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
<편집자주>
갈라진 길이 다시 모이듯
부송동의 관문에 조성된 조경시설이 다채롭다
선화로의 출발은 오산면 장신리 들판에서부터였다. 생명의 보고에서 걸어 나와 익산이라는 도시의 중심을 가로질러 결국 무왕로를 만나는 길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여정이다. 들판에 거미줄처럼 엮였던 물길에 닿은 의미를 담아 선화로는 어머니의 길이라는 이미지였다면 무왕로는 백제의 숨결을 품은 아버지의 길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동안의 여정 끝에 드디어 어머니의 길과 아버지의 길 두 길이 만났다. 애초에 만날 것을 운명처럼 알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다시 이어지는 길을 만나니 그 감회가 남다르다. 그냥 평범하게 길이 만나는 것뿐인데, 무왕과 선화라는 길의 이름 탓도 있는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무왕로와 선화로가 만나는 교차로
사실 두 길은 출발 당시에 이미 한번 교차한 적이 있었다. 장신리에서 모현동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원광대에서 김제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무왕로가 고가도로 밑의 선화로와 교차한다. 비록 같은 높이의 길로 이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출발을 함께 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법도 하다. “우리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처럼 그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두 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심을 통과해 다시 만났다. 처음 얼마간은 평행선을 그리듯 이어지다가 중앙체육공원을 지나고부터 선화로가 점점 무왕로를 향해 다가갔다. 마치 도심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들을 감싸 안듯 구부러지더니 결국 무왕로와 만나게 됐다. 팔봉동으로 넘어가기 직전, 드디어 선화와 무왕이 만난 것이다. 처음 만난 장소에서부터 약 8km 만이다.
폭포와 나비와 길
사거리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자동차들이 왕래 중이다. 이 사거리를 통해 도심에서 빠져나가거나 반대로 도심으로 진입하는 차들이다. 익산IC를 통해 고속도로를 타려면 누구나 이 길을 지나야 하므로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는 교차점이다.
바삐 오가는 자동차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이 교차로가 선화로와 무왕로가 만나는 지점이라는 것을 혹시 알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터이다. 만약 이 교차로 주변에 서동과 선화와 관련된 조형물들을 설치해 놓는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익산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서동·선화의 사랑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면 익산시가 확 달라 보일 수도 있을 터이다. ‘사랑’이라는 주제와 서동·선화 스토리텔링을 길에 녹여내는 작업이다.
제2공단을 다라 팔봉동으로 휘어져 나가는 길
상상을 접어두고 현실로 돌아오니 그렇지 않아도 교차로는 익산의 관문답게 잘 꾸며진 조경시설이 지키고 있다. 팔봉동으로 휘어져 나가는 길과 무왕로를 가로질러 신재생자원세터 방향으로 곧게 뻗어나간 선화로가 만들어낸 교통섬은 작은 공원에 가깝게 조성돼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소나무 들이다. 기다랗게 자라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소나무들과 작은 나무들이 식재돼 관리되고 있다. 대로변에 위치해 있는 탓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기보다 지나가면서 바라볼 수 있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렇다 해도 방문자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도 마련돼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작은 인공폭포다.
기암괴석 사이로 물이 뿜어져 내려오는 풍경은 이 교통섬 공원의 가장 핵심 아이템이다. 그런데 자주 이 길을 지나다니고 있지만 폭포가 가동되는 것을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 기회에 시청 관리부서에 문의해보니 하루에 2번 오후 12시에서부터 1시까지, 그리고 3시부터 4시까지 폭포가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고작 2시간 밖에 가동되지 않는 이유는 전기요금 때문이란다. 중앙체육공원에서 만났던 폭포도 그렇고 전기요금 때문이라면 왜 설치했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이참에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니 가동시간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시원하게 폭포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을 예정이다.
'멋쟁이나비'가 강아지 풀 위에 앉아 있다
선화로는 교차로에서 무왕로를 가로질러 뻗어간다. 무왕로는 곧 도심으로 직행하지만 선화로는 한적한 길이다. 야트막한 언덕의 숲들이 양 옆으로 펼쳐진 길이다. 파란 하늘에 대비돼 푸르른 숲의 녹색이 더 선명히 보이는 한 여름의 날씨에 선화로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왕로를 뒤로하고 출발하자마자 어디선가 팔랑거리며 날아든 나비가 신경을 잡아끈다. 이 녀석이 왜 나타났다 싶었더니 곧바로 길 가의 꽃에 가서 앉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이 녀석은 목을 축이느라 정신이 없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꿀을 빨고 있다. 간혹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중심을 잡을 뿐이다. 솔직히 나비인지 나방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멋쟁이나비’ 종류와 가장 비슷했다. 선화로가 무왕로가 만났다가 헤어지는 지점에서 반갑게 만난 나비와 헤어져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이 만든 혜택의 공간
인도는 군데군데 풀이 돋아나 있다. 걸어서 접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증거다. 도심을 바라보고 일정 간격을 떨어져 있다 보니 대부분 바퀴가 달린 것들을 타고 선화로를 통행하는 것이다. 길옆에는 높은 철탑이 송전선들을 달고 늠름하게 서있다. 무왕로를 건너기 전까지와 달리 완연한 시골 풍경이다.
실제로 익산문화체육센터에 접근하기 전 큰 길에서 벗어나 잠시 부송로16길로 접어들었는데 우거진 숲에서 고라니를 만났다. 이 녀석은 인적이 느껴지자 길에서 나와 이쪽을 한번 바라보고는 쏜 살같이 반대편 숲으로 사라졌다. 너무 순식간의 일이어서 다시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 다가갔으나 벌써 어디론가 멀리 사라진 뒤다. 가만히 보니 큰 건물이 들어선 곳 이외에 이 지역에는 아직 상당히 숲을 보전하고 있었다. 숲을 가르고 놓은 길은 점점 더 쉽게 숲을 갉아먹는 통로가 되는 것 같다.
익산문화체육센터 내에 있는 친환경식물원
식물원 내부 모습
부송로16길을 벗어나니 전면에 익산문화체육센터가 나타났다. 흔히 소각장이라 불리고 있는 신재생자원센터와 함께 세워진 시설로 쓰레기를 태워서 얻는 열이 주요 에너지로 쓰이고 있다. 소각장 건립 당시에는 상당히 시끄러운 말들이 많이 오갔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젠 부송동을 비롯한 익산 시민들 모두가 애용하는 시설이 됐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여서인지 외부에는 거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실내에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급격히 찡그려지는 것만 봐도 얼마나 열기가 심한지 대번에 느낄 수 있다. 운동 후 샤워를 마친 개운한 느낌이 단지 몇 걸음 만에 사라지고 있었다. 애초에 길에서 걷던 사람마저 덩달아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식물원 내부 온도가 섭씨 43.7도나 된다
스케이트보드나 인라인 등을 즐길 수 있는 시설
문화체육센터에는 외부에도 다양한 시설들이 있어 심심치 않다. 스케이트보드나 인라인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고 작은 생태공원도 조성돼있다. 그 중에서 특히 친환경식물원은 소각장의 열을 사용해 열대지방 식물과 같은 각종 식물들을 키우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소다. 선화로를 따라온 김에 다시 들려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하긴 이렇게 더운 날씨에 누가 열대지방 식물들을 관람하러 오겠나 싶었다. 열대지방 식물관에 들어가 보니 밖이나 별 차이 없는 온도였다. 무심고 온도계를 보니 실내온도가 43℃ 정도였고 실외온도는 무려 38℃로 나타나 있었다.
신비의 소각장 탐험
순환형 매립지를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소각장 내부는 산책로로 손색이 없다
문화체육센터와 소각장은 한 울타리 안에 연결돼 있다. 안쪽에서 데크로 제작된 계단을 따라 소각장 부지로 들어갈 수 있다. 소각장은 무엇보다 커다란 굴뚝이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소각재를 순환매립하는 시설인 돔 형태의 시설이 더욱 압도적이다. 가까이 가보니 그 규모도 어마어마했지만 시설의 모양이 더욱 신기했다. 마치 풍선을 땅에 잡아놓은 듯 굻은 와이어들이 얼기설기 부드러운 돔을 잡아놓고 있는 형태였다.
커다란 트럭이 통행할 것 같은 입구는 셔터가 내려가 있어 안을 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소각장 내부를 보니 체육시설도 있고 여러 나무들 사이로 산책할 수 있는 코스로 딱 이었다. 소각장이라는 이유로 생각하기 쉬운 냄새도 없었고 위험한 시설들도 없었다. 그래도 대형 트럭들이 오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완창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