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의 문화 독립군, 냉대와 질시를 뚫고 끊겼던 문화 복원·전승

“바늘같은 허리에다 태산같은 짐을 지고 이 고개 어이 넘을거나” 조현숙(69세, 함라문화예술공동체)회장은 대화의 맥을 이을 요량인지 도중에 불쑥 ‘등짐 노래'를 불렀다. ‘익산목발 노래’ 가운데 하나다. “가사 속에 다 있어요. 인생이, 얼마 전에사 그걸 깨달았어요”라는 말 끝에 그는 그렇게 천마디 말을 노래 한 소절로 대신하려 했다.

40년의 타관살이 중에 3남매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았던 15년을 제외하곤 곡절 많은 인생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생이별을 한 뒤 온 가족이 꼬박 사흘을 굶었으나 살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한강 아래로 투신했는데 아카시아 가시덩굴에 걸려 질긴 목숨을 다시 이었을 때, 병상 옆에서 하염없이 울던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부러진 갈비뼈들을 부둥켜 안고 보험회사에 입사해 교육비 몇 천원으로 가족들이 연명하던 때의 기억을, 한꺼번에 되살려내는 마력이 그 한 소절의 가사 안에 있는 것이다.

수구초심일까. 삶의 격랑을 헤쳐가던 세월 고비고비마다 20년 동안 자기를 키워 준 고향은 자식들과 함께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큰 의미였다. 늙으면 번 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의지로 살아낸 25년, 그는 보험회사 용산 영업소에서 한 번도 어렵다는 판매왕을 다섯 차례나 차지할 만큼 성공했고 자식들은 모두 무탈하게 성장하여 최고학부를 마치고 독립했다.

그는 홀로 고향에 계신 친정 어머니 문제를 놓고 형제들과 논의 하던 중, 마침 카이스트 교수로 임용된 아들을 따라 반평생 보금자리였던 서울 흑석동을 떠나 낙향했다. 그 직전에 자식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려고 할 때 아들이 반대했다. “어머니 숙원대로 고향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세요” 아들의 그 말이 제2의 고행길로 그를 안내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서울살이의 망중한을 때우기 위해 동사무소 문화센터에서 장고를 배웠던 것인데, 고향에 내려 온 직후 익산풍물패와 공연하던 중 전북무형문화재 제1호였던 익산목발노래 보유자가 작고한 뒤 무형문화재 지정이 취소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이후 처분한 재산을 문화재 전승에 쏟아붓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건이 생겼을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열정을 발견했고, 무형문화재 복원에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었지요” 그의 각고의 노력과 진정성은 문화재 심의위원들의 마음에 닿았고, 취소됐던 전북무형문화재 제1호 익산목발노래는 2012년 4월 27일 익산목발노래보존회에 재지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문화재를 보존하는 책임을 걸머지게 된 것이다. ‘목발노래’는 지게 등짐 일의 진행을 도와 능률을 높이거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부르던 노동요다. 지겟다리로 지게를 두드리며 가락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군무를 더해 흥을 돋우는 공동체 문화의 유산이다. 최소한 30명에서 충분하게는 50명 정도가 협력하고 협심해야 흥취를 돋우는 군무와 가락을 이루어낼 수 있다. 목발노래는 이렇게 특성상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는 순전히 사비만으로 목발노래를 복원·재생했고 5년 동안 유지해 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는 고향이 고향다워지는데 지산을 소진했고, 거기에 신명을 다 바쳤으니 여한도 없다. 다만, 안팎의 이유없는 냉대와 질시는 견디기 힘들었다. 회원들 가운데 문화재 전승활동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지꾸 나타나고, 자치단체는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며, 익산지역 문화관계자들은 그를 이방인 취급하며 적극적으로 모멸했다. 염수같은 자조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상처를 파고들었다.

그와 목발노래보존회는 그런 막막한 환경에 저항하는 독립군이 되었다. “함라에는 목발노래 말고도 ‘기싸움’이나 ‘꽃나부 풍장’ ‘전통놀이’ 같은 문화유산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진주들을 실에 꿸 수가 없어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주면 장차 지역이 빛나고 경제도 활성화 될 텐데, 문화재 보유자가 돌아가신 뒤로도 5년 동안 고군분투해 왔지만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무형문화재 전수관이 없습니다. 다른지역과 비교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는 체험관 겸 숙박시설,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을 겸하는 다목적 전수관을 꿈꾸고 있다. 지자체에서 부지가 없다고 전수관을 안 지어줄까봐 목발노래가 문화재로 재지정된 직후에 서울 아파트를 저당 잡혀 빌린 돈으로 적지로 보이는 땅 530평도 사놨다. 당시에 이한수 시장이 3년 이내에 전수관을 건립한다고 약속했는데, 지금까지 착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박경철 시장은 면담 신청을 한 지 수개월이 지났으나 감감무소식이다.

“전수관은 차세대 교육의 산실이 될 수도 있고, 초고령화에 따른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역문화의 산실이 될 것입니다. 지자체와 지역 문화관계자들의 올바른 가치관으로, 지역주민들의 문화인식 수준을 높이고 지역 공동체와 문화가 활기를 띨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