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
<편집자주>

굴뚝이 가리킨 파란하늘

신재생자원센터의 굴뚝이 파란 하늘로 뻗어 있다

신재생자원센터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데는 걸리는 시간은 십여 분. 소각에 필요한 건물과 시설 이외에는 체육시설을 비롯해 공원처럼 조성돼 있는 탓에 소각장이라는 시설이 주는 삭막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태우는 비슷한 냄새도 전혀 맡을 수 없는 쾌적한 산책로나 다름없었다.  
신재생자원센터는 하루에 200톤가량의 쓰레기를 태울 수 있는 시설로 알려져 있다. 하루 동안 익산시에서 배출된 소각쓰레기 약 90~100톤을 소각하고 있으며 나머지 약 60톤은 과거 쓰레기대란 시절 매립지가 없어 임시로 야적된 쓰레기를 태운다. 소각장에서 선화로 건너편을 바라보면 야구장 옆에 야적된 압축쓰레기가 바로 그것이다. 소각장이 2009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어마어마한 쓰레기더미가 도시 바로 옆에 쌓여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다행히 부송동 야구장 옆 야적쓰레기는 내년 전국체전이 실시되기 전에 전량 소각될 예정이다. 그러나 요즘 들려오는 얘기로는 더 이상 압축쓰레기가 남지 않게 될 경우 소각장 운영이 차질을 빚는다는 이유로 익산시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경우의 수 중 타 지역 쓰레기를 반입해 소각한다는 방안도 있는데, 그런 눈앞의 경제논리만 보는 좁은 시각이야말로 소각돼야 마땅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매일 익산시민들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자그마치 100톤이나 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렇기에 소각장은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바삐 오가는 광경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상은 고요한 모습이다. 아마도 쓰레기를 운송하는 시간대가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커다란 건물 안에 설치된 소각로에서는 시뻘건 화염이 쓰레기를 태우고 있을 것이었지만 그 역시 밖에서는 그 열기와 소음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시설이 소각장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건 커다란 굴뚝뿐이다. 그마저도 가끔 더운 열기가 배출되며 발생하는 수증기 이외에는 뭔가를 태우면서 나왔을법한 연기는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새파란 하늘을 가리키며 우뚝 서있는 소각장 굴뚝을 올려다보니 줄도 그어지지 않은 하늘 길을 따라 비행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초대형 실내 놀이터에 놀라며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한적한 길

소각장을 뒤로 하고 다시 선화로에 나오니 달궈진 아스팔트가 맞아준다. 가로수라도 그늘을 드리워주면 좋으련만, 비교적 최근에 새로 생긴 길이기에 아직 가로수가 충분히 가지를 뻗어 내놓고 있지 못했다. 다행히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은 도로라 한적한 분위기여서 더위를 견딜 만했다.

수려한 모습의 전북과학교육원

소각장에서 선화로를 건너면 대형 은빛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 5월 이전 개원한 전라북도 과학교육원인데 둥근 반지 모양의 주 건물 등 척 봐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다. 소각장이 굴뚝을 통해 건물의 용도를 상징하고 있다면 과학교육원은 건물의 빛깔부터 그렇고 곡선을 주로 쓴 외관 디자인에서부터 첨단 과학의 향기가 묻어나는 느낌이다.

익산시 부송동 선화로 변에 문을 열고 운영에 들어간 지 2달쯤 된 과학교육원은 평일임에도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과 동반한 가족단위였으며 이미 방문을 마친 가족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문대로 꽤나 훌륭한 시설이라는 것을 들어가 보기도 전에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건물은 크게 둥근 모습의 전시체험관과 직선형의 교육연수관이 조화롭게 위치해 있다. 전시체험관의 안마당에서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어 상쾌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건물과 인접한 잔디밭에는 녹색 빛깔의 커다란 구(球)가 설치돼 있어 방문객들의 눈길을 이끌고 있다. 녹색 구는 그 크기가 3층 높이의 전시체험관 건물보다 높을 정도였다. 마치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꼭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잠시 둘러본 전시체험관은 최고의 놀이터라고 부를만했다. 일단 너무나 쾌적한 온도는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게 해주고 있었고 온갖 신기한 과학체험시설들이 펼쳐져 있었다. 꼬마부터 어른까지 하나하나 체험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다채로웠다. 꼭 체험이 목적이 아니어도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시설로 여겨졌다.
이 모든 체험이 무료로 운영되는 것도 익산시민들에게는 꽤 좋은 혜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관람의 경우 평일에는 예약 없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주말에는 예약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것저것 저절로 나오는 감탄을 연발하며 둘러보다 다시 꼭 방문할 것을 다짐하며 돌아 나왔다. 갈 길이 아직 남았으니까.

선화로가 끝나는 곳에서

선화로의 막바지에서 만난 표지판들

과학교육원을 나서면 선화로는 더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는 길이다. 양 옆으로 논밭을 가로지르며 곧게 나아가던 길이 이내 사선으로 이어진 옛 소로에 의해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팔봉초등학교로부터 임상동으로 연결된 무왕로31길과 만나는 교차로가 선화로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 곳이다. 이곳이 선화공주가 가마에서 내려야 되는 곳이다.

잘 가꿔진 텃밭에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교차로는 곧은길과 굽은 길이 만나 기우뚱한 모습이다. 우측으로 돌아가면 다시 팔봉동 방면 무왕로로 나아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나아가가면 하나로 방면이다. 교차로 모퉁이에는 어린이집이 자리해 있는데 한적한 시골길에 자연을 품은 어린이집이 들어서 있어 인상 깊었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가꾼 것으로 보이는 텃밭에는 옥수수며 대파, 고구마 등 각종 채소들이 줄맞춰서 단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는데 텃밭 가꾸는 솜씨만큼 아이들도 잘 돌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산면 장신리에서 시작했던 선화로의 여정은 총 거리 약 10km만에 마무리됐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동북쪽 들판을 바라보면 미륵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미륵산의 형태와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려한 모습이다. 인삼밭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미륵산은 중턱까지는 완만한 것 같으면서도 봉우리 근처에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다. 동쪽보다 서쪽이 더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데 그 쪽 봉우리 근처에 위치한 송신소가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선화로가 끝나는 지점

선화로는 끝났지만 길이 끊긴 것은 아니다. 이름만 다를 뿐 길은 또 다른 곳으로 연결되기 나름이다. 선화로의 끝에서 만난 무왕로31길도 마찬가지다. 이 인근에 원광중·고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배우기 좋고 살기 좋은 곳

확 트인 들판 너머에 미륵산이 자리해 있다

원광중학교 전경

미륵산을 바라보며 200여미터 정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원광중·고교가 무왕로31길을 마주하고 자리해 있다. 원광중·고교는 과거 동산동 E마트 자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1994년 현재의 부송동 자리에 교사를 신축해 이전했다. 당시 시내 권역에서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으나 20여년이 흐른 지금에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차분하게 안정된 환경과 주변 여건들이 최상의 학습 환경이 돼주고 있으며 그 효과로 진학을 희망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게 현재의 모습이다.

원광고등학교 앞 문방구

원광중·고교는 유도의 강호로 유명하다. 전교생이 유도를 배우는 것은 물론 선수들도 국가대표를 배출하는 명문이다. 이날도 중학교 교문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메달 획득 소식이 가득했다. 아마도 원광중 유도선수들이 금번 청풍기 유도대회를 휩쓸었던 모양이다.
방학 기간 중인 탓인지 학생들의 모습은 두 학교 모두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용한 학교는 제법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법도 하련만 그런 느낌보다 설레는 느낌이 더 컸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학창시절을 떠올렸던 탓이리라. 꼭 집어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학창시절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