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자가당착의 전형을 보였다.

환경오염 발생(원인), 마을까지 도달(전이), 주민피해 발생(결과)라는 인과관계의 요건이 충족된 ‘익산 장점마을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공식적으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끝까지 버텼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존재이유를 스스로 내다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익산 장점마을 건강영향조사 주민설명회’를 열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관련 용역을 수행한 환경안전건강연구소(소장 김정수)는 “비료공장이 불법적으로 연초박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등 발암물질이 주변지역으로 확산됐고, 집단적 질병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는 결론을 내놨다.

◇ 인과관계 인정을 위해 필요한 원인과 전이, 그리고 결과

해당 비료공장이 지난 2009년부터 2015년(2011년 제외)까지 ㈜KT&G 신탄진공장에서 반출된 수천톤의 연초박을 불법으로 사용했고, 이로 인해 공장 내·외부는 물론 인근 마을지역 곳곳이 발암물질인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이나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등에 노출됐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됐다.

전국 대비 장점마을의 암 표준화 발생비 분석 결과를 보면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모든 암이 2.05배 높게 나타났다.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2.22배를 기록했고, 피부암은 무려 21.14배, 담낭 및 담도암은 16.01배(남자)를 기록했다.

장점마을 주민 건강검진 결과에서도 알레르기 관련 이상 소견자나 혈중 납 평균 농도가 통계적으로 대조군과 유의하게 차이를 보였고, 특히 유해물질로 인한 피부질환 의심대상자가 14명으로 대조지역 3명보다 높게 나타났다. 인지기능검사에서도 인지기능 저하를 보인 경우가 57.7%로 대조지역 31.4%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나타냈다.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권태홍 정의당 전북도당위원장, 손문선 좋은정치시민넷 대표, 김세훈 전북대 박사, 홍정훈 변호사 등은 객관적으로 드러난 지표를 근거로 국민과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식적인 수준의 환경부의 해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공장 가동 중단 후 1년이 넘은 시점에서 반감기가 짧은 인체 내 오염물질 노출 관련 생체지표를 확인하지 못한 연구 한계점을 이유로 들며 끝까지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 골든타임 놓쳐버린 건 다름 아닌 환경부와 익산시

비료공장이 이미 문을 닫아 과거의 발암물질 배출량과 주민 노출량을 파악하기 어려워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날 환경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환경부와 익산시는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비료공장에서 발생한 각종 발암물질이 인근지역의 대기, 지하수·하천수, 토양 등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 또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호흡기·피부 노출에 의한 발암 연계성 파악을 위한 조사와 분석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환경부는 2017년 4월 비료공장이 폐쇄되면서 유사공정을 통한 조사를 계획했다.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에서 현실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전문가 의견이 줄기차게 제기됐지만, 계획은 변경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사공정 시설을 찾지 못했고, 2018년 10월에야 법원의 허가를 받아 해당 비료공장을 재가동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재가동에 따라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 주민을 설득하면서 공장 진입 후 그간 방치된 시설의 점검 및 재가동 인력확보를 계획했으나, 보일러와 건조시설(로터리킬른), 전기시설 등 수리를 위한 공장 측의 비협조, 1억원이 넘는 수리비용 등을 이유로 공장 재가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공장은 경매로 넘어갔고, 대기배출 조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터리킬른 등은 철거돼 외부로 반출됐다.

민관협의회 차원에서 초기 공장 진입을 통한 재가동 조사의 필요성이나 공장 진입의 법률적 근거 등이 명확히 제시됐지만,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환경부와 익산시는 법률에 근거한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공장 진입조차 제때 하지 못하면서 수개월을 허비했다. 결국 대기배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1차적인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십 수년째 방치됐다는 점에서 익산시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2001년 비료공장이 가동된 직후부터 악취 등으로 수차례 익산시와 전라북도에 민원을 제기하며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악취로 인해 주민들이 응급실에 실려 가고, 공장 아래 소류지에 폐수가 유입돼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고, 주민들이 암으로 죽어나가도 행정당국은 ‘별 문제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사태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주목을 받자 상황이 급격히 변했다. 이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던 비료공장을 대상으로 2016년 9월 이후 악취방지법 및 폐기물관리법 위반으로 16건을 적발했다. 2017년 4월에는 대기배출시설에서 특정대기유해물질인 니켈이 법적 허용 기준보다 4.7배 초과 검출돼 폐쇄를 명하기까지 했다.

현재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와 익산지역 17개 시민사회단체는 익산시와 전북도의 관리감독 책임을 묻기 위해 감사원 공익감사를 청구한 상태다.

◇ 환경오염피해 인정됐지만, 주민들 피해구제는 여전히 막막

이날 환경부는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피해구제 절차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관련 법령상 주민들이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실비로 지급되는 치료비와 유족보상 정도다.

이를 넘어서는 고통에 대한 보상은 소송을 통해서만 가능한 상황이다. 그마저도 원인행위자인 비료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라 소송의 상대방이 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사태에 대한 책임이 분명한 환경부가 인과관계는 인정치 않고 피해구제라는 그럴듯한 조치를 앞세워 발을 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소송이 명확한 증거와 근거를 중심으로 결정된다는 점, 조사 결과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충분한 객관적 지표들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해서는 환경부가 전혀 실효적이지 못한 피해구제방안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를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권태홍 정의당 전북도당위원장은 “주민의 암 발생 상황과 조사 결과를 놓고 봤을 때 다른 암 발생 원인이 더 이상 없다면 환경부에서는 (인과관계) 결정을 내려줘야 그나마 보수적인 법원에서 주민들이 보호받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국민의 건강을 담보해야 할 환경부의 역할이다”라고 강조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