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편집자주>

◇ 다섯 개의 길이 모이는 곳..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

익산 하면 떠오르는 것들 몇 가지, 그 중 원광대학교는 앞 머리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 원광대학교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로 손꼽히며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원광대학교 주변에 위치한 익산 대학로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20대의 젊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대학로 안으로는 빼곡하게 자리 잡은 원룸과 하숙집들, 패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미용실, 옷 가게, 이제 갓 성인이 된 대학생들을 위한 술집 거리 등 젊음을 그대로 표현하듯 생글생글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학촌은 신동에 형성돼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대부분 신동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신동은 익산대로, 동서로, 인북로, 무왕로, 신동로 등 5개의 길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동서남북으로 군산과 전주, 김제 등 타 도시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대학로는 영등동과 모현동 못지 않은 상권이 형성돼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다.

길을 걸으며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원룸과 하숙집들이다. 연조가 오래된 빨간 벽돌의 원룸, 이제 막 지어진 듯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건물 외벽을 장식한 원룸 등 가지각색의 원룸과 하숙집들이 길 양편으로 즐비하다.

하숙집 옆을 지나는데 안쪽에서 대학생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방학기간에 향학열을 불태우며 아르바이트로 알찬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인가? 기자도 모르게 하숙집 안으로 들어섰다.

때마침 시간대가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그런지,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운 청년들은 하숙집 주인에게 ‘이모! 맛있는거 해주세요!’라고 외쳐가며 어리광을 부린다.

안에 있던 한 학생과 눈이 마주쳐 가볍게 인사를 건냈다. 우연의 일치일까. 때마침 들어간 하숙집은 기자가 대학교 재학 당시 알고 지냈던 후배가 기거하는 곳이었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하숙집 주인에게 편리한 원룸이 아닌 하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하숙집 주인은 포근한 미소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원룸을 지었다면 편하긴 했겠죠. 아무래도 아이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까요. 원룸은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다 해야 되는데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이 그렇게 되질 않더라구요. 저도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의 엄마에요. 우리 아이도 조금 더 크면 대학교를 가겠죠. 가깝게 갈 수 도 있겠지만 우리 아이가 만약 타 지역으로 대학교를 간다면, 지금 제가 챙겨주는 아이들처럼 똑같은 입장이 될 거에요.”

“지금은 방학기간이라 한결 여유로운데 학기가 시작되면 전쟁터에요. 아이들 등교시간 맞춰서 깨우고 밥 차려서 밥 먹이고, 같이 지내는 아이들 신경쓰느라 몸은 힘들지만 집안이 북적북적 거려서 사람 사는 것 같다니까요. 이런게 다 사람 사는 정 아니겠어요?”

일어서려던 기자는 후배에게 "왜 집에 안 올라가고 이곳에 남아있냐"고 물었다.

인천이 본가인 그(25)는 “방학기간이지만 집에 가도 할 게 없어요. 집에서 놀고 있으면 오히려 부모님이 눈치만 줘요. 차라리 여기서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죠. 여기 있으면 이모님이 크게 뭐라고 하는 부분이 없거든요. 어차피 집에 안 간 친구들도 몇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아르바이트도 하고, 같이 놀러 다니기도 하고 그래요. 한 번 집에 올라가려면 짐도 다 싸서 올려 보내야 되고, 또 내려 올 때쯤 다시 짐 싸서 보내야 되고 너무 번거롭죠. 그냥 방학하고 한 1~2주 정도나 집에 올라가서 가족들 얼굴 보고 내려와서 이곳에서 지내는게 편한거 같아요 저는.”

잠시나마 하숙집 안에서 정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집 안 가득 따뜻한 밥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숙집 주인은 기자에게 ‘금방 차리니까, 밥 한 끼 하고 가라’며 따뜻한 정을 보냈지만, 어렵게 사양하고 다시 거리 위로 나섰다.

대문 밖을 나서며 뒤를 돌아보니, 하숙생들은 둥근 상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고, 그 옆에 하숙집 주인은 반찬들을 이리 저리 옮겨가며 하숙생들을 챙기고 있었다.

◇ 일생을 이곳에서 살았는데.. 방이 텅텅 비어 막막하기만

하숙집을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겨 가는 골목길에는 원광대와 원광보건대 등 대학교 개강일이 2주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원룸 및 하숙집 주인들이 한 곳에 모여 지나가는 대학생들에게 원룸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동인구가 많이 없어서 그런지 한적한 골목에 모여 있던 원룸 주인들은 홍보를 잠시 멈춘 뒤 서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낸 뒤 대화에 끼어 들었다. 원룸 주인들에게 ‘요새 경기가 어떤지’에 대해 묻자 다들 한결 같이 한숨을 내쉬며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 중 한 원룸 주인은 “내가 지금 운영하는 건물에 방이 총 24개 있거든? 그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꽉 찼던 원룸이 지금은 반절도 못 찼어. 왜 그런지 봤더니 매년 원대 학생들도 줄고 있고, 북일초 근처로 씨즈퍼스트라고 원룸형 아파트가 생겨버려서 학생들이 다 그쪽으로 가더라고. 2년 전 쯤 이었지. 그 때 아마 씨즈퍼스트가 완공돼서 입주하기 시작했을 거야 아마. 처음에 들어선다고 했을 때 대학로 주변 원룸 주인들 다 나와서 시위하고 그랬어. 못 짓게 하려고, 그게 지어지면 일생을 이곳에서 살았던 우리들은 막막해서 어떻게 살겠냐고. 지금은 애들 구경하기도 힘들어. 다른 원룸들도 방 채우기 급급한데 요즘 애들이 조금만 더러워도 계약 안해. 그러니까 애들 오는 시기에 맞춰서 집 정리 싹 다하고, 벽지 곰팡이 슬거나 문제 생기면 도배며, 장판도 새로 깔고 방을 새로 만든다니까. 이렇게라도 안하면 학생들이 눈길도 안줘. 그리고 요새는 집에 문제가 조금만 생기면 애들이 인터넷에다가 올려버리잖아. 지금도 힘든데 집 새로 다 고치고 하느라 돈은 돈대로 들고, 고쳐놔도 애들은 안 오고 하니까 힘들지 많이.”

대학생들의 높아져버린 수준만큼 원룸 주인들은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더 힘들어졌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학생들을 더 좋은 환경을 찾아간다. 하숙을 치는 일은 갈수록 힘겨울 것이라는 걱정이 그들의 표정에 짙게 깔려있었다.

◇ 방학만 되면 사람이 없어.. 다른 일거리 알아보려 해

원룸촌이 밀집한 골목을 빠져 나와 다시 거리 위로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대학로를 연결하는 길들은 사방형으로 반듯하게 만들어져 있어, 굽이굽이 들어가는 골목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원룸들이 밀집돼 있던 골목을 빠져나오자 거리 위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특별하게 구역이 나눠 진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원룸이 유독 모여 있던 구역과 옷 가게가 모여 있던 구역, 음식점이 모여 있던 구역 등 대학로는 구역별로 분할돼 있다.

사람들이 밀집돼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커피숍, 미용실, 옷가게, 화장품 가게 등 다양한 상점들이 줄을 지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쯤 가지 않아 대학생들이 유희를 즐기는 술집들이 이어졌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여름철인 탓에 해는 서쪽하늘 위에서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술집 주인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

가게 안에선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길 위는 조용했다. 방학기간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으로 다 떠나갔기 때문.

골목길을 계속 걸으며, 기자가 학창 시절 자주 다녔던 술집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 나갔다.

술집 근처 쯤 다다르자 담배 한 개비를 물고는 지나가는 행인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술집 사장 K씨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장 K씨는 기자를 반갑게 맞아 줬다. 서로 안부를 물은 뒤 요즘 가게 장사에 대해 묻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즘 대학로에 사람이 없어서 장사가 안 돼. 방학도 방학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을지 몰랐다니까. 이번에 가게를 옆에다가 하나 더 늘렸는데, 거기도 장사가 안 돼서 큰일이야 지금. 하루 가게 열어도 전기세도 못 빼게 생겼으니 가게 하나를 접어야 되나 싶기도 해. 6월부터 8월까진 적자야 그냥.”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가 말을 이었다. “이참에 다른 사업이나 할까 봐. 아니면 지역을 옮기던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학로 전체가 다 사람이 없으니까 다들 대학교 개강 때까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게 운영한다니까. 딱히 방법도 없고, 어쩔 수는 없다고 하지만 방학 때하고 개강 때하고 차이가 너무 심해서 걱정이야.”

여름방학의 대학로는 한마디로 비수기 였다. 상인들은 이 시기에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실천하거나 주저앉거나 둘 중에 하나가 방학기간 중에 갈린다.

◇ 자취생들을 위한.. 배달음식과 일회용품

술집 거리를 빠져나와 대학로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북부시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정을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길을 따라 위로 올라 갈수록 화려했던 거리와는 다르게 주택가들이 펼쳐졌다. 중간 지점에 비해 윗부분은 대부분이 다 개인 주택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주택가 가운데로 만들어진 공원에는 손자·손녀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마주잡고 나온 동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내 새끼가 더 예쁘다.’, ‘우리 강아지가 최고다.’ 해가며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신동의 중심지를 걸으며 유독 눈에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음식점 안에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없이 배달로만 운영되는 음식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배달 음식점들은 조그만 가게 안에서 자취생들만을 겨냥해 장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는 치킨, 피자, 탕수육, 보쌈, 닭강정 등 다양한 가게들이 많았으며, 가격 또한 저렴해 일반 술집보다 장사가 잘 되는 경우가 많았고,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가게 앞을 수놓고 있었다.

특히 원룸 옆에 위치한 대부분의 편의점이나 규모가 작은 마트 앞에는 생필품 또는 일회용품,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등을 진열해 놓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자취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1+1, 2+1 등 다양한 행사상품들도 많이 준비돼 있었다.

대학로 일대를 쭉 걸으며 볼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대학생들이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패션, 의류, 음주, 식당 등 다양한 것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었다.

거리의 모습은 자취생들을 위한 저렴한 배달음식과 편의점 앞 진열대에 진열돼 있는 생필품들, 신상 옷들로 가득한 옷가게, 미용실 등 젊음에 발 맞춰 형성돼 있었다.

되돌아가는 길, 삶의 터전에서 먹고 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뒤로하며, 집 밥을 그리워하는 하숙생들에겐 쌀밥 한 공기가 향수를 달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송승욱·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