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소리에는 이 세상 모든 소리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진짜 판소리가 좋아요. 그러니까 쉬지않고 계속 하는거죠. 판소리는 한바탕마다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그걸 표현하는 게 좋아요" 제 발로 세상밖으로 걸어 나온 이래 15년 동안을 소리에 매달려 온 끝에 지난 달 22일 수궁가 완창발표에 성공함으로써 국내 최연소 판소리 다섯바탕 완창 기록 보유자가 된 이다은(23, 모현동 13-116)은 자신이 걸어가는 길, 혹은 걸음을 옮겨가는 자기의 마음 상태를 담박하게 드러내 보였다. 그는 8세 되던 해에 국악계에 입문해 판소리로 성장을 확인했다. 12세 때인 초등학교 6학년에 심청가를 완창했고, 중학교 2학년 때 흥보가를, 고등학교 2학년 때 적벽가를, 대학교 2학년 때 춘향가를, 그로부터 3년 뒤에 수궁가를 완창하는 등 독보적인 발걸음으로 국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다른 이들이 엄두를 내지도 못했던 것이기에 경이롭다. 하지만 그가 판소리를 시작한 내력을 알고 나면 그의 20년 여정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태어난 다은이는 벙어리였어요. 돌 무렵에 병원에서 최종적으로 농아판정을 받았지요. 그런데 세살 되었을 때 말문이 터졌고 엄마따라 마당놀이를 다녀 온 뒤 매일 판소리 흉내만 냈어요"그를 뒷바라지 하고 있는 엄마 김광심(56)은 악몽같던 그 때의 기억을 핏기 없는 얼굴로 꿀꺽 삼켰다. 그는 천명(天命)을 따라 오늘에 이르렀고, 그 길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하늘이 내린 악기인지도 모르겠다. "다은이 아홉살 때 소리를 그만 두라고 했더니 밥을 못먹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몇 일 씩 나오지도 않고 신물을 계속 토해냈어요. 그러던 얘가 선생님 앞에가서 판소리 한 소절을 부르게 했더니 그 길로 밥을 세그릇이나 비우고 거뜬해지더구요. 그걸 보고 다은이 앞 길을 막아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요" 그 일화는 엄마가 그를 전폭적으로 후원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래에 피가 섞여있고 목이 극심하게 갈라터져 소리를 중단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온 뒤에는 마음먹은 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소리 공부에 몇 곱절 더 박차를 가해도 거뜬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릴적에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인지 기본적인 소리공부가 잘 된 것 같아요. 소리는 배에서 공명하고 목은 그 통로인데 내 배 근육은 남다르게 발달해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소리 연습을 해도 목이 잘 쉬지가 않아요" 이다은은 득음이란 자기 몸을 완벽한 악기로 만든 경지를 말하는 것이란 걸 그렇게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옆에서 듣던 엄마가 한마디 거들었다. "국악계의 연조가 오래되신 선생님이 손이 어쩌다 다은이 배에 부딪혔는데,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무슨 배가 그렇게 돌덩이 같냐고. 아마도 임방울 선생님 이래 처음인 것 같다고" 아무튼 이다은은 대한민국 국악계의 총아다. 판소리 다섯바탕을 모두 배우고, 완창을 통해 그 배우고 익힌 것을 공식화 한 것은 판소리 수업의 이상적 목표를 분명히 달성한 것이라는 평가다. 그것도 23세 어린나이에 달성한 것이라는 점을 보면, "이제 남은 것은 자기 나름의 소리 세계를 갖고 명창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는 찬양도 쏟아진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동초제 판소리를 익혔고 그것이 10년 동안 굳어졌는데, 5년 동안 미산제 수궁가를 배워 완창했다는 점이다. 동초제는 본디 사방이 트인 장터에서 소리를 멀리 보내는 소리여서 길게 늘어지고 강하며 거친 반면, 보성소리로 구분되는 미산제는 사랑방에서 가사가 지닌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던 소리여서 또박또박하고 부드러운 특성을 지닌다.
동초제를 배워 일가를 이룬 사람이 미산제를 배운다는 것은 환골탈태와도 같은 이유다. 국내에서 그런 사례는 지극히 드물다. 또한 국악계가 버리지 못한 도제식 교육이라는 폐단 아래서는 그런 일을 시도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이다은은 여러모로 선구자다. 그는 "익산에 상설 공연장을 만들어 고수와 소리꾼의 무대로 전락한 판소리를 고수와 소리꾼 그리고 관객이 함께 꾸미는 판소리의 무대를 완성하고 창작 판소리를 계속 발표하며, 1년마다 다섯바탕의 판소리를 발표하고 싶다. 국악계의 큰 별이 되고 싶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힌다. 이다은은 제1회 순창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기점으로 16번 큰 상들을 휩쓸었는데, 제2회 남해성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의 일반부 최우수상과, 목포 전국 국악경연대회의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 제18회 전국 판소리경연대회의 명창부 1등 문화체육부 장관상, 대한민국인재상(대통령상) 등이 주요 수상경력이다. 지난달 22에는 도전 한국인 운동본부로부터 최연소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발표자로 인증받은 그는 여러 기관의 초청으로 '판소리 세 배로 즐기기' 강연과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판소리보존회 익산지부장이기도 한 그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등 각 유파별로 전승되는 판소리를 영구보존하기 위한 '유파발표회'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