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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아이디어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이야기꾼 박찬국

▲ 지금의 모습을 함께 기억하기를 꿈꾼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평범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전하는 이야기꾼이기도 하지요. 사실 예술이라는 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요. 그림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주위의 눈도 필요합니다.”

익산의 한 젊은 작가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초상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주인공은 익산문화재단의 공공예술프로젝트에 참여해 문화예술의거리 ‘E127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박찬국 작가.

국민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목천포 만경강 뚝방을 거닐며 하늘의 별과 달을 보고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타 지역에서 작업을 해왔다. 자신처럼 과거 익산의 기억을 가진 이들이 옛 익산의 기억을 돌이켜볼 수 있는 사진 작품과 드로잉, 페인팅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일환으로 진행 중인 시민 대상 무료 초상화 프로젝트.

지금 이곳 익산에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소중한 기억으로 남긴다는 취지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무료로 그려준다는 말에 “도대체 왜 이거 하시냐”는 색안경도 더러 있다.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상대방이 좋으면 그냥 해주면 되는 것”이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박찬국은 상대의 웃음이 “이번 초상화 프로젝트를 계속하게 하는 힘”이라 한다.

15년 여 타지에서 작품 활동을 해 온 그는 사실 남성고 출신이다. 당시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던 남성고에서 미술을 선택한 사람은 박찬국 뿐이었다고 한다. 집안 반대도 심했다. 적잖은 돈을 지원하면서까지 미대에 보낼 수 없는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하지만 “꿈도 없이 단지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고 말하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는 그는 미대에 진학했다.

그만둬야 할 위기도 여럿 있었지만, 그 때마다 꼬박꼬박 도움을 주는 이들이 나타났다. 천생 그림 그리는 이야기꾼이 될 운명이었다고나 할까. 이는, 그가 자신의 재능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기제가 됐다.

SNS와 입소문을 타고 번진 그의 프로젝트로 인해 영정통 그의 작업실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그는 다소 난해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이 뭔지, 작가가 뭔지, 그리고는 개인적인 희망과 앞으로의 꿈, 사랑, 고백하고 싶은 사람을 묻는다.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박찬국이 생각하는 예술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사는 모습 자체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 의미를 부여하고 재미를 더해 전하는 것일 뿐이다.

자연스레 동참하게 하는 게 예술인데, 자꾸 뭔가를 요구하는 구조를 조금이나마 깨 보려는 시도가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또 한 가지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나 팍팍한 사회인지 모르겠어요. 처음 중앙동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곳 주민들마저 물음표 일색이었죠. 거지같은 행색에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도 잘 모르겠고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간 서로 간 부대낌이 있었기 때문이죠.”

무료로 진행하는 초상화 프로젝트지만, 직접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이 이뤄져야 그가 펜을 드는 이유다. 그는 얼굴을 맞대는 것이 아니라 보내주는 사진만으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지난 14일에는 영정통에 8m짜리 초대형 달이 떴다. 이 역시 박찬국의 작품이다.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것 자체를 예술이라 여기는 그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입주작가라고 무슨 아이템 수준으로 치부하는 일각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달을 만지고 신기해하며 즐거운 기억 하나를 만드는 장면, 그것 하나를 위해 한 달여를 미친 듯이 준비해 온 그다. 뚝방에서 어렸을 적부터 지켜봤던 달을 하늘에서 빌려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이번 작품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소중하게 남길 수 있고 거대한 달을 직접 만져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시민 누구나 가질 수 있기를, 이를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이 영정통에 발걸음을 하기를 바란다.

그의 무료 초상화 프로젝트는 이달 말까지 선착순 300명에 한해 진행되며, 6월 중 문화예술의거리 일대에 전시된 후 직접 받을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박찬국 작가(010-2938-7875)에게 하면 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