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에 대한 제 소신입니다. 얼마나 힘든지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올바른 인성을 길러내는 게 저의 유도입니다.”

18년째 원광중학교 유도부에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전국을 대표하는 유도 인재들을 키워나가고 있는 이원산 코치.

그는 자신의 선택과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그렇게 표현했다.

지난 3일 시내의 모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누구나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무도인의 기운이 넘쳤다. 건장한 체구하며 반듯하게 자른 스포츠머리, 악수차 내민 커다란 손이 영락없는 유도선수의 풍모다. 현역이라 해도 충분히 믿을 만했다. 그러면서 서글서글하게 보이는 사람 좋은 웃음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인성, 끈기, 도전, 용기, 열정, 아이들, 소통, 변화”

한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여러 번에 걸쳐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의 말들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유도를 통해 바른 인성을 길러내는 것”

유도를 대하는 그런 그의 마음가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대화를 관통했다. 아이들 지도만 18년, 선수생활까지 합치면 30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한곳만을 바라보며 한길을 걸어온 그이기에, 한마디 한마디가 미덥게 다가왔다.

그의 평소 생활신조는 ‘최고보다는 최선’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몸으로 행하기는 여간 쉽지 않은 말이다. 특히, 성적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다시피 하는 운동선수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건장한 체격과 실력을 바탕으로 씨름을 했던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며 당시 은사의 권유로 유도로 전향했다. 군산 서흥중학교에서 그렇게 본격적으로 유도를 하던 그는 원광고로 스카우트됐다. 선수수급이 어려운 지역현실도 있었지만, 월등한 신체조건과 각종 대회에서의 성적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유도를 대하는 그의 인성이 주효했다.

26세 되던 2000년부터는 당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경남도청과 한국철도공사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원광중에서 유도전문 지도자로 아이들과 함께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다.

어느덧 18년째에 접어든 지도자의 길이다. 이제는 그가 길러낸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기도 하다.

아무리 고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언제나 “집보다 아이들이 먼저”다. 스스럼이 없다.

목포, 군산, 정읍 등 타지에서 온 아이들의 등하교 문제 때문에, 원광중은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 아이들과 함께 24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지척에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딸이 있지만 주말 외에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다. 그마저도 대회가 있을 때면, 선수들과 함께 반납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다.

그런 그의 마음가짐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언제나 희생과 배려를 바탕으로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이원산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 역시 제2, 제3의 이원산이 돼 멋진 유도인으로 거듭난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인성이다. 대회에 나가서 성적을 내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신체단련보다 정신건강, 올바른 인성을 가진 사회구성원을 키워내는 게 그가 하는 유도다.

너무나 교과서적이지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른 사람’을 길러내는 게 그의 목표고 신조고 최우선 가치다. 특히 아직 온전히 성장하지 않은 중학교 아이들에게는 올바른 인성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도는 그에게 너무나 잘 맞은 옷이다.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유도는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 속에 부드러움과 배려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이는, 아이들을 올바른 인격형성에 큰 도움이 된다.

유도복을 입고 매트 위에서 우렁찬 기합소리로 좌중을 압도할 때면 어느 누구보다 엄한 호랑이 선생님이지만, 사실 그는 부드러운 남자다.

권위적이고 성과지향적이었던 엘리트체육을 한 소위 줄빳다 세대지만, 변화에 맞추는 유연함이 탁월하다.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매일 카카오톡도 하고 스마트폰 게임도 함께 한다.

“이제는 이전까지의 엘리트체육도 변해야 합니다. 특히 유도같은 비인기 종목은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변화에 발맞춰 의식도 변해야 하고, 지도방법이나 엘리트체육 특유의 권위의식도 개선해야 합니다. 저는 유도장이 놀이터처럼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되길 희망합니다. 생활체육처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 선수수급의 어려움이나 비인기종목이라는 딱지도 떼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성적이 부진한 것도 아니다. 선수시절 전국체전 등의 각종 전국대회와 국가대표선발전, 세계군인올림픽 등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지도자로 전향한 2000년 이후에 그가 키워낸 선수들이 따낸 메달만 해도 70여개가 넘는다. 김재윤·이성호·김영주·고자람 등 전·현직 국가대표를 비롯해 전국대회의 수많은 상위권 랭커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그와 함께 원광중 유도부를 이끌어가고 있는 박영선 감독이 유도부의 아버지라면, 그는 유도부의 어머니이자 살림꾼이다.

그들은 선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길을 알려주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방향을 잡아준다. 선수와 팀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최상이며, 선수와 팀의 미래를 위해 최상의 기량을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계획을 세운다.

“고된 훈련을 묵묵히 참고 버텨 주는 아이들이 정말 고맙죠. 대회 나가서 메달 따내는 걸 보면, 정말 뭉클합니다. 가장 기쁘고 보람된 순간이지요. 지도자라면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평생 해왔던 유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실력은 물론이고 20여년 이상의 경력과 수련기간, 실적 등을 바탕으로 공인 5단의 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올해 6단을 따는 게 목표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지금 유도를 하고 있으니까요.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할 겁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