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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월하시조문학상 수상자 신길수 시인

▲ 바람과 그 길을 가는 바람의 시인

섬세한 감성으로 창조한 순수 서정세계.. 격조있는 정형의 미학을 잘 구현

"제가 가는 시(詩)의 길이란, 바람의 길과 같습니다. 못 가는 곳이 없지요. 그것은 인생의 길과도 같아 끝이 없습니다. 이생의 끝 지점에서 바람에게 가는 길 물어보면, 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답할 것입니다" 제15회 월하시조문학상을 수상한 신길수(76세, 익산시 서동로 30길 마동 그린피아빌라) 시인은 자신과 시조의 관계를 그렇게 동일시 한다.
끝없이 윤전하는 삶, 그러나 정처 없는 길 위에서 그는 스스로 바람이 되어 속박에서 벗어나지만 동시에 절대의 고독을 끌어안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노래를 자신의 스물다섯번째 시조집 '바람이야기'에 풀어놓았다. 신길수의 작품집들 가운데 월하시조문학상이 채택한 작품도 '바람이야기'이니, 그의 마음에 투영되는 바람과 그가 바람이 되어 자기를 관조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조금 느린 호흡으로 들어볼 가치를 지녔을 법 하다.

그의 바람은 꽃에서 너울거리는 빛의 갈기이며, 가물가물한 기억 그 무심한 세월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밤낮없이 기원하고 울며 산하를 연주하는 바람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자유롭던 시절을 희억한다. 그는 또 산정에 올라, 인연의 그물 그 거대한 윤회의 질서를 천진난만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제와 오늘을 관류하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자유로우나 뜻밖에도 업보를 짊어진 채 고달프고 덧없는 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스산한 바람에 젖으면 가슴앓이가 되는가 하면, 허무한 바람에 닳는 기억은 지극한 사랑을 쏟다가 떠나간 어머니를 꿈에서도 보이지 않게 한다. 빈 자리에 바람이 불면 못다한 사랑의 미련이 울컥거리고, 그 바람은 또 나비의 날개처럼 끝내는 너울대다 서러운 맘을 얼린다.

무한하면서 유한한 삶, 그 낯선 세월을 두려움없이 조우하기 위해 신길수는 무엇에든 몰입한다. 몰입하기 위해서 무엇을 한다거나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몰입벽은 타고난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몰입은 무위(無爲)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는 친구들이나 주변에서 25시 사나이라고 불렀어요. 어느날 한국체육대 교수 양용길이가 저더러, '형님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해요. 헨드볼에요. 주의하세요' 그럴 정도로 저는 뭘 하면 완전히 몰입하는 성격입니다"

그는 잠시 이리상고에서 학생들에게 드리블부터 핸드볼을 가르쳐서 전국을 재패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그들이 오늘날 대한 핸드볼 협회를 이끌고 있어요" 뭔가를 한번 하면 끝장을 보는 그였기에 이학박사이면서 이나라 체육사에 깊고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늦게 시작한 시조와 사진작가로서도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집중력은 남들과 다른 관찰력의 원천이었다. "몇 년 전에는 군산의 사진작가들과 함께 카메라를 매고 중국 스촨성을 다녀 온 적이 있는데, 저는 돌아와서 거기서 촬영한 다랑논 사진들 전시를 했지요. 그런데 중국에 같이 갔던 작가들이 이걸 어디서 찍었냐고 묻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 다랑논을 기억도 못하는 겁니다"

그의 몰입은 때로 실제 일어날 일을 무의식 속에서 재현하기도 한다. "전국대회 시합 전날 꿈에 다음날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꿈에 나타나는 거예요. 한두 번이 아니예요. 덕분에 미리 전술을 짤 수 있었고 백전백승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그걸 선몽이라고 말했지만, 남다른 집중력이 오류없는 장면을 예측했던 것은 아닐까.

신길수는 사진을 찍을 때도 무아지경이 된다. 어떤 목적이나 다른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피사체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29년 동안 해 온 사진작업, 그렇게 얻어진 작품들은 피사체의 본질적 아름다움과 본질적 의미들을 담고 있다. 몰입은 어쩌면 그가 우화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의 남다른 이력은 거듭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었던 것이기에.

유도 6단이기도 했던 그는 역동적인 체육인으로서 지극히 정적인 시조작가와 사진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것은 경계를 초월한 것이지만, 과도한 것을 덜고 부족한 것을 더하여 균형을 잡아가는, 혹은 완전한 인간에 가까워지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 정 반대의 사진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제 시를 마음에 품고 피사체에서 그 의미를 포착해 내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참으로 어렵겠지만, 작업이 끝나면 상당한 메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길수에게 아내 이춘자(73)는 자식 성장을 이끌고 세월과 싸우면서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용사 같다. 그 밑거름으로 아들 네 형제가 모두 박사학위를 취득해 각자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신길수는 "아내에게 한번도 사랑한다고 표현해 본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탐구하고 습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러가지를 한다는 것은 제대로 한가지도 못했다는 것과 같다"며 자신을 낮추는 말에서, 그 여전한 용맹정진을 확인한다. 찰라에 의탁한 삶이지만 길 눈 밝은 바람이 되면, 시간과 경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의 잠재의식을 깨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