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높은 곳에 올려 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근성을 버려야 도시가 성장할 수 있어” 
“미륵산에 올라가 익산시가지를 내려다 보면 이렇게 넓은 곳에서 왜 저렇게 좁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문용 하림 대표이사는 익산에서 발원한 향토기업을 경영하면서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잠재역량이 큰 익산시가 터무니없이 위축되고 고립되어 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급격하게 변할 내일을 대비하지 않는 자치단체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다. “이제 KTX가 개통되면 위기와 기회를 함의하는 두가지 현상이 생길 겁니다. 멀게는 서울, 가깝게는 세종시, 중간지점에 있는 대전 같은 1시간 생활권내 광역 또는 대도시 상권에 지역 소비자들을 뺏기는 것이 그 하나이고, 70%의 부를 점유한 서울지역 60대 노인들의 관심지역으로 부상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서울과 익산간 1시간 생활권화는 중소 소비도시 익산이 소비문화가 집약된 서울 등 대도시의 흡인력을 피하기 어려운 위기에 봉착하겠지만, 반면에 삶의 여유와 안전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부자 노년층들을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몰라 붙박여있는 서울지역 노인들에게 고도문화가 살아 숨쉬고 농경문화와 녹지공간이 공존하는 익산이 서울과 1시간 거리에 놓인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노인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녀들이 왕래하는 시간이 짧은 목가적인 전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문용은 그 해법으로, 지자체가 노인들이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주환경 조성에 매진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의료시설을 비롯한 교통, 스포츠, 레저, 휴양, 문화 시설들을 맞춤형으로 조성하되, 그 질과 품격을 대도시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같은 노인들 입에서 익산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한다. 그는 동시에 도시 이미지를 훼손하는 익산의 저급한 문화를 직시한다. “여기는 사람을 높은 곳에 올려 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곳이라는 진단이 오피니언 리더들의 이구동성입니다.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고방식은 농경민족의 근성에서 오는 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때에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똑같이 먹는데 서로 다를 게 뭐냐는 평등주의가 남이 지닌 우월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앞서 가는 사람을 존중하고 지덕과 혜안을 지닌 사람을 믿고 따르며, 선의의 경쟁이 선순환구조로 작동하는 지역공동체를 개화시키려면 유목민족의 문화를 이식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뒤따랐다. “단, 농경문화의 특질인 인본주의와 나눔 정신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그는 그 혁신을 주도해 나갈 마음가짐으로 이황과 기대승이 벌인 성리학(이기론,理氣論) 논쟁 결과를 들었다. 형이상학적인 이(理, 불쌍히 여기는 마음·부끄러워하는 마음·시비를 가리는 마음·사양하는 마음, 四端)와 형이하학적인 기(氣, 기쁨·성냄·슬픔·두려움·나쁨·욕심, 七情)가 서로 같지 않다고 보는 성리학의 거두 이황은, 이(理)와 기(氣)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후학 기대승과 8년간의 긴 논쟁을 벌였고, 그 끝에 이황은 “이(理)가 움직일 때 기(氣)가 따라서 생기는 것이 사단(四端)며, 기(氣)가 움직일 때 이(理)가 따라서 드러나는 것이 칠정(七情)이다”라고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수정했다. 456년 전 58세의 성균관 대사성과 32세로 이제 갓 과거에 급제한 후학간의 필담을 익산시민들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문용의 눈빛이 사뭇 그윽해졌다. 무려 13년 동안 120여통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 사이 8년 동안 벌인 논쟁은 이황이 주리론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늙어도 식지 않는 이황의 열정과 인재를 보물로 여기며 자신 또는 조선 주류학파의 미진한 부분을 인정하고 결국 수백년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그 드넓은 정신을 이문용은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익산이 지속가능성의 동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근본이 바로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벽에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새벽에 빨간불 지키는 운전자가 없어요. 신호대기 선에 서있기도 불안해 자꾸만 백밀러를 보게 됩니다. 총알처럼 달리던 자동차가 금방이라도 뒤에서 들이받을 것만 같아서요” 그가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기초질서 의식 결여는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면서 도시성장을 저해하는 최대의 장애다. 하림이 이윤을 지역에 환원하는 일들 가운데 극히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이문용은 아이들에게 읽고 싶어하는 고전을 선물하고 잘 보호되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접하게 해주는 데에 특별히 공을 들인다. “잘 가꾸어진 인성이야 말로 기초질서를 바로세우는 힘이고, 도야 된 인성을 갖춘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진입하는 것을 수많은 사례가 방증하고 있습니다.” 그가 운용하는 하림은 대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긴 호흡으로 지역과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싹트는 만남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서 그의 일상이 중용의 백인가도(白刃可蹈)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스쳤다. 시퍼렇다 못해 허연 칼날 위를 걷는 용기와 그에 따른 고독이, 그가 드러내지 않기에 더 잘 보이는 듯 했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