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전을 읽되 말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진리를 만날 수 있어요” 
"고등학교 다닐적에 책을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채 막힘없이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 때 강의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합니다. 저는 어느날 하교 후에 교문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렸습니다. 교무실로 가지 않은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한참을 기약 없이 기다리다 선생님을 만난 저는 조심스럽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무어냐고 묻기에 저는 선생님처럼 말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어요" "말을 잘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라. 잘 분석하고 깊이 생각해라" 학교법인 원창학원 제12대 이사장 월산 김형두(일상, 66세)는 그렇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50년 전 학창시절의 한 장면을 회고했다. "제가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분이셨지요. 이용복 선생님,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꼭 뵙고 싶은 분인데 외부에 눈을 돌릴 틈이 없이 성직자의 길을 걸어오고 보니 벌써 5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김형두 이사장이 고등학교 은사 고석정(79세)을 만난 자리였다. 김 이사장 역시 50년 만에 재회한 선생님에게 큰 절로 예를 갖추고 지난 세월의 간극을 좁히는 덕담을 나누던 중에, 김형두의 일생일대 전환점이 된 그 시절 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화두가 된 것이다. 김 이사장은 1969년 원불교 교무로 출가를 했다. 서울 원남교당, 분당교당 주임교무를 거쳐 원불교 교정원 교화연구소장, 교화부원장, 부산교구장 등 원불교 주요보직을 역임했고, 원불교 최고의결기구인 수위단회에 피선되기도 했다. 그에게 진리가 무어냐고 묻는 것은, 내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은 이에게 그 맛이나 식감을 물어보는 것과 같으리라. "진리의 길을 가장 정확하게 안내하는 것은 경전일 것입니다. 성경이나 불경, 유가의 경서, 원불교의 교전을 읽어 보세요. 읽되, 말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본질을 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대할 때 말을 보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경전에 기록된 여러가지 사건이나 기적들이 기실 본질을 비추기 위해 차용되었지만, 사건에 얽매인 채 겉도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말로 들렸다. 동시에, 그는 인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신중한 성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직접 진리를 말하는 걸 주저하는 건 듣는 사람의 폭이나 깊이에 따라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우려하는데서 비롯한 것일까. 사제지간의 재회자리에 동석한 나는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김형두 이사장이 앞으로도 삶의 지표로 삼으려 한다는 "말을 잘 들어라"에 갈수록 끌렸다.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자리에는 말을 하는 마음이 아니라 말들 듣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성현이나 영매에 의해 기록된 경전은 우매한 삶을 일깨우기 위해 '말을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들은 말이' 아닐까. 마음을 과학적으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자연상태의 직관으로 보고 들어 실천하는 것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것일까. 어쩌면 김형두는 원불교에 입문하기 전에 이용복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은 순간 윤회의 고리를 끊어버릴 칼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원광중·고등학교와 원광여중·고등학교, 원정예고 등 5개 학교를 운영하는 원창학원의 이사장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건 건학정신인 지성교육과 인성교육을 균형있게 병행해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급격한 과학 발전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에 못지 않는 마음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원불교가 김형두를 원창학원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도 그가 건학정신을 잘 계승할 것이라고 신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자서전인 나의 꿈 나의 삶 '교화'를 비롯한 원불교 이해의 첫걸음, 만화로 보는 소태산 등의 교화교재와 마음공부이야기 등의 설교집 20여 편의 저작들이 그것을 방증한다. 부안에서 군산상고에 진학해 하숙집을 알아보다가 만난 한 하숙집 주인의 안내로 첫발을 디딘 개복동 원불교 교당은 적산가옥이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 편안함에 이끌려 입문한 뒤로 내처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오늘에 이르른 토대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그는 편안하고자 하지만 편안하지 못한 일상을 오롯이 수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