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오염과 비특이성 질환간 인과관계 인정된 최초 사례

함라 장점마을 주민들이 20년 가까이 겪어왔던 집단 암 고통의 원인이 인근 비료공장에서 배출한 유해물질이라는 점이 객관적으로 인정됐다. 생존권을 담보로 한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이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정부가 확인한 첫 사례를 만들어냈다.

환경부는 지난 11월 14일 오전 10시 익산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에서 장점마을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역학조사) 최종발표회를 열고 “비료공장과 주민 암 발생간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밝혔다.

비료공장이 퇴비(교반 공정)로 사용해야 할 연초박을 불법으로 유기질 비료 원료(건조 공정)에 사용했으며, 허술한 방지시설 관리로 건조 과정 중 휘발되는 연초박 내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등 발암물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대기 중으로 배출돼 장점마을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역학조사를 진행한 연구진의 유해물질 배출원 조사 결과 해당 비료공장은 비료관리법에 의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할 연초박(담뱃잎찌꺼기)을 불법적으로 유기질 비료 생산공정인 건조공정에 사용했다. 또 대기배출시설, 폐기물 처리, 악취 관련 다양한 위반사례도 확인됐다.

연초박 건조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이 배출된 사실이 확인됐고,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지 약 1년이 넘은 시점에 채취한 사업장 바닥, 벽면, 원심집진기 등 비료공장 내부와 장점마을 주택의 침적먼지에서 다환방향족탄화수소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이 검출됐다.

장점마을의 경우 총 15지점 중 5지점에서 담배특이니트로사민이 검출됐으나 대조지역 5지점은 모두 검출되지 않았고, 마을 일대 다환방향족탄화수소의 경우 공장 가동 시기에 생육된 소나무 잎(2년생)의 농도가 공장 가동 중단 이후 생육된 잎(1년생)보다 높게 검출됐다.

또 공장 가동 당시 상황을 추정하고자 악취와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담배특이니트로사민 대기확산모의계산을 수행한 결과, 비료공장에서 유해물질 배출시 장점마을이 영향권 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 건강조사에서는 2001년 비료공장 설립 이후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주민 99명 중 22명(국립암센터 등록기준, 주민들은 33명 주장)에게 암이 발생했고, 이중 14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점마을의 남녀 전체 암 발병률은 갑상선을 제외한 모든 암, 간암, 기타 피부암, 담낭 및 담도암, 위암, 유방암, 폐암에서 전국 표준인구집단에 비해 약 2~25배 범위를 보였다.

연구진은 지역에 대한 환경오염노출평가와 주민건강영향평가 결과를 종합·분석해 비료공장 배출 유해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간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 공장의 불법과 행정의 무능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비료생산업을 허가한 기관으로서 적법하게 비료를 생산하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다하지 않았고,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고 주민들이 악취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태가 발생해도 돌아온 답변은 ‘문제가 없다’뿐이었다. 불법행위에 대해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역학조사 최종발표회에서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와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민간위원들은 한목소리로 “역학조사에서 밝혀졌듯이 주민들이 수년 동안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받고 집단으로 암에 걸린 이유는 비료공장의 불법행위와 허가기관인 전라북도와 익산시의 관리감독 소홀 때문”이라고 성토했다.

행정의 명확한 책임 규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익산시는 여전히 감사원 감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 다시는 이런 일 발생치 않도록

지난 12월 19일 국회 제1소회의실에서는 정의당 이정미 국회의원과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장점마을 민관협의회, 익산환경공동대책위원회, 정의당 전북도당이 공동주최한 ‘집단 암 발병 장점마을의 교훈과 재발방지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앞서 역학조사 최종발표회에서는 민관협의회가 역학조사 과정에서 대두된 문제점들을 정리해 환경부에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환경부 역학조사 전담부서 설치, 환경보건위원회에 역학 전문가 포함, 역학조사 전문인력 양성, 역학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 또는 회피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규정 신설, 역학조사 대상 사업체의 현장 보존 의무 및 공장시설에 대한 공정변경 금지 의무 신설, 인과관계 인정에 있어 수량적 기여보다는 질적 기여 측면에서 폭넓게 해석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 환경피해구제급여 종류 확대,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해 연초박을 개별 항목화하고 처리방법 명확히 규정, 비료관리법 개정을 통해 연초박을 부산물비료 원료에서 제외, 분석 항목에 중금속이나 담배특이니트로사민 등 발암물질 추가 등이다.

송승욱 기자