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장고의 명인, 익산 대표 농악 일으켜 지속가능성 불어넣어 
"내 몸 속에 뜻이 있었던 것 같어. 좋아하는 것을 그냥 타고난 거여. 어렸을 적에는 깊은 밤인디 옆 동네에서 굿소리가 들리곤 했지. 그런 때는 잠을 못이뤄. 달려가서 봐야만 직성이 풀려. 서너명이서 가락을 뚝뚝 쳐. 지금같이 가락에 기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여. 지금은 다양허게 발전을 했제. 근디 어렸을 적에 듣던 그 단순한 가락을 들어보고 싶은거여. 여 어디 옆동네에 그런 가락 치는 사람들 없나? 그 소리가 또렷허게 내 맘속에 남아있는 거여" 최근 우리나라 농악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이리농악도 그중 하나다. 30년 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었다. 1980년 이리농악단의 단장이 된 김형순(82세)이 5년에 걸친 문화재 심사를 통과한 결실이다. 지나온 족적 가운데 농악 말고 다른 곳에 찍힌 흔적을 찾아내기 어려운 그는 자기 몸 자체가 농악의 일부인 것 같다. 굿소리를 들으면 몸이 저절로 반응하고, 그저 이끌려온 탓에 농악이 왜 좋은지를 딱히 말할 수도 없다. 이리농악단의 김형순 단장은 1985년 이리우도농악 설장고 보유자로 지정된 설장고의 명인이기도 하다. "쇠(꽹과리)는 악귀를 쫓고 장고는 선한 신을 불러들이는 것이여. 그래서 쇠가 굿판을 열면 장고가 굿판을 끌고가는 것이제" 그가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을 그렇게 하는가 싶었는데, 굿판이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강조한다. 상쇄가 판굿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장고가 그리한다는 생소한 말에 문득 삼일신고(三一神誥)에 기록된 풍물(쇠, 장구, 징, 북)의 발원과 소임이 떠올랐다. 풍물은 본디 세상을 널리 이롭게하던 신인(神人)들의 각 직분을 나타낸 물형들이라는 것. 꽹과리는 뇌성벽력을, 장구는 비를, 북은 구름을, 징은 바람을 각각 소통한다는 것. 김형순은 자신만의 짧은 육성으로 그렇게 많은 말들을 일으키는 힘을 지녔다. 비는 하늘과 땅을 순환하는 물이니, 제 1원소로서 생명형상의 조화를 주관한다면 그럴 법도 하다. 그가 지닌 자존감의 소이연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물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운용하고 다른 기운들에 질서를 부여하여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사람이라는 자긍심이 '장구가 굿판을 끌고 간다'는 말에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풍물은 천지만물을 고동시켜 만물의 신령한 기운을 북돋우고 흥을 일으켜 사특한 기운을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신인들이 사람들과 곡식의 병을 다스린 힘의 원천이었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 의해 농악은 기원했다. "풍물굿은 본래 무당들한테서 나온 것"이라는 김형순은 말은 농악이 단순히 흥을 돋우는데 그치지 않고, 재액을 쫓고 안녕과 복을 비는 행위라는 사실을 포괄한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농악의 가치를 '함께 하는 것'에 두고있다. "이리농악단이 문화재 심사를 받을 때 해마다 두번씩 심사위원들 앞에서 공연을 해야 혀. 두루 갖출라먼 50명 이상은 돼야 하는디, 그때는 뿔뿔히 흩어져 있었제. 사방팔방 돌아댕기면서 사람들을 모아야 허는 시절이었어. 공연은 고작 두번이었지만, 준비허는 기간은 몇달씩 걸리는 거여. 이 사람들을 술주고 밥주고 같이 부대껴야 혔제. 그렇게 가산을 다 탕진 헌거여. 그래도 어쩌나. 농악이란 그런 것인디. 그래서 좋은 것인디" 이리농악이 익산에서 발원한 토착농악이 아니라, 여러지역에서 우도농악을 연행했던 전문적인 농악인들과 익산의 농악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유다. 이리농악은 김형순의 노력과 욕심에 의해 총체적이고 대동놀이적인 성격을 확보했다. 가만히 앉아서 감상하는 관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로 어우러지는 농악이 개발된 것이다. 이리농악은 풍물의 가락은 물론이고 춤과 함께 노래와 재담, 사설, 재주 등과 연극적 요소를 담당하는 잡색 등이 잘 조화돼 연희적 요소가 풍부하고 짙은 점이 특징이다. 이리농악의 판굿은 전통사회에서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연행되던 굿들 보다는 호남우도농악의 명인들이 각자 연행해왔던 굿들을 모아 구성했기에, 화려한 기예가 돋보인다. 김형순은 이를 두고 "멋쟁이들이 치는 것"이라고 한다. "나 어릴적에는 사람들이 특이허고 절묘헌 가락을 들으먼 저건 논 한필지 값이다고 혔어. 가락은 갈고 닦은 만큼 나오니께 그 값을 알아주는 것이여. 근디 요새도 입으로만 달통헌 사람들이 있어. 우리 우도굿 옆에도 못오는 사람들이 말이여. 우리가 풍물을 어떻게 배웠는가. 논에서 일허고 있는 사람한테 가서 궁금헌 점을 물어, 그러믄 삽을 들어 막대기로 뚜덕거리면서 갈켜줘, 미안혀서 더 물어보도 못혀. 피눈물을 빼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여" 농악이 왜 좋은가, 농악을 할 때 어떤 느낌이 특히 좋은가라는 질문에 김형순은 "어릴 적부터 그저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고 대답할 뿐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적이 없는디. 풍물치는 사람들 중에는 풍물을 안치면 아퍼서 드러눕는 사람들이 꽤나 있어. 그런 끼가 있는 것이제" 김형순의 아내 이길립(73세)은 강한 여자다. 김형순이 5년 동안 문화재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도저히 더이상 못하겠다고 하자 "여태도 했는데 지금와서 그만두냐"면서 박차를 가했던 사람이다. 두 사람 슬하에는 여러 자식들이 많지만, 김형순은 아들 익주만을 거명한다. "그 놈이 중학교 때부터 장고하고 우도굿을 완전히 소화했어. 지금 이리농악보존회장이제. 내가 목숨을 바쳐온 일을 계승허고 있는 것이여" 설장고 김형순은 꽹과리와 징, 북의 연주 사이에 비어있는 세세한 부분에 장구의 잔가락을 넣어 풍물의 기품을 높이고 흥을 돋우는 일에 한평생을 바쳐왔다. 또 남은 삶도 그러할 것이라고 한다. 하늘이 좀 더 오래 그 일을 허락하기를 기원한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