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마한에 뿌리를 둔 백제역사문화권이란 말이다. 그것이 인고의 세월 동안 묻혀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익산의 예술인들에게는 비로소 익산의 역사를 깨우칠 수 있었던 굉장한 사건이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익산시지회를 이끌어 오고 연임해 앞으로 4년 더 책임을 짊어진 김영규 회장. 예총 회장이라는 거창한 직함보다 나팔바지에 학생모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청춘의 화가다.

익산시 오산면이 고향인 김 회장은 익산의 예술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홍익대학에서 서양미술을 전공한 뒤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서울에 머무르라는 각종 제안을 마다하고 익산에 내려온 것도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렇게 익산에서 선생님으로, 화가로, 때로는 예술인 단체 회장으로 살아오면서 익산이라는 도시가 변화하는 모습과 함께 해왔다. 화가라는 특유의 미술적 감각으로 고스란히 저장된 익산의 기억은 묻기도 전에 튀어나오곤 한다.

“익산이라는 곳은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처럼 허허벌판에 만들어진 동네라고. 그런 곳에 엉뚱하게 일본놈들이 쌀을 수탈하기 위해 기찻길을 놓고 전국 최초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놓은 것이 저기 전주-군산 도로야.”

김 회장은 현재 익산의 풍토가 그러한 익산의 생성과 발전과정 속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소위 ‘뼈대’가 없는 도시였기에 시민들의 응집력이 약했고 그걸 바로 잡아 줄 유교적 의미의 ‘어르신’의 부재 역시 그러한 ‘상놈’문화가 형성된 원인이 됐다고 짚었다.

그러한 도시에서 무엇보다 예술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김 회장은 역설한다.

“만날 서로 고발이나 하고 박 터지게 싸우다 보니 살벌한 도시가 돼버렸다. 그걸 고칠 수 있는 것이 종교와 예술적인 힘일 것이다. 그림과 음악, 문학이 살아나는 도시는 그러한 다툼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런 것을 하는 게 우리 예총이 할 일이다.”

살만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지역 예술인들의 역할이자 목표라는 것. 이에 김 회장은 과거 문화의 구심점이었지만 이제는 공동화의 아픔을 겪고 있는 구도심의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 일환으로 후배 제자들을 문화예술의 거리에 입주할 수 있도록 독려해 5명을 입주시켰다. 이후 그들이 거리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준 덕분에 최근에는 입주 경쟁률이 상당히 높아질 정도로 효과를 보고 있다.

익산시민들이 예술과 문화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거리에서 만나고 즐길 수 있는 문화폭발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술인들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거다. 그게 가능하려면 현실적으로 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3년 전에 만든 것이 예술인협동조합이다.”

2014년 솜리예술인협동조합이 김 회장의 주도로 탄생했다. 7~8명의 미술인들이 의기투합해 지역예술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모여 만든 솜리예술인협동조합은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차츰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부터 미술품 임대사업의 길을 찾아냈다.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작품 판매를 위한 판로를 찾기 어려운 점과 비싼 미술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소비자의 필요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자 사무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이었다.

솜리예술인협동조합은 일단 전주 혁신도시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농진청 등의 정부기관 3곳에 미술품을 임대해주기 시작해 지난해만 2,300백만 원 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3개월마다 작품을 교체해주기 때문에 소비자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이런 시도가 지역 예술인들이 활기차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돼 다시 익산시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효과를 만든다.

“예술은 도시에 희망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만 된다. 예술인들이 아니면 과연 누가 익산시민들의 삶의 질을 바꿔놓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앞으로 예총을 더불어 익산시 예술인들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활동에 경주하도록 하겠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