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로의 정객, 자연인이 되어 돌아보는 정치여정 
“텃밭에 업드려 소일합니다. 배추와 땅콩에 공을 들이고 고추를 따고 콩도 따고, 깨도 털고... 요새는 고추 말리는 일까지 동분서주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 자연인으로 돌아와 4년 남짓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김병곤(65세) 전 전라북도의회 의장이 밝히는 근래 자신의 일상이다. 잡생각을 떨치고 번잡한 마음을 가라앉혀 보겠다고 시작한 텃밭 일구기에 그 나름 심취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육체는 노동이 버겁다. “손 바닥 만한 밭뙈기 붙여먹기도 이렇게 힘든데 농민들이 참 힘들겠구나. 수입에 관계없이 농촌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5선 도의원 또는 3선 도의회 의장, 앞으로도 깨질 것 같지 않은 그 지방자치 사상 최초의 기록을 보유한 김병곤은, 야인이 되어 짧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20년 동안 자신을 믿고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더 잘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사무친다. 초로의 그가 익산사랑 원로회와 익산애향운동본부에 가입해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김병곤은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면 무엇엔가 홀려 오늘에 이른 것 같다. “나는 내가 누린 영광이 항시 과분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를 생각해 보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이끌어준 것 같아요. 나는 신앙이 깊은 사람이 아니라서 기도도 잘 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조언으로 이끌어 달라고 기도 아닌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의 이런 정치역정에 관한 술회는 그가 유권자를 하늘로 우러르며 섬겨온 태도를 적절하게 드러낸다. “나는 직업 정치인이 아닙니다. 생활정치인이지요. 익산시민들과 전라북도민들의 뜻을 대변하는 대의기관의 일원으로 도민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의 특수성에 맞게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나 보완점을 찾아서 기여해 온 것이지요. 그렇게 의욕적으로 주어진 일을 수행해 왔으나 종종 지방 정치인의 한계에 부딪쳐 좌절감을 느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는 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고 쉬운 문제들인데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순수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선도하는 리더들이 그 순수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지역발전이나 불편없는 생활, 공감하는 정치를 바라지만 리더들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하루빨리 타파해야 할 과제입니다” 김병곤은 정치권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본보기로, 몇일 전에 강원도 정선군이 지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를 전면지원하는 무상교육 조례안 입법예고를 들었다. “정선군은 이미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학생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모두 전국 최초입니다. 재정자립도가 16%인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군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어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런데 이런 획기적인 일은 정치가 현실에 있을 때 실현 가능합니다” 정치인이, 하고 싶은 말을 참고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치단체와 정당이 목소리를 듣는 창구를 만들고 목소리를 취합하고 걸러서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풀어나가면 비전이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은 삶입니다. 도시에 비전이 있다 생각하면 시민들이 의욕적으로 살 것입니다” 문화 예술에 문외한이지만, 여러가지 필요에 의해 익산문화재단 비상근 상임이사를 맡아 1년 반 동안 이끌어 온 김병곤은 “문화도 결국 희망의 동력 아니겠냐"며, “정치란 그렇게 모든 분야와 통섭한다”고 정리한다. 익산문화재단은 태동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 그 가치가 정립되지 않았고, 문화 이벤트에 비용을 지출해도 표가 않나는 탓에 다양한 의심의 눈길을 받고 있지만, 전국적인 인지도는 높아졌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문화재단의 독자성을 기르고 시민들의 정서가 윤택해지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역설했다. 김병곤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왔고, 지금도 시민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찾아서 할 각오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이 알지만, 지금와서 둘러보니 만나서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널리 이로운 존재의 본질은 ‘고독’이라는 격언이 내 앞에 있는 그의 표정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공인배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