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공론화 과정 선행 및 9층 전체복원 여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과 관련, 미륵사지석탑이 시민의 자긍심을 품에 안은 문화유산으로서 진정한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시민 공론화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28일 미륵사지 현장에서는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에 대한 궁금증 해소 및 문화재 수리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현장공개설명회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인 회일 스님(전주 참좋은우리절 주지)은 무너진 상태의 석탑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과연 백제문화의 진정성과 역사성을 제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추진 중인 6층 부분 보수정비안은 해체 직전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사라진 부분은 그냥 두고 남아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쌓아 올리되 일부 재료를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사업이 완료되더라도 6층 비대칭 모양에 붕괴를 막기 위해 일제가 시멘트를 덧칠해 놓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이에 대해 회일 스님은 “미륵사는 삼국시대 백제부흥의 원대한 꿈을 담아 건립한 사찰이며, 그 중심에는 미륵사지석탑이 있다”면서 “현재의 석가탑이나 다보탑과 비교했을 때, 폐허화된 석탑이 복원된다면, 예전 백제가 신라에 가졌던 패배의식을 현재까지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또한 “무너진 석탑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석탑은 단지 흔한 유물이고 돌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익산시의회 임형택 의원 또한 시민 공론화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임 의원은 “미륵사지가 위치하고 있는 익산시민들조차 미륵사지석탑이 복원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15년 전부터 미륵사지석탑 복원에 나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설명회 자리는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있었다 해도 전문가들이 나와 일방적으로 시민들을 가르치는 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데,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면서 “대다수의 시민들이 현재 추진 방식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6층 부분 보수정비안을 고집하는 것은 혹시 기술력에 한계가 있거나 자신이 없는 것 아닌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또한 “복원은 6층 부분 보수정비안으로 추진하면서, 현재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입구의 모형은 완전한 9층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미륵사지 복원과 관련해 시민들이 원하는 바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향후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으며, 그 출발점인 미륵사지석탑 복원의 경우 현재의 방식은 시민의 자존심이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한백제문화유적복원추진단 최행식 단장도 “최근 익산시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의 복원 방식에 찬성하는 시민이 10％ 이하에 불과하며 90％ 이상의 시민들이 6층 복원 또는 9층 전체복원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덕문 건축문화재연구실장(미륵사지석탑보수정비사업단장)은 “복원과 관련된 의견 차이는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주민들의 뜻도 중요하지만, 문화재 가치보존도 중요하다”면서 “고증이 전제되지 않은 복원은 역사왜곡의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화유산의 복원 문제를 여론조사와 설문조사로 결정한 예는 본 적이 없다”면서 “신부재를 많이 사용하면 9층이 아니라 몇 층이라도 올릴 수 있지만, 과다사용하게 되면 역사적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복원 방식 변경 가능성 시사

이에 앞서 문화재청 나선화 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현재 추진 중인 미륵사지석탑 복원이 10년 전 계획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고, 기술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만큼 복원의 방향 등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복원 방식에 대한 변경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의 결정으로 인한 오류가 있을 수 있고 복원 방식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도출된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미륵사지와 왕궁리 일대의 세계유산 등재와 함께 미래가치를 공유해야 진정한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면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우리 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현장담당 및 보수정비를 맡고 있는 김현용 학예연구사는 그간의 추진 현황 및 계획, 보수정비안 선정과정의 배경 및 의의 발표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6층 부분 보수정비안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한편, 6층 복원과 9층 전체복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김 학예사는 “6층 부분 보수정비의 경우 역사성과 진정성을 보존할 수 있으며 원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할 수 있어 복원 수리 전후의 이질감을 최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방식이 세계유산 전문가들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역사적 흔적과 이미지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복원고증연구의 동기를 유발하는 한편 향후 과학기술 발전과 복원고증 연구에 의한 진정성 있는 복원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6층 복원에 대해서는 ▲저층부 부재 보존 불합리 ▲신부재 증가 및 원부재 재사용 비율 저하로 인한 진정성(역사적 이미지 훼손) ▲세계유산 관리 및 등재에 부정적 영향 ▲원형 층수에 대한 오해의 소지 및 복원고증연구 의욕 상실 ▲여러 번 수리된 2층 이상부 고증에 대한 심화연구 필요 등을 이유로, 9층 전체복원에 대해서는 ▲원형고증 복원의 한계 ▲원부재 재사용률 최저 ▲복원고증 및 학술연구 의욕 상실 ▲자의적 역사왜곡 우려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현장공개설명회에는 문화재청 나선화 청장을 비롯해 국립문화재연구소 강순형 소장과 김덕문 건축문화재연구실장(미륵사지석탑보수정비사업단장),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배병선 소장, 김현용 학예연구사 등 관계 공무원들과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 100여명이 참여했으며, 발표 및 질의응답 이후 보수정비 현장설명이 이어졌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