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워서 새로워지는 사람, 그 삶의 설레임을 함께 교감하는 사람 
소년의 아버지는 6.25사변 때 군인이었고 전선에서 몸을 크게 다쳤다. 아버지가 서둘러 곁을 떠나는 바람에 소년은 거친 세파를 일찍 대면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아버지는 생전에나 사후에나 소년에게 자긍심이었다.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보내는 세상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면서 길러진 힘이었다. 호국보훈의 날 학교에서 원호대상자에게 나눠주는 학용품을 받으며 전신에 퍼지는 희열에 벅찼던 것은, 가난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겠지만 소년의 마음에 새겨진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문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그가 자수성가하여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면서 받는 이의 감동을 고스란히 교감하는 바탕이 되었다. 정기정(47세, 동산동) 성하건설 대표, 그가 최근 지역사회에서 참된 봉사자로 주목받게 된 동기 역시 자신이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도 채워주고 그것을 교감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양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고 있는 저에게 아버지의 친구 분이 새 신발을 제게 선물했어요.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던 터에 마침 신발장사를 하던 선배가 점포정리를 하는 중이었고, 지인이 동그라미 재활원을 소개해 줬지요. 그 때가 15년 전이었네요. 신발 150켤레를 들고 찾아간 그곳은 신체장애아와 정신장애아들의 시설이었습니다. 사실, 이 아이들이 받는 기쁨을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으로 손수 신발을 신겨줬지요. 그러다가 저는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봉숭아 빛으로 물들인 얼굴에 너무나 밝고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겁니다. 뭐라 형언키 어려운 그 때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것이 출발이었다. 거리의 자선냄비든 휴게소 한켠의 심장병어린이 돕기 자선공연이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어디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는 기부와 봉사활동을 정기화해 나갔다. 모교인 동산초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익산자원봉사센터에 기부금을 전달하고, 라이온스에서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또, 최근에는 '국창 정정렬 추모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대회장을 맡아 이 대회를 주관하는 익산국악원에 대회 경비로 쓰라며 5백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분서주하며 후원금을 모금했다. 임화영 국악원장은 후원금 규모를 보고 그의 열정과 인맥에 깜짝 놀랐다.
정기정의 인맥은 지난 1월 4일 개인 출판기념회를 통해 지역사회에 알려졌다.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는 그가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쌓아온 덕과 인간관계를 단적으로 방증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날의 수익 1,500만원 전액을 장애단체를 비롯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인가시설 등 10개 단체에 기부했다. 정기정은 무엇을 나눌 때 한번도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체 수익 중 일정 부분은 어려운 이웃에 나눠 준다는 생각과 장학재단이나 실버타운 같은 사회복지시설 설립 같은 목표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남을 도우면서 오히려 내가 더욱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삶의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사회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힘은 적극적이고도 든든하게 지지하는 아내(김숙희, 46)에게서도 받고 있다"고 툭 던지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도 내친김에 그는 아들 성배(16)와 딸 하나(15), 미소(9), 사랑(7)이 등을 언급하며, "정치인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애틋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한다. "제가 태어나 장성한 지역 동산동에는 타 지역에 비해 영세민들이 많고, 학생 900명 가운데 270명이 한부모 가정이나 결손가정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정치인들도 평소에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필요한 곳에서 역할을 해준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가 이렇게 생활정치 실종을 우려하는 까닭은 무한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 귀가의 동선 밖에 편히 쉬거나 끼를 발산할 전용공간을 갖지 못한 현실이 위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청소년들의 탈선 행각이 도를 넘은지 오래다. 또, 이를 한 치 망설임 없이 지적하지 못하는 세태도 아쉽다. 정기정이 이렇게 올곧은 생각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에게는 인생의 멘토가 한 분 계십니다. 바로 김진대 회장님입니다. 한마디로 도덕 선생님 그 자체십니다. 저를 만난 이후 30년 동안 누구를 한번도 헐뜯은 적이 없고, 누구든지 존경하는 온화한 성품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그가 이정표로 삼고 있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버리기'도 김회장에게 채받은 것이다. 살아온 삶이 다소 거칠었을지라도 내 앞에 있는 그는 분명 행복에 겹다. 그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도 그와 같이 행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자꾸만 비우기에 새로운 것이 샘솟는 마음이다. 다른 새로운 것이 가득찬다는 것은 매번 새로 태어나는 것과 같다. 새롭고 새로우니 그보다 설레는 삶이 또 어디에 있을까. 정기정에게서 들리는 당당하게 고동치는 맥박, 이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초조함을 걷어내고 속박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