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기였던 7세기, 당시 백제의 부흥과 번영을 꿈꾸며 무왕이 천도를 단행하고 경영했던 왕궁, 임금으로서 무왕이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안식처 삼아 머물렀던 역사의 현장이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문화유산인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의 궁궐담장과 후원영역 정비가 마무리됨에 따라 익산시와 문화재청은 지난 7월 11일 그 모습을 일반에 공개했다.

◇ 부흥과 번영을 꿈꾸던 백제 무왕에게 걸어가는 길

왕궁리유적은 용화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의 남측 끝부분 해발 40m 내외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 경비병처럼 서 있는 벚나무 사이로 우뚝 서 있는 5층 석탑과 그간 정비공사로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왕궁터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변함없이 든든하게 왕궁을 지키고 있는 석탑과 깔끔하게 정리돼 안내판까지 설치된 대형 건물지와 사찰 구역, 석탑 뒤로 금당지와 강당지 등이 당시 백제 무왕의 기운을 그대로 전하려는 듯 전열을 정비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은 그간 정비공사로 인해 감춰져 있던 넓은 후원 구역과 대형화장실, 공방 구역이 전부 남김없이 공개됐다.

날씨는 다소 불쾌할 정도로 끈끈하고 무거운 기운이었지만, 백제 무왕에게 한 걸을 더 다가갈 수 있다는 벅찬 기대 탓인지 발걸음은 가뿐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을 중심지로서의 영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는 역사의 한 귀퉁이, 거기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유적들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 왕궁리유적만의 독특한 정원과 백제 조경기술의 정수

“무왕 35년 궁남에 못을 파고 20여리에서 물을 끌어들였으며, 못의 네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속에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모방했다.”

“무왕 39년 춘삼월에 왕이 비빈들과 함께 대지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

“의자왕 15년 2월 태자궁을 매우 화려하게 수리하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건립했다.”

삼국사기는 백제의 정원을 이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정원은 궁성에서 중심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남쪽과 후원으로 조성된 북쪽의 경계지점, 즉 궁성에서 후원 영역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결국 정원은 궁성 내부의 공간 구획 측면에서 무왕이 기거하고 업무를 관장했던 공적인 영역과는 다르게 휴식 공간으로서 후원 영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간의 발굴조사 결과를 보면 이 정원은 크게 중심시설과 주변시설로 구분되는데, 중심시설은 뒤쪽의 집수시설에서 물을 받는 입수부, 괴석과 강자갈돌로 장식돼 물이 흘러들어와 차 있는 중심부, 중심부의 흘러넘친 물을 잠시 가둬 뒀다가 빼내는 출수부로 이뤄져 있다. 반면 주변시설은 정원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수조시설과 ‘ㄱ’자형 암거시설, 정원에서 필요하지 않거나 흘러나온 물을 가둬두기 위한 집수시설로 이뤄져 있다.

또한 정원은 비교적 급경사면에 위치해 뒤편에 설치된 대형 수조시설을 통해 수원에서 물을 끌어들이기 쉽고, 강우가 적을 때에는 최대한 많은 양의 물을 모으고 집중 호우시에는 정원시설의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물을 흘려보내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높낮이를 활용해 정원 중심공간이 조성돼 있는 입지 여건은 소량의 물로 정원을 활기차게 구축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진다. 기울기의 변화가 거의 없는 동서 방향으로 정적인 집수·정수공간을 배치하고 경사면을 활용한 남북방향으로 동적인 유수공간을 배치해 정원 전체가 균형을 가지고 어우러져 있는 양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왕궁리유적 정원 유구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원조경 원리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조경기술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조경기술의 시원 형태일 뿐만 아니라 백제 왕궁 관련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발굴조사 성과로 그 의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백제 왕도에 서다

이날 현장설명회에 함께한 김철모 부시장은 왕궁 후원 한복판에서 ‘백제 왕도에 서다’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하며 당시 백제 무왕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의 발전과 부흥을 기원했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울려 퍼진 한편의 시는, 주위 이들에게 부흥과 번영을 꿈꾸던 백제 무왕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됐다.

이날 익산시는 “28년간의 발굴조사와 정비사업을 통해 백제시대 유일한 왕궁을 일반인에게 선보일 수 있게 돼 감회가 깊다”며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수리체계를 갖춘 백제시대 후원의 모습을 상시 공개할 수 있게 돼 고대 궁성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소중한 유적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번 왕궁리유적의 전면 개방을 통해 방문객들이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수리체계를 갖춘 백제시대 후원과 잘 축조한 석축으로 이뤄진 궁궐 담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왕궁리유적의 체계적인 발굴조사와 정비를 통해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승욱 기자

백제 왕도에 서다

김 철 모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 방을 밤에 뭘 안고 가다’

1400년 전 국경을 초월한 이 사랑

지금도 익산 왕궁 후원에 넘쳐흐르네

우리의 사랑이 어찌 여기에 비길 것이며

우리가 나눈 정이 어찌 여기에 견줄 것인가

사랑의 꽃이 세월 속 왕궁에 잠들다

익산 시대에 서서히 다시 꽃이 피어나니

서동 선화 사랑이 어찌 숭고하지 않을 것이며

세계 문화유산 왕도(王都)가 도도하지 않을 것이며

식품 수도 그 맛에 반하지 않을 것이며

물류의 중심 그 피가 흐르지 않을 것이며

어찌 보석의 도시 그 보물이 빛나지 아니할까

백제 왕도의 새 역사를 쓰는 날

살맛나고

품격이 있는 고장 익산은

오늘에 다시 피어나

자손만대에 영원히 번창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