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면서 보다 탄탄하고 유용한 도로를 만들어왔다. 새 도로와 확장된 도로는 또 도시의 형태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그 탄탄대로 위를 자동차에 의탁해 보다 빠르게 달리며 갈수록 넘쳐나는 자동차들을 스치며 각종 신호들을 만나게 된다. 달릴 때나 설 때나 이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도로 위에서, 소통신문은 길을 물었다.

우리가 두 발로 손수 걸을 수 있는 길들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랄 것이 없이 비켜서야 할 만큼 좁은, 그래서 눈인사를 절로 주고받게 되는 길은 어디로 밀려났는가. 늦은 밤 돌뿌리나 괴한이 걱정돼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이는 골목은 어디에서 잊혀져가는가. 스마트폰 없이도 바람과 풀벌레 소리,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온갖 삶의 냄새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작은 길에서 큰 길로 빠르게 빠져나갔지만, 앙금이 된 기억은 어느 길 위에도 남아 있기 마련이리라. 잊어선 안 될 기억들을 만난다면 오늘 소통신문의 막연한 외출이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리라. 길은 길 나름의 기억을 지니고 현재와 내일로 연결되며, 길은 곧 사람이니 길과 사람을 길 위에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힐링이 아닐까.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는 그런 질문들의 출발점이다.

<편집자주>

소통신문 기획특집 ‘익산의 길을 따라 소통하다’ 연재를 통해 지난 5월 오산평야를 가로지르는 물줄기인 탑천에서 시작한 선화로. 약 10km의 거리를 4개월, 총 15회에 걸친 여정을 통해 길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그 길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생활상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길은 무엇이든 통하게 하는 통로로서 때로는 자연스럽게 생성되기도 하고 계획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철로를 넘어가기 위해 고가도로가 놓이거나 육교나 지하도가 생겼으며 통행량이 많아질수록 길은 넓어지고 더 빨라졌다. 사람들은 길을 향해 대문이나 입구를 내고 편리하게 길에 올라서거나 내려서며 살아갔다. 때로는 계획된 길이 아니더라도 너나없이 가로질러 가는 통해 잔디밭에 오솔길이 생기고 울타리를 돌아서가기 싫은 누군가가 좁은 구멍을 내어 한두 번 다니다보니 아예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길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뻗어나가고 때로는 잘려나가며 도시를 성장시키고 마을을 이어주었으며, 결국엔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있었다.

1. 물줄기에서 시작한 선화로

선화로 첫 출발지인 오산평야. 탑천의 물줄기가 봄을 만끽하며 들판을 적시고 있었다. 농가는 씨를 뿌리는 시기를 맞아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따뜻한 봄볕은 물길에 부딪혀 반짝였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어느 농가 마당에 핀 라일락 꽃향기를 전해주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선화로는 모현동 도심을 향해 달려갔다. 아파트 숲은 농토가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다. 선화로는 도심으로 다가갈수록 차량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지나가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그리고 고가도로인 무왕로와 교차하며 도심으로 들어섰다.

2. 모현동을 통과하며

모현동은 배산택지개발지구의 신시가지와 함께 오랜 전통마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새로운 시가지가 들어섬으로써 자연스럽게 유입되는 인구가 많아졌고 이에 생동감이 넘치는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문화시설을 갖춘 커다란 상가도 속속 들어서면서 더욱더 편리한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모현공원은 서부권 주민들의 아늑한 쉼터의 역할을 해주고 있으며 도서관과 체육관 시설도 갖추고 있어 주민들의 생활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배산택지개발지구를 지난 선화로는 과거 모현동의 중심지를 거쳐 철도를 만난다. 서부권을 나누는 경계가 되고 있는 호남선 철로는 가까운 익산역을 중심으로 모현동이 주거지역으로 발달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화로가 통과하는 모현대교는 그런 철로를 익산시 중심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3. 익산의 중심을 통과하며

모현대교를 건넌 선화로는 남중동에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오래된 주택들이 잔뜩 늘어나는 분위기다. 익산시의 발전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과거에 모여 살았던 중심택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따라 초중고 학교들이 여럿 들어서 있으며 전북대 익산캠퍼스도 선화로 가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로 뚫린 선화로 변에서 바라보는 남중동은 낡은 모습이면서도 그 생명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모습이다. 선화로에서 접할 수 있는 샛길로 조금만 들어서면 과거 골목길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4. 모였다가 흩어지는 길

추억이 듬뿍 담긴 골목을 품은 남중동 선화로를 지나면 동부시장 오거리를 만난다. 한 때 가장 번화했던 길의 모습을 조금 남겨두고 있는 오거리에서는 ‘높으메’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었다. 고봉리라는 지명이 나온 것도 그래서이며 이름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봉우리 형태의 지형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옛 길을 상상해보면 능선을 따라 걷다가 높은 봉우리에서 사방팔방으로 갈라지며 나아가는 길이었을 터이다.

옛마을 품고 있는 고봉리에서는 마동에 이르기까지 산등성이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산자락을 따라 발달했던 옛 마을의 자취를 아직 간직하고 있었으며 공단이 들어선 직후에는 셋방이 없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이제는 노인들만 남아 지키고 있었다.

5. 빛나는 보석 같은 길

도심을 뚫고 달려온 선화로 양변은 어느새 공단이다. 한 때 익산의 산업을 선두에서 이끌던 보석공단은 현재 그 기운을 잠시 잃은 듯 했지만 내부에서는 새로운 잠재능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딱딱하고 삭막한 공단 길이라도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듯 오아시스같은 휴식처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아름드리나무가 된 공단 길가의 가로수는 꽃이 피는 계절에 맞춰 아름다운 길을 연출하고 있어 새롭게 난 어느 길보다도 멋진 가로수길이 되고 있었다.

6. 걷는 게 즐거운 길

공단을 지나자마자 선화로는 숨통이 트인다. 중앙체육공원은 걷기에 최적화된 공원으로, 산책로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다양한 풍광이 걷는 즐거움을 준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공원은 익산문화원, 익산예술의전당, 청소년수련관과 연결돼 있어 다양한 문화도 즐길 수 있어서 주변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선화로는 다시 제2공단을 지척에 두고 나아가는데 그 직전에 만나는 폴리텍대학교도 좋은 산책코스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늑한 조경과 잔디구장은 물론 캠퍼스의 낭만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7. 메타세쿼이아 길

계속해서 뻗어나간 선화로는 2공단을 만난다. 공단을 큰 키로 막아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삭막한 느낌보다 상쾌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바로 길 건너 인접한 주택가에 사는 주민들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덕분에 공단과 분리된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더구나 노후도로 정비가 진행되고 있어 곧 깔끔한 도로로 다시 태어나리라 생각된다. 공단 건너편 주택가는 아파트와 주택이 공존하는 곳으로, 가장 높은 지대인 선화로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며 낮아지는 비탈에 들어서 있지만 편리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8. 무왕로와 만난 후

선화로는 출발부터 예견됐던 것처럼 무왕로와 만났다. 익산시 도심의 관문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이 교차로를 지나고 선화로는 이내 북쪽으로 더 뻗어나간다. 무왕로를 건너는 것으로 바로 자연 속이다. 고라니가 눈에 띄는 숲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선화로가 놓이고 나서 조금씩 무엇인가 변화가 촉진되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선화로를 따라 익산문화체육센터와 신재생자원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최근 전라북도과학교육원이 개원하며 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9. 미륵산을 바라보며

과학교육원을 지난 선화로는 이내 삼거리를 만나며 길이 끊긴다. 오산면 탑천에서 시작한 10km의 여정이 여기서 마무리됐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길 앞으로는 미륵산이 훤히 바라다 보인다. 만약 길이 계속 나아간다면 금방 미륵산에 닿을 듯하다. 언젠가 선화로가 더 이어져 미륵산까지 닿을 날이 멀지 않았을 법도 하다. 그렇게 길은 늘어나기도 하고 변화하면서 끊임없이 만나고 헤이지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터이다. 길이 그렇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인지, 사람이 길을 놓아 사용하는 것이 헛갈릴 정도로 말이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