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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모현우남아파트 긴급대피명령

▲ 남겨진 이들, 발만 동동

재건축이나 보수·보강보다, 우선 살 수 있는 터전 마련 시급
성급한 조치로 갈등·불안만 가중, 말 못할 우울증 주민 다수
지원대상 아닌 집주인들, 갑작스러운 보증금 반환요구에 울상

낙인 찍힌 모현우남아파트 // 이주한 세대가 버리고 간 가재도구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긴급대피명령이 내려졌어도, 돈이 없어서 아무데도 못 가요. 시청 마당에 텐트치고 자야할 판이에요.”

실효성 없는 이주대책만은 내놓은 채 내려진 긴급대피명령으로 한 순간에 보금자리를 잃게 된 모현 우남아파트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지난달 11일 익산시가 모현 우남아파트에 발동한 긴급대피명령 때문에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여전히 뚜렷한 대책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긴급대피명령과 함께 시가 내놓은 이주대책은 이주비 120만원 지원과 저리 전세자금 대출 알선, 공실 아파트 안내가 전부다. 하지만 1일 현재 실제 이주비 지원을 받은 세대는 1세대뿐이며, 대출 알선을 통해 대출이 이뤄진 세대도 1세대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A씨는 “기존 대출 등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실제 대출이 어렵거나 이사에 대한 부담이 커 긴급대피명령 이후에도 불안을 안고 그대로 살고 있는 세대가 거의 대부분인 상황이며, 대피명령 후 이주한 세대는 현재까지 5~6세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타지에 사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에게 집이 무너지는데 아직도 살고 있느냐는 전화를 숱하게 받고 있지만, 돈이 없어 아무데도 못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시의 긴급대피명령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내린 조치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또한 실효성 없는 조치와 이주대책으로 주민들 간 갈등만 더욱 키우고 불안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입주민들의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총회가 지난달 27일 열려 주민 40여 세대가 참여한 가운데 임현택 씨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의견이 분분한 주민들 간 갈등이 여전해 임 위원장이 대표성을 띠고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 위원장은 “정식으로 대표성을 띠는 입주자대표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현재 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게 됐다”면서 “말 그대로 임의기관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이기 때문에, 일일이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대표성을 확보해 대안을 모색하고 목소리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 공용부분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아 전기요금 미납으로 공급이 정지될 위기이며,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월급 미지급으로 버티지 못하고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라며 “재건축이든 보수·보강이든 주민들 의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미납 관리비 등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우선 이주해 살 곳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시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라면, 주민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 주고 주민들 간 의견충돌을 조율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익산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성급했던 시의 긴급대피명령 조치를 지적했다.

아울러 실제로 거주하지 않고 세를 내 준 집주인들의 불만이 또 하나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모현 우남아파트는 총 103세대 중 15세대는 애초부터 공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나머지 88세대 중 절반가량이 전세계약을 맺고 살고 있는 세입자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가 집주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실제로 거주하고 있지 않은 절반가량의 집주인들. 이들은 당장 거주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긴급대피명령에 따라 전세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는 세입자들의 요구에 애를 태우고 있다. 계약 기간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보증금 반환 요청에 빚을 얻어서 보증금을 내줘야 할 상황인 경우가 대다수다. 더욱이 이들 집주인들은 그나마 시가 지원하는 이주비 120만원이나 저리 대출알선의 대상이 되지 않아 지원이 전무한 상태.

세를 주고 있는 집주인 B씨는 “갑작스러운 보증금 반환 요구에 사정을 알고 보증금을 내주려고 해도 당장 돈이 없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아파트로 낙인이 찍혀 담보대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직접 살고 있지 않은 집주인까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현재 없는 상황”이라며 “보다 적은 금액으로 이주할 수 있는 아파트와 대출 가능 방안 등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