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32킬로 늘어나고 45분 더 걸려
익산시의회, 반대 성명서 채택 예정

지난해 말 대전시 등 5개 기관이 호남고속철 대전권 경유를 정부에 요구하자 익산을 비롯한 호남권 자치단체들이 강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호남선 노선 문제는 2005년 기본계획을 세울 때부터 자치단체 사이에 상당한 논쟁이 있었는데, 서울 용산에서 광명 -천안아산 -오송 -공주를 거쳐 바로 익산으로, 여기서 광주을 들러 목포에 이르는 230.9킬로미터 구간으로 확정됐다.

이 구간은 서울에서 익산까지 불과 66분밖에 걸리지 않으며, 광주까지는 93분, 목포까지는 119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호남권은 고속철 완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전라북도는 고속철이 개통되면 수도권 인구가 빠른 시간 내에 새만금 지역으로 올 수 있다는 점, 광주 전남은 서울과의 이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대전시청, 계룡시에 있는 육해공 본부, 논산의 육군훈련소가 지난해 12월 21일 기존 노선에 서대전, 계룡, 논산을 추가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계룡시와 논산시도 거들고 있다.

충청권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크게 앞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뒤 나온 것이라 미리 준비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가장 먼저 충청일보가 지난해 12월 20일 대전권 기관들이 정부에 건의했다고 보도했는데, 이후 다른 신문은 24일 공동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밝혔고, 전라북도청은 21일 건의했다고 알려왔다.

◇대전권의 논리

대전권 기관들은 건의문을 통해 호남고속철 이용객의 3분의 1이 대전권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추가로 정차하지 않을 경우 철도 이용객들의 불편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장기적으로 고속철 운행구간에서 대전쪽을 제외하면 대전권과 호남권의 접근성이 악화돼 지역 균형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전시청 관계자는 최근 언론사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경부고속철의 경우 고속철 전용선이 개통된 뒤에도 이용객을 고려해 밀양과 구포, 수원을 경유하고 있다"며 "호남고속철도 전용선과 일반선을 병행해 운행해야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산시장도 "논산을 거치지 않으면 이곳은 역사 속에서 퇴보할 수 있다. 반드시 논산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대전권의 요구는 KTX열차가 기존 호남선으로 들어와 서대전역과 계룡역, 논산역을 거쳐달라는 것이다.

◇익산과 호남권의 반대 

대전권의 요구에 대해 익산시청 비롯한 전북도청, 광주시청 및 전라남도청은 '저속철' 우려를 제기하며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전라북도의회는 전북도청과의 협의 끝에 성명을 내고 정부가 당초 방침을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도의회는 서대전역을 경유할 경우 전북에서 대전을 오가는 이용객들의 편의는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새로 깔리는 고속철로 대신 기존 호남선상의 서대전~익산역까지 운행할 경우 이동 거리가 32킬로 더 늘어나고 시속 150킬로로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45분의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호남고속철의 예상속도는 시속 250~300킬로다.

또 호남고속철로를 달리는 KTX열차가 중간에 대전쪽으로 빠지면 기존 호남선 열차와 비교할 때 시간 단축효과가 없기 때문에 익산~서대전역 이용객은 기존 호남선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특히 KTX열차가 호남고속철도 외에 기존 호남선을 드나들게 되면 그만큼 배차 간격이 늘어나 호남권 이용객이 큰 불편을 겪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남고속철 열차 운행횟수가 하루 30회일 경우 오송에서 공주, 익산으로 가는 열차 20회, 서대전역과 계룡, 논산역을 거쳐 가는 열차 10회 등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열차 운행횟수를 늘리면 되겠지만 수요가 고정돼 수익성이 높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대전시민은 경부고속철이 대전역을 거치기 때문 불편이 없다. 다만 계룡시에 있는 육해공본부와 논산시에 있는 육군훈련소를 오가는 사람들은 KTX열차가 들어오면 더 편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이 기관을 오가는 이용객들은 기존 호남선을 활용해도 큰 불편은 없으며, 다만 경부고속철을 이용할 경우 대전역에서 내려 다시 계룡이나 논산으로 가야 하는 불편은 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고속철을 저속철로 만드는 것은 고속철 개통 목적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익산시의회는 오는 21일 새해 첫 임시회를 열고 대전권 운행요구에 반대하는 성명을 채택을 계획이다.

광주시청과 전라남도청도 조만간 정부에 반대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의 입장 주목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입장인데, 내년에 검토해보겠다는 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고속철 오송~광주간 구간이 내년 12월 개통되는데, 개통 6개월 전 대전권의 요구를 검토해보겠다는 게 국토해양부의 입장이다. 현재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국토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기는 어렵다. 관건은 새로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다.

전북지역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충청권 표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군부와 대전권 자치단체들의 요구를 새정부가 돌파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다만, 박근혜 당선인이 2005년 고속철 호남 분기점을 결정할 때 대전역이나 천안역이 아닌 현재의 오송역을 지지했다는 점은 상기할 만한 일이다. 새누리당 정운천 전북도당위원장, 과거 민주당에 몸 담았던 한광옥, 한화갑 전 의원이나 차기 총리설이 나오고 있는 박준영 전남지사 등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인지도 두고 볼 일이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