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박근혜! 웰컴 민주주의!”

수개월째 꺼지지 않은 촛불이 끝내 헌법질서를 회복하고 국가를 재구성하는 계기를 이끌어 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지난 10일 오전 11시 25분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탄핵 결정문을 통해 드러난 인용의 주된 이유는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 헌법질서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비선실세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동원했다는 의혹과, 성난 촛불민심이 결국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 헌법 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탄핵 인용의 근거가 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판단된다. 하나는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권한남용’이다.

헌재는 최순실이 비선실세로서 국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통령의 묵인이 있었고, 연설문 유출은 국가공무원법상 비밀엄수 의무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걸친 전 과정에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해 오직 최순실을 위해 사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특정 회사에 특혜를 준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대통령 파면을 통해 얻을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뒤 그가 보인 소극적이고 부실한 대응 태도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고,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탄핵 결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헌재는 진실을 은폐해 권력에 대한 국회의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기능을 차단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의 대면조사 요구, 청와대 압수수색 등에 응하지 않는 등 탄핵소추 사유와 관련된 진상규명에 협조하지 않았던 점도 꼬집었다.

◇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 성실의무 위반 “탄핵심판 판단 대상 아냐”

헌재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부실 대응은 탄핵심판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과 직책 성실의무 위반 모두 소추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헌재는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참사 당일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절차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성실’의 개념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이처럼 모호한 의무규정을 가지고 대통령을 탄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밝힌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정치적 무능력과 정책 결정상 잘못 등을 이유로 탄핵 제도가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피력했다.

두 재판관은 “피청구인이 세월호 참사 당일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무른 것은, 국가적 재난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 것”이라며 “이러한 성실의무 위반이 대통령 파면에 이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지적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언론의 자유 침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유출을 비난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 쟁점 선고에 앞서 “국회 탄핵소추 가결 절차에 어떠한 흠결도 없다”며 각하 주장을 일축했고, 탄핵소추 의결부터 탄핵심판 선고까지 집요하게 절차에 이의제기를 해왔던 피청구인 측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조금의 빈틈도 남기지 않았다.

◇ 탄핵정국, 이제 대선정국으로 전환

각 정당은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더 이상 탄핵을 둘러싼 소모전을 벌이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향후 정국은 각 정치 세력이 대권을 향해 총력전을 펴는 조기대선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는 일단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가 유지된다.

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차기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선출해야 하며, 공직선거법 제35조 제1항에 따라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자가 이를 공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황 권한대행은 열흘 뒤인 이달 20일까지는 차기 대선 일정을 공고해야 한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 만큼 후보 검증을 위해 국민에게 최대한의 시간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현재 법정 마감일인 5월 9일이 유력한 대선 날짜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 선거의 법정 선거 운동기간이 23일이기 때문에, 각 당은 대선 후보를 오는 3월 말이나 4월 초까지 확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일이 5월 9일로 정해질 경우, 빠르면 4월 3일 늦어도 4월 8일까지 후보를 확정하는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간 경선룰 갈등이 해소되지 않아 후보선출 일정이 아직 확정되지 못한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탄핵 선고 전 선거체제 돌입에 대한 부담감 탓에 선거 준비를 미루는 바람에 4월 10일 전후에야 후보 선출이 가능해 보인다.

바른정당은 오는 28일까지 대선 후보를 결정하기로 하고, 19일부터 국민정책평가단 투표를 위한 슈퍼스타 K식 토론회에 들어간다.

이와 같은 각 당의 자체 후보선출과 별개로 ▲정치권 내 비문(비문재인) 진영의 움직임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간 개헌을 고리로 한 후보단일화 가능성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탈당함에 따른 제3지대 빅텐트론 부활 여부 ▲개헌 대 반개헌 프레임 승부수 움직임 ▲기타 선거전 막판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 두 야당이 양분하고 있는 익산, 대선 요충지

이번 탄핵 인용은 헌법질서를 회복하고 국가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조기 대선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판도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인 호남, 특히 전북에게는 다시 오지 않은 기회인 셈이다.

반문(반문재인) 연대론, 안희정 대안론, 김종인 빅텐트론 등 변수가 있지만, 어떤 경우든지 이번 대선에서 호남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익산은 단체장과 국회의원을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양분하고 있어 대선구도의 변화에 따라 활용가치가 큰 지역이다.

이는 이번 대선이 그간 소외돼 왔던 호남, 그중에서도 전북과 익산이 정치역학적으로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임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이를 토대로 한 정치권 검증, 올바른 선택이 요구된다.

익산은 이미 대통령 파면에 준하는 기초자치단체장 낙마의 아픔을 겪은 바 있고, 이로 인한 상처는 아직도 온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