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빠르게 지나치는 자동차들과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사이로 인도 위에 한 청년이 노란색 피켓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다.

피켓에는 ‘아직도 세월호 안에 9명이 갇혀 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울 힘도 없습니다. 제발 차가운 바다에서라도 건져내 달라고 오늘도 죽을힘을 다해 외칩니다! Rember 20140416’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일상을 거슬러야 할 만큼 절박한 청년의 호소에 이끌려 청년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냈다.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에서 수학 중인 김 모(27, 남)군은 바쁜 학업 탓에 오전, 오후로 시간을 나눠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 가량정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는 “1년이 훌쩍 넘어버린 세월호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거리 위로 나오게 됐어요.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는 9명의 학생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잖아요. 저는 직접 유가족들을 찾아가 만나봤지만, 아직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 사회는 유가족들이 돈을 받은 것처럼 치장하고 있어, 잘못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나왔어요. 피켓에 Rember라고 적어놨는데, 사실은 Remember를 쓰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피켓을 보고 틀린 철자 발음이라도 기억해 주길 바라며 일부러 틀리게 적어 놨어요.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끝까지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요.”

공교롭게도 그의 모습 옆 도로변에 순례자가 걸었던 순례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순례자란 신념의 길을 걸으며 자신을 바로세우고 흔들림없는 자기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처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는 마음속에서 그 날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 군과의 만남을 뒤로 숙연해진 마음을 안고 이번 여정의 첫 발걸음을 뗐다.

◇ 동네 어귀 슈퍼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원광대 네거리에서 원광대학교 정문 건너편 신용동 길은 대로변 옆으로 자리한 인도와 더불어 그 옆으로 긴 골목길이 만들어져있다.

골목 초입에 위치한 자동차 타이어 매장 옆으로는 강아지 한 마리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반기듯 폴짝폴짝 뛰어가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강아지의 귀여운 애교에 눈웃음을 절로 지으며, 골목 안쪽으로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의 종점에는 익산교당이 자리하고 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옆으로 쭉 이어진 중국집, 국밥집, 분식집 등 다양한 식당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근처에 대학교가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대학로에도 원룸촌이 형성돼 있었지만, 골목길을 따라 원룸·하숙집과 식당, 당구장, PC방 등 대학생들이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번화한 대학로를 주로 이용하다 보니, 이 주변으로 위치한 PC방, 당구장 등 오락시설들은 대부분 폐업을 했고, 입구부터 자라난 무성한 풀들은 이곳에 사람의 발자취가 뜸하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한 때 융성했던 이 골목은 기다랗고 왜소한 마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고, 상가와 주택들이 뒤섞여있다.

골목을 따라 형성돼 있는 원룸들과 하숙집들은 붉은 벽돌과 오래된 듯한 기와지붕, 낮은 담벼락 등 시골마을의 정취를 풍겼다.

대학로에 형성된 원룸촌에 비해 지어진 지 오래된 하숙집들은 저마다 방을 찾는 대학생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하숙 칩니다. 방 있어요.’라고 써 있는 조그만 벽보들을 담벼락에 붙여 놨다.

골목 아래쪽으로는 지대가 낮게 형성돼 있었고, 낮은 지대에 만들어진 원룸의 옥상은 골목길과 연결됐다. 집의 옥상이 골목길 옆으로 곧바로 만들어져 있어 1층 같이 보이기도 했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아주 오래된 것 같은 구멍가게가 오랜 세월을 견뎌낸 듯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다.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옛 추억에 사로잡혔다.

어느덧 구멍가게들은 도시에서 사라지고 편의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세상에서 구멍가게의 모습은 추억을 오롯이 간직하며 정겨운 모습들로 가득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진열대 위로 냉장고가 작아 진열장 위로 올라가 있는 소주병들, 자취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생필품, 한 봉지씩 꺼내져 있는 라면봉지 등 나무 진열대는 키가 작았던 어린날 먹고 싶던 음식이 손에 닿지 않아 주인아저씨에게 꺼내달라고 부탁하던 추억을 되살려냈다.

구멍가게 주인 부부는 옥상에 마련된 아담한 비닐하우스에서 올 한해 지어놓은 고추들을 수확해 말리고 있었다.

구멍가게 주인에게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이렇게 오래되고 낡아빠진 슈퍼를 부끄럽게 뭐 하러 찍나?’라며 부끄러운 듯 황급히 자리를 뜨기도 했다.

슈퍼에서 나와 걷는 골목길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골목길 오른편으로는 골목길과 지대가 동일해 집들이 제 위치에 만들어져 있었지만, 왼편으로 만들어진 주택들은 지대가 낮아 대부분의 집들이 반지하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골목길의 끝에 다다르자 대로변과 이어져 석상마을과 원광대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큰 길이 펼쳐졌다. 대신(큰 새말)마을로 방향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던 중 동네 어귀 슈퍼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원한 생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날리고 있었다.

◇ 한적하던 시골마을.. 한때는 하숙촌이었던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왼쪽으로는 밭들이 넓게 형성돼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주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100여m쯤 걸어 들어가자 멋진 집 한 채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요(凹)자가 뒤집어진 모양의 큰 틀 속으로 기와를 겹겹이 쌓아 틀을 채운 대문이 만들어져 있었다.

주택의 본 건물 또한 틀 안으로 시멘트, 벽돌이 아닌 기와를 겹겹이 쌓아 구조를 만들었고, 외관 또한 세련되게 만들어져 있어 흡사 예술가의 집 또는 미술관의 느낌을 풍긴다.

또한 바로 옆에 위치한 주택은 새하얀 벽면이 소박하고, 주황빛의 지붕이 색감을 더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색적인 주택에 신선한 느낌이 충만해졌다.

몇 걸음 옮기자 주택가 공터에 모여 앉은 동네 주민들이 저마다 부채질을 해가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민들은 밤 모기를 쫓기 위해 드럼통에 불을 지펴놓고 있었다. 풀과 나무가 섞여 타면서 연기를 뭉글뭉글 피워 올리던 어릴적 모기불을 여기서 만나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주민들에게 정겹게 인사를 건낸 뒤 대화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31년 전 이사 온 하숙집 주인은 “이 주변이 대학로가 생기기 전에 하숙촌이었어. 31년 전에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 만해도 대학로는 허허벌판이었지. 내가 처음 익산 왔을 때 신동시장이 만들어지고 있었어. 나도 지금 여기서 하숙치고 있는데 대학로가 생기기 전에는 방이 없어서 못 내놨어. 지금은 대학로 생기고 방이 하나씩 비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우리집은 살만해서 학생들이 많이 와. 대학로처럼 신식으로 집을 고치고 싶어도 이곳이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서 증·개축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그의 말을 통해 대신마을이 대학가 옆에 위치해 있음에도 번화 된 대학로와는 다르게 시골마을의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시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마을 내부로 깊게 들어갈수록 이곳이 왜 하숙촌인지 담박에 알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집들은 하숙을 치고 있었다.

하숙집들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다.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방들이 쭉 이어져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대문을 넘어 길에 이어진 마당길을 돌아가야 나오는 하숙집도 있었다.

특히 대청마루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방마다 방문 앞으로 조그만 마루가 만들어져 있는 것도 묘한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숙집들을 둘러보며 길을 걷다 지나치는 동네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동네 주민에게 "어디 가시냐"고 묻자 "농사일을 마치고, 운영하는 하숙집을 둘러본 뒤 살고 있는 집으로 가던 중"이라고 한다. 그는 기자의 손을 붙잡더니 ‘보여줄 게 있다’며 자신이 운영하던 하숙집으로 안내했다.

하숙집 대문을 들어가 주인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가니, 마당 한가운데 도라지가 가득 널려 있다. 하숙집 주인은 “도라지를 심으려고 다 캐와서 씨만 걸러내고 있는 중”이라며 “우리 안사람이랑 같이 하는데 영 진도가 안나간다”라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당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서 인지 잠시 뒤 하숙집 빈 방에서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걸어 나왔다. 주인아주머니는 ‘어디서 왔냐? 무슨 일이냐?’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왔으나, 기자의 신분과 취지를 이야기 하자 밝게 웃으며 1.5L짜리 생수 한 병을 기자에게 건넨다.

주인아주머니는 “날도 더운디 걸어댕기느라 고생하네들. 이거라도 마시면서 댕기랑게. 하숙집 치웠을 때 와야지 이렇게 난장판일때 와가꼬 뭐 보여줄게 없네이. 근데 저거봐봐 저거. 마당 한가운데 하얀꽃 보이지? 그거 내가 심어 놓은 건디, 마을 주변뿐만 아니라 원불교 총부까지 내가 다 퍼트렸다니께.”

주인아주머니가 가리킨 꽃은 마당 한가운데 금이 간 시멘트 틈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 하루의 끝자락에서.. 키질 하며 깨를 털던

딸이 가져다 준거라며 1.5L 생수를 기자에게 흔쾌히 건내던 하숙집 주인들과의 정겨웠던 만남을 뒤로한 채 길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마을은 하숙집들로 가득했지만 유독 깨를 심어놓은 밭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주택들 사이사이마다 만들어진 깨밭에서 주민들은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음에도 깨 수확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길을 따라 걸어가던 중 빼곡하게 심어진 묘목들 옆으로 아담하게 조성된 깨밭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쓴 부부가 키질을 해가며 깨를 털고 있다.

어느덧 시간이 저녁 8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주민 부부에게 ‘그만 마무리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라고 묻자 주민 부부는 “내일도 나와서 해야 되는데 내일 일을 조금 덜고 가면 좋지 않겠어요? 해가 아예 떨어지기 전까지는 하는데 까지 해야지요”라며 하던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마을의 끝자락에 도달했을까.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진 길의 오른편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더 이상 길이 나오지 않았고, 왼편으로는 주택을 끼고 돌아가는 길이 나오는 듯 보였다.

두 갈래 길의 길목에 몸을 길게 늘어뜨리고 누워있던 고양이가 기자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고양이는 길이 끊겨진 왼편이 아닌 오른편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고양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어가니 마을 밖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와 연결됐고, 더 이상 길이 나오지 않아 다시 마을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번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을을 빠져나와 출발점으로 돌아나갔다. 대신마을 입구를 빠져나와 원병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깨를 털고 있던 노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인도에 쭈그려 앉아 깨를 털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저녁에 혹여나 비가 올까 널려놓은 깨 위로 비닐을 덮고 있었다.

노부부는 집 앞 마당에 크게 깨, 당근, 콩 등 작물들을 심어놓고는 소소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지나가는 기자를 본 노부부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기분 좋은 인사를 건냈다.

깨를 털고 있던 할머니에게 깨가 종류가 다양한 것 같다고 묻자 “이것은 시금자(검은깨)고 저것은 참깨여. 시금자로는 약이나 죽 끓여 먹는 거고, 참깨는 기름 짤 때 써먹지. 나이를 먹어가니까 그냥 밭이나 가꾸면서 사는 거야. 지금 돈 벌러 댕길 수는 없자녀. 그나저나 우리 집 마당에 봄이 되면 이쁜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국인가 어딘가에서 사진 찍으러 나왔는데 요 근래에는 통 오질 않더라고? 나중에 봄이 되면 꼭 한번 와서 봐봐.”

활기가 넘치는 할머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엔도르핀은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되돌아가는 길. 모깃불 피우며 시골냄새를 풍기던 마을의 정취와 깨를 털며 소소하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 뒤로, 동네 어귀에 모여 생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송승욱·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