 안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듯 소점호 회장이 물건들을 진열해가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점점 쇠락하는.. 전통재래시장

소점호 회장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낸 뒤, 시장 일대 옛 모습에 대해 물었다. 소 회장은 너털웃음을 짓더니,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40년 전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참 어렵게 살았지. 그 당시 어렵게 살았는데도 상권은 활성화가 잘 돼 있었고, 사람도 많아 장사가 잘됐어. 또 중앙시장이 패션시장이잖아. 당시에는 옷을 수선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 수선집이 골목마다 빼곡히 들어서 있었지. 이리역 폭파사고 전에는 중앙동 전북은행에서 기업은행을 따라 서울로 가는 버스가 다니기도 했어. 중앙시장은 8.15해방 후에 생겼으니, 지금 70년쯤 됐을거야. 중앙시장은 영정통거리하고 비슷했어. 당시 익산에서 1번 시장은 지금 인화동에 있는 구시장이였고, 2번이 중앙시장이었지. 75년도에 북부시장이 생기긴 했는데 그곳은 별 볼일 없었어. 그러다가 중앙시장이 활성화 되니까 구시장이 슬슬 죽기 시작했지. 내가 74년도에 ‘이리땅콩’ 간판 그대로 개업했는데, 당시 시장에는 주로 1차 식품들이 주 업종이었어. 정육점이 7~8곳이 있을 정도였다니까.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점포들도 꽉 차 있었어. 거리 바닥에도 좌판들이 가득했고, 못 먹고 살던 시절인데도 소 잡는 정육점이 많아서 대목 때마다 정육점에서 소를 10마리씩 잡고 그랬어.”

“지금은 많이 아쉬워. 다른 도시들도 그렇잖아. 신시가지 생기면서 구도심들이 밀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나마 다른 시장에 비해 여기는 사람들의 왕래가 어느 정도 있어 괜찮은 정도야. 예전만 못하지만 말이야. 젊은 사람들이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까 마트로 다 가잖아. 그래도 중앙·매일·서동시장 골목이 제일 깔끔하고, 장날을 따로 정해놓지 않고 상시로 장사하니까 괜찮지. 시장 명칭도 아케이드 공사를 하기 위해선 정부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정식 상가로 등록을 안 하면 공사 허가가 안 난다고 해서 창인시장을 서동시장으로, 중앙시장을 중앙·매일시장으로 등록했지. 아케이드나 카트, 배달 등 서비스가 없었으면 그나마 오는 사람들도 안 왔을 걸.”

소 회장은 현재의 상황이 많이 아쉬운 듯 활기를 띄던 옛 생각에 빠졌다.

◇ 시장 활성화 방안은.. 먹자거리, 야시장 등

소점호 회장은 시장상인들과 함께 시장을 살리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애절한 호소에도 이제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70년 역사의 중앙시장이 쇠락한 점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듯 보였다.

이처럼 아쉬운 상황에서 소 회장은 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안 등을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방안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중앙시장만 잘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 익산 전체가 공동적으로 잘돼야지. 익산을 대표하는 특산품이 없으니까 많이 아쉽지. 얼마 전에는 익산시 관광 해설사를 만났는데 관광객들을 중앙동에 내려주고 1시간 정도 쇼핑할 시간을 주는데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 관광객들은 익산이 보석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왕궁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차라리 왕궁에 있는 보석센터가 머니까 역 앞으로 보석점을 만들어 활성화를 시켜야 돼. 그리고 시장을 특화거리로 만들어야지. 국수 거리라든지, 황등 육회 비빔밥 거리라든지 특화거리를 만들어 관광객들이 와서 뭐라도 하나씩 사먹게 해야 돼. 중앙시장이 안되면 시에서 지금 문화예술의거리라고 만들고 있는 영정통거리에라도 만들어야 돼. 타지에서 익산에 뭐있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 내세울게 없으니까.”

“얼마 전에는 실미도를 놀러 갔는데, 실미도에도 호텔이 많더라고. 호텔이 있어야 관광객들을 수용하고 하는데, 익산에는 제대로 된 호텔이 하나도 없어 아쉬워. 거기다 예전에는 시장 2층까지 사람들로 빡빡했었는데, 지금은 별 볼일도 없고 손님들이 와도 익산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니까. 군산만 봐도 일본식 가옥이라든지, 철길마을 같이 관광자원을 보존해서 관광지로 만들었는데, 여기 중앙동도 지금 중앙동사무도 뒤쪽에 신한장 주변으로 일본식 가옥들이 많았어. 지금은 다 철거하고 없어졌는데, 익산도 그 곳을 관광지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어.”

소 회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먹거리 특화골목 조성과 익산을 대표하는 ‘보석’을 익산역 근방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판매점 조성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보통 상인들이 저녁 8시쯤 가게 문을 닫아. 그래서 가게 문을 닫고 난 후 시장거리를 야시장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전주 남부시장처럼 젊음의 거리를 만드는 거지. 여기 시장 2층에 공간이 많잖아. 다 텅텅 비어있는데, 이 공간에 공방도 만들고,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개방해 젊은 사람들을 유입할 수 있게 조성하는 거지. 근데 문제는 상인들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다이도 짜야하고, 다이보관 장소도 필요하고, 수도나 전기도 문제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만 해준다면 한번 꼭 해보고 싶어.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야 사람들이 붐비지 않겠어?”

그는 오후 8시 시장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는 시간 이후를 활용해 중앙시장에도 전주 남부시장처럼 야시장 조성을 통해 젊은 사람들의 유입을 계획하고 있었다.

◇ 그 땐 그랬었지.. “사람에 치여 살았는데”

소점호 회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새 시간은 저녁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슬슬 장사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다들 펼쳐놨던 좌판을 정리하고, 가게 밖에 꺼내 놓은 물건들을 가게 안으로 들여 놓기 시작했다.

시장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 쯤 기업은행 뒷 편으로 넓은 공연장이 눈에 띄었다. 넓직한 공간이 젊은 사람들에겐 버스킹이나 공연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바로 그 앞에서는 하림을 다니다 정년퇴직을 하고 과일, 채소장사를 시작한 고 모 씨가 좌판을 펼쳐놓고 있었다.

고 모 씨는 “예전에는 뒤에 마련된 공연장에서 젊은이들이 공연도하고 했는데, 지금은 전기도 고장 나서 사람들이 이용을 하지 않아. 거기다 서동시장 쪽에 먹거리들이 몰려있고, 여기 중앙시장은 옷 장사들이 많아서 사람들도 잘 안오고 장사도 잘 안 돼. 서동시장에는 이미 자리들이 꽉 차서 옮겨 갈 수도 없고, 북부시장에 장이 서면 사람이 없다니까”라며 아쉬움을 호소했다.

고 모 씨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도중, 옆에서 쭉 지켜보던 김 모 씨가 기자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김 모 씨에게 시장이 가장 호황을 이뤘던 시기에 대해 묻자, 그는 흥분된 듯 말문을 열었다.

“여기 중앙시장이 가장 잘 됐을 때는 자전차를 타고 들어오면 사람이 많아서 나가질 못했어. 워낙 사람이 많아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어깨를 치고 다녔다니까. 그 때 구시장이 제일 활성화됐고, 영등동은 다 논하고 밭이었어. 북부시장은 있으나 마나였고. 그거 알아? 당시에는 바닥에 다라이 하나 놓고 장사하던 아줌마들도 하루에 몇 십만원씩 팔았다니까. 그런데 롯데마트가 생기고 나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고양이가 운동장으로 쓰는 수준이야. 원래는 이 옆에 뉴타운 골목, 삼락극장이 있었던 골목에 20~30대 제품들이 많아 젊음의 광장이었어. 젊은 사람들이 퇴근하면, 뉴타운 골목에 들렀다 집에 가야 잠을 잘 정도로 활발했지. 지금은 극장이 없어지면서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가 다 사라지니까 먹거리나 패션 등 가게들이 다 죽었지. 그 때 그 부근 세가 시장 주변 세보다 2배 이상은 비쌌어. 점포 하나 얻으려면 하늘에 별따기 였다니까. 오죽했으면 점포 하나 얻으면 아들이 서울대 갔다고 하고, 점포 두 개 얻으면 아들이 서울대 법대가서 사법고시 패스했다고 할 정도로 출세했다고 했어.”

“지금 익산대로 길도 예전에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골목이었지. 지금 보면 (구)세무서 건물 있지? 간호학원 있는 곳 거기서 길이 끊겼다니까. 막다른 길이었어 거기가. 서국민학교가 남성여중·고였고, 이리역 폭파사고 이후로 돈 없던 익산시가 지원받아서 익산대로를 만들었지. 우스갯소리로 이리역 폭파사고가 누군가 화약차에 담배꽁초를 버려서 터졌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담배꽁초 버렸던 사람한테 익산시가 감사장을 줬다는 소문도 있었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형마트만을 찾고 있으며, 고령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이제 재래시장은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과거부터 현재를 이어온 시장의 모습에서, 삶의 정취와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현대화를 거쳐 근래에 마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가끔은 사람 냄새로 가득한 전통시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송승욱·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