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동안의 순례 기록자, 예술의 경지에 미쳐 지나 온 삶 
"미용은 죽음을 무릅쓰고 배웠고, 내 생을 통째로 태워 추구했던 예술입니다" 수많은 시험에 통과해야 획득할 수 있는 중앙회미술기술강사이며, 월드대회에 일곱차례나 출전한 국가대표, 국내유일의 산업기사자격증 보유자, 기능올림픽 심사위원 등 별도의 소개 수식이 필요없는 최윤경 미용아카데미 원장의 미용에 대한 생각이다. 10대에 꾸었던 꿈이다. 미용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극렬하게 만류했다. 타락으로 가는 길이라는 1970년대 그 시절 여느 아버지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미용을 향한 열망으로 들끓던 최윤경의 마음은 그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데 온통 쏠렸다. "여군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모자라 호적을 조작한 것이 발각돼 좌절됐어요. 말이 안 통하니까 딴에는 단식투쟁에 들어갔어요. 까닭을 모르는 아버지는 해열제만 사다 먹이고.. 어머니는 밥 안먹는다고 죽을 끓이고.. 그렇게 절망적인 이레를 넘겼었지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아버지 곁을 몰래 떠나 미용을 배우고 국가대표로 선발됐던 그 시절에는 미용은 누구에게든지 기능일 뿐이었다.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최윤경 한 사람 뿐이었다. 국가대표 생활은 그가 기운생동하는 미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혹은 그때까지 최고의 경지로 일컬어지던 지점을 뛰어넘으려는 도전으로 아로새겨졌다. 그것이 이방인에 대한 싸늘한 시선, 열악한 조건을 감당하며 이국땅을 누빌 수 있었던 힘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열정은 대한민국 미용이 처한 국내외 상황으로 볼 때 언제든지 식을 수 있었고,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 "제가 다니던 성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위해 타고가던 차가 만경강에 빠졌어요. 홍수가 나서 서울이 물바다가 된 건 처음이라고 말한 순간 신부님이 좌회전 하기위해 다리쪽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빗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렇게 됐죠." 차는 그가 타고 있던 쪽으로 전복돼 강물에 휩쓸렸다. 그가 국가대표로 출국하기 전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가 물 속에 완전히 잠기기 직전에 가까스로 구조됐지만, 대부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병실을 빠져나가 병원 원장에게 "내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두고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고가 그를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먹을 수는 있으니까 괜찮겠지 생각하고 아무도 몰래 비행기를 탔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왔는데, 문정현 신부님이 전화를 했어요. 그분이 대뜸, 귀신 바꿔주세요. 하는 것예요.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는데 내가 병실에 없으니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라는 거예요. 얘가 영안실에 있나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요. 사람이 아니면 갈 수 없는데 그 몸 가지고 어떻게 외국엘 나갔냐며 귀신이라고 놀리셨던 거예요" 그는 너무나 심한 통증을 견디던 순간들을 회상했다. 월드대회에서 만난 룸메이트가 그의 앓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면서 "어떻게 무대에 올라가려고 그러느냐"고 묻던 기억이 선연하다. 최윤경에게는 이런 고비, 아니 기적이 두 차례 더 있었다. 1977년 11월의 그 밤에 이리역 폭발사고 일어났을 때, 그는 익산역 건너편의 삼한당 약국 2층에서 다섯명의 동생들과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기절한 채로 병원에 실려갔는데 새벽 네시에 의식이 돌아왔다. 이 사고로 10년 동안 목에서 검은 가래가 나왔지만, 동생들 모두가 함께 살아남았다. 또 한번은, 이사를 스물다섯번 다닌 끝에 평생동안 일군 삶터인 건물이 부도가 나서 전세금 6,200만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는데, 당시 전라북도애향운동본부 총재였던 김삼용 등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모면 할 수 있었다.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해 가족들이 모두 거리로 나앉게 된 상황을 벗어난 것이다. 최윤경은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시자 분노하시던 그의 아버지는 빨치산들의 난사로 온 몸에 총상을 입고도 살아나 3년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고, 동네사람들은 아버지를 향해 "심성이 착해서 살아났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또, 수녀를 꿈꾸던 유년시절이 있었기에 평생을 신앙에 매달려 살아왔다. 부모님들의 음덕과 하느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그런 기적들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그가 시를 쓰는 이유다. 그는 아홉번째 시집 '내가 가야 할 멀고도 험한 길에서', "나 자신과의 싸움을 되새기면서 부모님들에 대한 그리움과 사물을 바로 보기 위한 안타까움과 종교적인 삶의 고운 눈빛을 키우면서 적막강산에 젖어 흐르는 삶의 여정 속에 흘러버린 옛날의 설렘을 사랑과 평화로 휘어감고 싶다"고 40년 동안 걸어 온 순례 기록으로서의 시 세계와 자신이 쓰는 시의 방향성을 밝힌다. 시와 함께하는 최윤경의 삶은, 어머니가 긁어 주신 그 희고 눈부시며 청결한 박속을 입에 넣고 속 마음을 닦아내고, 그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을 가슴에 품고 걸어 온 길이다. 그는 그런 어머니의 품에 머물길 소원했다. 그것은 그를 욕망으로부터 타인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한 계명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시는 또 뼈마디 아프게 그리워서 우는 울음이며, 순진무구한 이에게 속마음을 다 내보이며 한 점 바람 없이 하늘을 우러름이다. 그의 시는 꿈 묻어 물 흐르듯 가는 고향길에서 비롯하며, 목마를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던 한없이 보고싶은 아버지를 통해 투영된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닿는 사물은 빛이 되어 타오르다가 꿈으로 와서 또 타오른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생각할 줄 아는 시인 최윤경은 때묻지 않은 자신의 독백을 풀어내고 절제하고 꾸미지 않은 시어로 자신의 순수한 삶을 기록한다. 이기반 교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는 크나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그가 한 사람의 시인이기 이전에 직장인이자 사회인으로서도 큰 비중을 가지고 활동하는 여류이기 때문이다. 미용사와 시인을 분리하지 않고 그를 바라본다면, 무너지고 쓰러지고 조건없이 주고있는 갈대의 희생이 연상된다. 최윤경의 시 가운데 이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십이월' 전문을 옮겨 본다. 떠도는 그대 영혼의 눈이 내린다./ 닫혀있는 거리, 아직 임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의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이 한해의 마지막 언덕길이 지워지고 있다. 한편 그는, 지난 1989년에 동양문학 신인상을, 1996년는 향토문화대상을, 2000년에는 부원 문학상을, 2006년에는 마한문학상을 각각 수상하고, 한국문인협회 익산부지부장과 한국자유시인협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여러 문예 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